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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이 지킨 이 나라가 이토록 눈부시게 발전했다니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내 손을 꼭 부여잡은 브라운(Brown) 할머니가 눈시울을 붉히면서 얘기를 하신다. 말로만 듣던 한국, 지금은 경제대국에 들어선 한국이란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생한 남편의 노고가 안타까워서였을까? 브라운 할머니의 눈물은 쉽사리 멈추지 않는다.

 

지난 23일, 한국전 당시 우리나라를 사수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앞장섰던 미2사단 재향군인회(회장 예비역 중장 Jack Woodall) 소속의 미 참전용사 등 30여 명이 강원도 양구군을 방문하여, '단장의 능선', '펀치볼', '제 4땅굴' 등의 안보 전적지를 방문했다.

 

미 2사단 참전용사들의 양구지역 안보전적지 방문에 따라, 양구군수(군수 전창범)는 참전용사들을 양구 KCP 호텔로 초청하여 전쟁 영웅들을 따뜻하게 환대하였다.

 

참전용사들은 당시 격전지였으며, 현재는 철책선이 된 '단장의 능선'을 찾아가 감회의 눈물을 흘렸다. 제4땅굴과 을지 전망대 방문을 통해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확인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단장의 능선이란 이름은 연합통신 특파원이었던 스탠카터(Stan Carter)가 전투상황을 취재하면서 어느 전방대대 구호소를 방문했을 때 한 부상병이 벌벌 떨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해"라고 "고통스럽게 부르짖은 데서 암시를 받아 단장의 능선(Heart Break Ridgeline)"이란 이름을 붙여 보도함으로써 이후부터 931고지 일대를 ‘단장(斷腸)의 능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미 참전용사들은 전쟁 당시 전투력이 많이 소진된 한국군의 공격을 도와 전쟁승리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들은 1951년 9월 21일~27일 기간 중에 931고지 일대에서 미2사단 소속 참전용사들이 치열한 ‘단장의 능선’ 전투를 벌였으며, 또한 ‘단장의 능선’은 미2사단 리마중대가 큰 피해를 입었던 장소이다. 미2사단 참전용사는 597명 전사, 84명 실종 등 3700여 명의 희생을 치렀으며, 당시 참전했던 전쟁 영웅들이 이 기간에 맞춰 방한한 것이다.

 

올해 80세라는 Claude Cresap 할아버지는 “아직도 치열했던 당시의 전투 상황이 생각난다”며 “전쟁의 상처를 딛고 몰라보게 발전된 한국을 보니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분들의 희생이 뒷받침 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와 평화를 과연 누릴 수 있었을까? 이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이 땅을 더욱 철저히 수호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권소영 기자는 백두산부대 정훈공보 장교입니다.


태그:#백두산부대, #미2사단, #참전용사, #격전지, #한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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