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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눈물나무
- 글 : 카롤린 필립스
- 옮긴이 : 전은경
- 펴낸곳 : 양철북(2008.5.26.)
- 책값 : 9000원

 (1) 무엇을 먹으면서 살고 있나

이야기책 <눈물나무> 겉그림
▲ 겉그림 이야기책 <눈물나무> 겉그림
ⓒ 양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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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값이 오르기 무섭게 나라안 기름값이 오릅니다. 한 번 올라갔던 기름값은 두 번 다시 내려가지 않습니다. 이와 맞물려 온갖 물건값이 오릅니다. 공공요금도 오르고 책값도 오릅니다. 찻삯이 오르며 전기삯 물삯 집삯 모두 오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곡식값은 좀처럼 오르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곡식자급율’을 생각해 본다면, 모자라고도 한참 모자라서 하늘로 치솟을 법도 합니다만, 놀랍게도 곡식값은 오를 생각을 않습니다.

농약과 비료에 찌들지 않은 깨끗한 곡식을 바라는 사람들 손길이 늘어나는 흐름을 살핀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손가락이나 쪽쪽 빨아야 하는 노릇입니다. 그렇지만 곡식값은 오르기는커녕, 저잣거리와 할인매장에서는 떨이로 다루기도 하며 아주 싼 값으로 팔고 있습니다. 배추 한 포기에 천 원이나 천오백 원이면 삽니다.

굵은 무 하나도 비싸야 이천 원이지, 천 원에 살 때도 있습니다. 얼갈이 한 아름에 천 원이나 천오백 원입니다. 애호박 하나에 천 원 하는 일은 드물고 둘에 천 원을 하더니, 곳에 따라서는 서넛에 천 원만 받는 가게도 있습니다. 농사짓는 분들은 자기 땅에서 거둔 곡식과 푸성귀를 얼마에 팔고 있으신지. 아니, 얼마나 받고 당신들 피땀을 넘겨주고 있으신지.

.. 여기 티후아나에서 눈에 띄지 않고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작은 구름만 빼고는. 구름은 국경경찰의 손이 미치지 않는 높은 곳에서 미국 영토로 날아갈 수 있었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다시 멕시코로 돌아왔다 …… 미겔의 아이들이 담장 건너편에서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후안, 공 이리로 던져 보렴!” 공이 담장 위로 높이 날아서 루카의 발 앞에 떨어졌다. 루카는 공을 건너편으로 차서 돌려보냈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공이 이편에서 저편으로 오가는 모습을 국경경찰이 지켜보았다. ‘사람이 공이라면 좋겠다.’ 루카는 생각에 잠겼다. 아니면 구름이거나 비둘기라서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170, 182쪽)

오이를 먹고 열무를 먹고 가지를 먹고 호박을 먹고 버섯을 먹고 순무를 먹고 양파를 먹고 감자를 먹습니다만, 제 손으로 기르지는 못하고 저잣거리에서 사서 먹습니다. 우리 식구 형편으로는 천 원에 오이 넷도 만만치 않은 씀씀이라고 할 수 있으나, 농사꾼들은 이렇게 팔아서는 먹고살 수 없습니다. 굶어야지요. 무너지거나.

그러니까, 시골에서 닭을 치고 돼지를 치고 소를 치는 분들은 사료값을 한푼이라도 줄이려고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잔뜩 먹입니다. 하루라도 사료를 덜 먹여야 벌이를 맞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밥상에는 철을 잊은 푸성귀와 열매가 오르고 있는데, 우리들은 철없는 푸성귀와 열매를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사서 먹으면서 아무것도 못 느끼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는지, 언제까지 이렇게 해도 되는지, 언제까지 시골살림이 버티어 줄는지, 언제까지 우리 땅을 더럽히면서 깨끗하게 돌려놓지 않아도 되는지 헤아리지 못합니다.

제철을 잊은 곡식과 열매를 먹으면서, 제철 곡식과 열매 맛을 잊습니다. 이제는 곡식맛과 열매맛이 아니라 ‘곡식 이름과 열매 이름’만 배속에 넣고 머리로는 '무얼 먹었다'고 생각하는 셈입니다. 땅과 햇볕과 물과 바람 기운을 머금은 곡식과 열매가 아닌, '얼마얼마짜리 곡식과 열매'를 먹었다고 받아들입니다. 냉장고에 넣어 차게 한 수박을 먹으면서도, 아직 수박이 날 철이 아님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아니, 않습니다. 수박철도 아닌데 수박을 먹을 수 있어서 ‘세상 좋아진’ 줄 잘못 알고 있기도 하지만, 수박철이 언제인지도 까맣게 잊습니다. 두 손과 온몸으로 땅에 발디디지 않고 살게 되면서,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잊습니다. 땅을 잊으니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잊습니다. 하늘을 잊으니 물이 어떻게 아파하는지, 바람이 어떻게 끙끙거리는지 느끼지 못합니다.

