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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11월 8일) 민통선과 DMZ의 남방한계선을 걷는 '남북평화통일염원 PLZ(평화·생명지대)트레킹대회'가 연천의 1.21무장공비침투로와 승전OP일대에서 열렸습니다.

 

대한레저스포츠협의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경기도 연천군이 후원한 이번 행사는 DMZ의 남방한계선과 민통선에서 이루어진 최대 규모의 민간인 참여행사였습니다.

 

 

전국에서 가족과 직장동료 등 대부분 그룹으로 참여한 2000여명의 참가자들은 그간 금단의 영역으로 접근조차 불가능했던 지역을 걸으면서 평화와 생명의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참가자들은 임진강 최북단의 포구로 조선시대 최고의 경기북부 무역항이었던 연천군 장남면의 고랑포구에서 집결한 다음 군 초소를 통과해 민통선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초소의 바리케이드가 이처럼 많은 민간인들에게 길을 비켜준 적은 없었습니다.

 

바리케이드를 통과해 군사분계선을 향해 한발을 내 딛자 그간 가슴을 갑갑하게 했던 긴장과 막힘이 일소되는 듯했습니다. 민통선 안의 억새밭군락과 인삼밭을 보며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걸었습니다. 어깨 위에 내려앉는 햇살도 코끝을 스치는 바람도 더욱 특별했습니다. 젊은 엄마는 아직 걸음걸이가 서툰 아이를 앉고 걸었고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도 땀을 훔치며 걸었습니다.

 

"저는 동서독 분단의 아픔을 체험하면 자란 사람입니다. 이번 트레킹은 영구적인 평화를 위한 위대한 한 걸음입니다." 

 

독일에서 오신 슈아메스터(구두의 장인)이신 에발트 쉐퍼(Ewald Schaefer)씨도 흥분된 목소리로 이 평화의 행사를 축하해주었습니다.

 

 

2Km쯤을 걷자 1.21무장공비침투로에 닿았습니다. 1.21사태는 1968년 1월 17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인 김신조를 포함한 31명이 청와대 폭파와 정부요인 암살을 위해 서울에 침투했던 사건을 말합니다. 그 침투현장에는 당시에 철책선을 통과하는 침투상황을 재현한 밀랍조각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철책선에는 서예가이신 소엽 신정균 선생님이 현장에 걸어 놓은 대형 걸개작품 '사발그릇 깨지면 두세 쪽이 나지만 三八線이 깨지면 한 덩이로 뭉친다'는 정선아리랑의 한 구절이 통일의 절박함을 웅변하고 있었습니다. 소엽선생님은 북한의 대표적인 공연예술 단체인 피바다가극단의 단장을 지내신 오빠를 북한에 두고 계신분입니다.

 

 

참가자들은 20여년 전 그 아픈 기억의 현장에서 오방색 리본에 각각의 염원을 적어 가시가 삐죽삐죽한 철책선에 달았습니다. "북한 어린이랑 친구가 되고 싶어요." 7살 친구의 소원은 '통일'이란 추상적인 단어가 왜 구체적인 현실이 되어야한지를 대변했습니다. 몇 어르신은 모든 참가자들이 자리를 떠고도 철책선을 떠날 생각을 하지않았습니다.

 

 

다시 4km쯤의 언덕길을 걸어 승전OP에 올랐습니다. 동서로 굽이굽이 이어진 남방한계선의 철책선 너머 DMZ의 숲과 그 너머 북한의 초소들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군인이 이 지구에서 일어났던 남북한 대치의 상황과 군사적인 도발과 충돌의 역사를 얘기해주었습니다.

 

"Beautiful but crazy!"

 

미국에서 오신 채드(Chad)씨는 지금의 상황을 단 두 단어로 절묘하게 압축해 주었습니다.

채드씨의 말대로 생명의 보고가 되어있는 '아름다운' DMZ의 생태자원은 보물처럼 간직되어야하고 이 '바보같은'은 분단의 상황은 하루빨리 극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출발지인 고랑포구로 되돌아오자 군사분계선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자장리와 원당리 주민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콩비지와 국수가 점심으로 제공되었습니다. 아침부터 가마솥을 걸고 갖은 무공해 재료를 넣어 몇시간을 끓인 국물에 말아주는 잔치국수를 한그릇 먹자 7.5Km를 걸어 시장하던 배는 포만감으로 가득했습니다.

