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턴트맨의 삶을 그린 <우린액션배우다>

스턴트맨의 삶을 그린 <우린액션배우다> ⓒ 상상마당

한 중년 남자가 한강다리 난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에게 뼈있는 한 마디를 던지고 그대로 한강으로 뛰어 내린다.

"끝까지 둔해빠진 새끼들, 잘 살어들."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작 <괴물>의 인상적인 오프닝 장면이다. 한강으로 뛰어내리는 윤 사장은 연극배우 권혁풍씨가 연기했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이 노장배우 권혁풍씨를 한강 다리에서 밀었을 리 없다.

그렇다면 그 장면은 어떻게 찍었을까? 컴퓨터 그래픽(CG)? 아니다. '액션배우' 권귀덕이 권혁풍 대역으로 직접 한강으로 뛰어 내린 것이다.

그러나 <괴물>에 출현한 권귀덕을 기억하는 관객은 아무도 없다. 아니, 기억하지 못하게 했다는 말이 맞다. 촬영 현장에서 가장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이 그의 직업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8일에 개봉한 <우린 액션배우다>(이하 액션배우)는 권귀덕씨를 포함한 액션배우들(혹은 액션배우였던 사람들)의 삶을 다룬 독립 다큐멘터리영화다.

인간극장이 아니야, 무한도전이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액션배우>는 독립영화인 데다 심지어 다큐멘터리 영화다. '독립'과 '다큐멘터리'. 어쩐지 매주 발간되는 영화 전문잡지를 열심히 탐독하는 소수의 관객들이나 봐야 하는 영화인 듯 하다.  

그러나 겁먹을 필요는 전혀 없다. '코미디 황제' 주성치의 마니아이기도 한 정병길 감독은 익살스런 내레이션과 빠른 전개로 여느 상업영화 못지않은 유쾌한 영화를 만들어 냈다.

 <우린 액션배우다>를 연출한 정병길 감독

<우린 액션배우다>를 연출한 정병길 감독 ⓒ 신종철

"스턴트맨의 이미지는 어둡고 칙칙하잖아요. 그러나 액션스쿨을 다니면서 만난 스턴트맨들은 밝고 재밌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미디어가 만든 스턴트맨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정병길 감독을 포함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액션배우 전원은 서울액션스쿨 8기 출신 동기생이다.

정두홍 무술감독을 주축으로 지난 1998년 문을 연 서울액션스쿨은 매년 6개월 과정의 교육생을 모집해 액션배우들을 발굴, 육성한다.

얼굴만 봐도 언제나 즐거운 동기생들이 모여 영화를 만들었으니 <액션배우>는 '인간극장'보다는 '무한도전'에 가깝다.

<놈놈놈> 촬영 때문에 중국으로 날아간 스턴트맨은 길눈이 어두워 '국제미아'가 되고, 그들을 취재하러 간 촬영팀도 비밀리에 진행되는 촬영 일정 때문에 2박3일 동안 단 한 장면도 담지 못하고 돌아온다.

액션 장면을 연기할 때는 한없이 치밀하고 진지하다가도, 평소에는 2% 부족한 모습으로 '큰 웃음'을 주는 액션배우들. 영화 <액션배우>가 가진 최고의 매력이다.

"만족할 만큼 벌긴 하지만, 목숨값인데..."

 60여 작품에 출연한 액션배우 권귀덕씨

60여 작품에 출연한 액션배우 권귀덕씨 ⓒ 신종철

서울액션스쿨 8기 중 현재까지 유일하게 현역 액션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권귀덕씨. 그는 지난 2002년 군복무 시절에 봤던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를 보며 액션스쿨에 들어갈 결심을 했다. 오디션에서 몸을 뒤집는 연기(?)를 선보이며 서울액션스쿨 8기가 된 귀덕씨는 교육생 시절을 회상하며 한숨을 쉬었다.

"첫날 보라매공원을 뛰는데 죽겠더라고요(웃음). 도저히 못 버티겠다는 생각이 들어 체력 운동을 열심히 했어요. 액션스쿨에서는 6개월 동안 기초체력·사극액션·현대액션·체조 등을 매일 5시간씩 훈련합니다."

