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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진 문화예술회관서 29일까지 전시회가 열린다.
 ▲ 당진 문화예술회관서 29일까지 전시회가 열린다.
ⓒ 장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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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신문의 모범이라고 하는 <당진시대> 15년 역사 전시회를 다녀왔다. 참으로 감회가 새로운 하루였다. 당진을 가면서 설레이기도 하고 그동안의 삶을 되짚어 보는 계기도 되어 즐거운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15년 전의 나의 삶을 되찾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 주간 당진시대가  15년 동안 인터뷰한 사람들 사진을 모아놓았다. 프랑카드 작업을 해 전시를 하고 있다
 ▲ 주간 당진시대가 15년 동안 인터뷰한 사람들 사진을 모아놓았다. 프랑카드 작업을 해 전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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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대> 창간 15년, 물론 15년 전에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아니 공간적인 시대를 최종길과 장승현이라는 사람은 같이 살아왔다. 최종길, 그는 15년 만에 만났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다만 나이가 먹어 보였지만 같은 동갑내기로서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 늙음이었다.

<당진시대>의 최종길과 <세종뉴스>의 장승현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15년 전에 최종길과 나는 가끔 만났다. 나이도 동갑(그가 64년 용띠, 내가 애만살인 63년 토끼띠)인데 그때 최종길은 당진사랑이라는 지역운동을 고민하는 주체였고 나는 대전민청이라는 청년운동을 책임지는 회장이었기에 만나는 날이 자주 있었을 것이다.

▲ 한때 범어사 스님생활을 했던 최종길 주간 당진시대 편집국장
 ▲ 한때 범어사 스님생활을 했던 최종길 주간 당진시대 편집국장
ⓒ 장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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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길이라는 사람과 장승현이라는 사람을 어거지로 연관 시켜 보았다. 살아온 이력도 참 재미있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최종길은 19세 때 스님이 되어 5여년 동안 부산 범어사에서 승려 생활을 하다 당진으로 하산한 사람이다.

나 또한 고등학교 졸업하고 직업훈련소에서 목수일을 배우고 방랑생활, 소설습작기 시절, 청년운동 등을 하며 살아왔다. 내 삶 또한 별로 평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봤다.

또 두 사람은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살고 있고 현재는 언론인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주변에 함께 활동했던 후배들과 선배들 중에도 <세종뉴스> 김모 기자나 <아하뉴스> 문모씨나 <오마이뉴스> 심모 기자가 있다. 그렇게 세어보니 꽤 많은 사람이 언론에 종사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칠갑산에 있었던 충남지역 청년운동 단체 등반대회나 "당진사랑"이나 "읍내리 소식" 등을 주고 받으면서 서로 소통도 하고 세미나나 집회 등에서 여러번 만났을 것이다.

▲ 주간 당진시대 모체가 되었던 읍내리소식, 이 소식지를 나도 15년 전에 본 적이 있다.
 ▲ 주간 당진시대 모체가 되었던 읍내리소식, 이 소식지를 나도 15년 전에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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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시기 함께 최종길씨와 함께 활동했던 세종뉴스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대전민청 소식지와 새길청년회 소식지
 ▲ 같은 시기 함께 최종길씨와 함께 활동했던 세종뉴스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대전민청 소식지와 새길청년회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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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새길청년회 하던 이상근씨도 다녀갔어요."

최종길씨는 물론 나를 알고 있었다. 나를 텔레비젼에서도 여러번 봤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도 우린 그동안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현재 주간 당진시대는 93년 11월에 창간했습니다. 당진사랑이라는 지역운동단체에서 논의를 시작했고, 처음에 스님 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에 와 읍내리 카페를 운영하다 당진사랑을 만들게 된 거지요. 그런 시민모임이 "주간 당진시대"를 만들게 된 모태지요. "

현재 당진을 이끌어가는 기자들과 직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재 당진을 이끌어가는 기자들과 직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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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대가 15년의 역사를 가지고 20여 명의 직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건 그동안의 지역 싸움이 힘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주간 당진시대는 7500여부를 발간하고 있는데 대부분 유가지로 나간다고 했다.

특정폐기물 유치 반대 투쟁때 당진군민 3000명이나 모였다.
 특정폐기물 유치 반대 투쟁때 당진군민 3000명이나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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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94년 중부권 특정폐기물이 당진에 온다고해 주간 당진시대가 앞장서 반대 싸움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이 사업은 산업폐기물을 매립하는 것인데 환경부가 당진에 몰래 추진하던 걸 당진시대가 취재해 터트려 정책을 폐기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이때 집회에는 3000명이 모이는 위력을 보였다고 했다.

     



▲ 주간 당진시대가 앞장서 싸웠던 석유화학단지 유치 반대 투쟁때 실었던 기사
 ▲ 주간 당진시대가 앞장서 싸웠던 석유화학단지 유치 반대 투쟁때 실었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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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당진시대 최종길 편집국장은 97년에도 유공(SK)이 석유화학단지를 유치하려고 할 때 당진시대 신문사의 사활을 걸고 싸움을 해 이겼다고 말했다. 이때 SK는 관광차로 지역민들을 실어 나르며 홍보하기도 하고 당진시대는 이를 시리즈로 다루어 3년 동안 싸워 포기하게 만들었다고도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당진을, 아니 한국의 지역신문의 대표적인 모범을 다시 학습하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세종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당진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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