 

따님과 함께 참가하신 연극인 박정자 선생님과 함께 점심을 나누었습니다.

 

"오빠가 영화감독이었습니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그 오빠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중에 '비무장지대'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다큐멘터리에는 초기 비무장지대의 상황이 생생하게 담겨있습니다. 또한 저 자신도 GP까지 들어가 대북방송을 하곤했습니다. 지금은 그 멘트가 기억나진 않지만 저와는 각별한 인연인 이 분단의 최일선을 전국에서 오신 이 많은 분들과 함께 걸으니 남다른 소회가 폐부에 닿습니다."

 

연천군민이신 보림출판사 대표이신 권종택 선생님도 가족과 함께 트레킹을 했습니다. 권 선생님은 97년부터 휴전선의 생태와 경관을 집중적으로 기록해오신 사진가 최병관의 작품을 담은 어린이를 위한 'DMZ(가제)' 책의 출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국수를 비우고 막걸리에 수삼을 갈아넣은 인삼막걸리를 한 사발마시고 6년근 인삼튀김을 안주삼아 한반도의 배꼼, 연천의 풍요로움을 몸에 담았습니다.

 

"늘 막혀있던 이 민통선 지역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하루를 보내기는 내가 처음 보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니 잔치날 같이 좋습니다."

 

인삼밭에 사용할 짚은 나르던 원당리의 74세 어른 노성규 할아버지가 기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사람좋은 풍모가 철철넘치는 장남면의 김문수 면장님은 외진 마을을 찾아준 사람들이 너무 고맙다며 인삼막걸리를 참가자들에게 권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참가자들이 대부분 떠나고 참가자들에게 무제한으로 국수를 말아주시던 장남면 마을의 아주머니들이 설거지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선 마을 아저씨들은이 1년 된 인삼 모종을 화분에 심어 나누어 주고 있었습니다. 연천의 인심까지 가슴에 담아온 날이었습니다.

 

이번 PLZ트레킹 대회는 전쟁과 분단이 현재진행형임을 일께우는 행사이기도 했지만 전쟁과 분단은 더 이상 계속될 하등의 명분도 찾을 수 없음을 실증한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긴장이 완화되어감에 따라 DMZ의 경제적 개발 논리를 앞세우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DMZ는 우리 아픈 역사의 대가로 선물받은 값진 생태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개발과 본존, 무엇이 더 경제적일지를 면밀히 따져보아야할 것입니다. 55년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않은 그곳에 포클레인의 삽날이 닿는 다면 피의 대가로 받은 보물을 다시 던져버리는 일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이란?

 

-'비무장지대(DMZ)'란? | 1953년 7월 27일 미국, 중국, 소련에 의해 정전협정에서 155마일 휴전선이 그어져 그것을 군사분계선으로 삼았습니다. DMZ는 그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한 2km씩 뒤로 물러난 지역으로 남북한 간의 적대적 행위로 인한 전쟁재발을 막기 위해 설정한 비무장·비전투 지역을 말합니다.

 

-'남방한계선'이란? | 군사분계선으로 부터 북쪽으로 2Km를 따라 동서로 그어진 선을 북방한계선, 남쪽으로 2Km를 따라 그어진 선을 남방한계선이라 합니다. 이 남.북방한계선 안이 DMZ로 설정되어있습니다.

 

-'민통선'이란? | 비무장지대 바깥 남방한계선을 경계로 5-20km에 있는 민간이통제구역으로 민간인출입통제선을 줄여 부르는 용어입니다.

 

-'평화.생명지대(PLZ; Peace Life Zone)'란? | DMZ와 민통선 및 접경지역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단절된 공간의 의미보다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평화지대로서의 개념 재정립을 위해 평화와 생명의 공간을 의미합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PLZ트레킹, #민통선, #남방한계선, #D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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