실제로 액션스쿨 8기는 36명으로 시작했지만, 교육을 수료한 사람은 14명에 불과하다. 액션스쿨은 교육생을 중도에 탈락시키지 않으니, 낙오한 22명은 자진해서 포기한 것이다. 그만큼 쉽지 않은 과정을 겪어야 한다.

교육과정을 모두 수료했다고 해서 곧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 스턴트맨을 지망하는 수료생들은 다시 오디션을 본 후 6개월 동안 전문 교육을 받는다. 결국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된 훈련을 견뎌내는 사람만 영화나 드라마의 무술팀에 합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턴트맨들의 수입은 얼마나 될까? 권귀덕씨는 "어느 정도 만족스러울 정도로 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내 목숨값이라고 생각한다면, 과연 그것이 돈으로 계산이 될까"라고 반문했다.

권귀덕씨는 지난 4년 동안 무려 6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앞서 말한 <괴물>을 비롯해 <공공의적2> <홀리데이> <짝패> <우아한 세계> <중천> <식객> <챔피언 마빡이> 등의 영화와 <서동요> <불량가족> <무적의 낙하산요원>(이상 SBS), <내 이름은 김삼순> <제5공화국> <영웅시대>(이상 MBC) <쾌걸춘향> <불멸의 이순신> <서울1945>(이상 KBS) 등의 드라마가 모두 귀덕씨를 거쳐 간 작품이다. 

1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 영화도 있고, 말랑말랑한 멜로 드라마도 있으며 웅장한 시대극도 있다. 액션이 필요한 장면이 있다면 귀덕씨는 장르를 불문하고 기꺼이 차를 뒤집고, 몸을 내던진다.

그 많은 작품들 중에서 귀덕씨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은 무엇일까? <괴물>이나 <불멸의 이순신>같은 대작의 이름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현영이 주연했던 <최강 로맨스> 기억나세요? 거기 초반부에 오토바이 액션을 하는데, 제 얼굴도 자세히 나오고 관객들한테 웃음도 주거든요."

시종일관 진지하게 액션배우에 대해 이야기하던 귀덕씨도 <최강 로맨스>에서 자신의 출연 장면에 대해 설명할 때는 입가의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액션배우도 분명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라는 사실이 새삼 실감이 났다.

자식에게도 액션배우 시키겠습니까?

 액션배우들은 자신의 꿈을 위해 오늘도 차를 뒤집고 몸을 던진다(왼쪽부터 정병길 감독, 신성일, 권귀덕, 곽진석).

액션배우들은 자신의 꿈을 위해 오늘도 차를 뒤집고 몸을 던진다(왼쪽부터 정병길 감독, 신성일, 권귀덕, 곽진석). ⓒ 신종철


영화를 본 관객들 중에는 "액션배우가 되고 싶다"며 정병길 감독과 권귀덕씨에게 문의를 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고 한다. 정병길 감독은 "영화 분위기가 가볍다고 해서 액션배우를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고 운을 뗀 후 "중도에 포기하면 자칫 시간낭비가 될 수 있으니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반면에 권귀덕씨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일단 부딪쳐 보는 것이 젊음의 특권이 아니겠는가"라며 패기있게 말했다. 하지만, 훗날 자식에게도 액션 배우를 시킬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는 "이왕이면 다른 운동 시키고 싶다, 돈 잘 버는 종목으로…"라며 겸연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는 흔히 '액션배우'라고 하면 세계적인 액션스타 성룡이나 이연걸의 이름을 떠올린다. 그러나 한국영화와 드라마 속에서의 액션배우들은 촬영 현장에서 가장 위험한 일을 하면서도 화려한 주인공에게 가려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또 다시 '합'을 맞추고 몸을 던진다. 그들은 왜 이렇게 힘든 일을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 대한민국 액션배우들은 영화 <밀리언달러베이비>의 대사를 빌어 자신들의 대답을 묵직하게 전한다.

"자신만 볼 수 있는 꿈 때문에 모든 걸 거는 사람도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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