.. 루카가 (멕시코에서 살던) 마을 학교에서 2학년에 다니던 일곱 살 때의 어느 날이었다. 고국 멕시코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는 것과, 국가가 국민에게 일자리를 주고 부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교과서에서 막 배우던 그 무럽, 저녁에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농장에서 해고당했다고 말했다 ..  (46쪽)

꽤 예전에 한치라는 물고기를 거의 모두 일본으로 내다 팔았다고 합니다. 요즈음도 일본으로 내다 팔 만큼 될는지 모릅니다만, 앞으로는 부피가 차츰 줄어서 나라안에서 먹기에도 벅차리라 봅니다. 아직까지 울릉도 앞바다에서 오징어를 잡는다지만, 언제까지 바다가 깨끗하게 남아 있을까요.

꽃게 값이, 참게 값이 엄청나게 비싸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요. 바지락칼국수나 조개구이를 돈 얼마 치르면 어디에서나 사먹을 수 있다지만, 조개가 자랄 갯벌은 이 땅에 얼마나 남아 있습니까. 논밭을 만든다며 메웠다가는 공장과 아파트로 돌리고, 수 만 마리 철새가 날아드는 아름다운 갯벌이었음에도 마구 메꾸면서 공항을 짓더니, 이제는 그 갯벌터에 수십만 채에 이르는 아파트를 올려세우고 대학교까지 옮겨심고 있습니다. 소래포구도 옛말이지, 이제는 소래아파트단지입니다.

저는 보리술을 즐겨마시고 있습니다만, 한국땅에서 자라는 보리가 얼마 없을 텐데, 또 있다 한들 한국사람이 마시는 보리술을 댈 만큼 보리가 있지도 않을 텐데, 하는 걱정을 떨칠 수 없습니다.

열 해쯤 앞서, 저로서는 처음으로 ‘베트남에서 건너온 쭈꾸미’를 보았습니다. 훨씬 앞서부터 베트남에서 들여왔을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한국땅에서 잡아들일 쭈꾸미로는 한국사람들 배를 채울 수 없었을 터이며, 하루가 다르게 더러워지는 한국 땅과 바다에서 얼마나 많은 쭈꾸미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자전거나라였던 베트남이 오토바이나라로 바뀌고 있는 이즈음, 값싼 품삯을 노리고 온갖 공장이 들어서고 있는 오늘날, 베트남도 앞으로는 쭈꾸미 내다 팔기를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 (미국으로 건너온) 루카가 수업 시간에 뭔가 알아듣지 못하면 친구들이 사방에서 에스파냐어로 설명해 주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루카는 이 학교에 불법 체류자가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의 눈빛이나 행동에서 알 수 있었다 ..  (102∼103쪽)

식품회사가 넘쳐나고, 온갖 과일주스가 새로 나옵니다. 오렌지, 포도, 토마토, 당근, 사과, 배, 키위, 망고, 파인애플, 알로에, 석류, 매실 ……. 그런데 우리 나라 땅에서 거두어들여서 만드는 과일주스는 몇 가지가 되지요. 있기나 한가요. 있을 수 있습니까.

밀 한 알 제대로 나지 않는 우리 나라인데, 우리 밀을 심어서 거둔다고 한들 얼마 되지도 않을 텐데, 시골 면내에도 빵집이 한두 군데씩 있을 만큼, 전국 곳곳에 빵집이 참 많습니다.

.. “시내 사람들은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 호세가 말했다. “우리가 자기들 집에 들어가 도둑질을 할까 봐 두려워해. 그러니 그 사람들이 우리를 안 보는 게 좋아. 그럼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도 잊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가 수확한 토마토는 맛있게 먹고, 또 값이 싸다고 좋아하지.” 페드로가 말했다. “미국사람들이 토마토를 수확한다면 부자들만 먹을 수 있을 거야. 미국사람들이 이런 저임금으로 일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  (64쪽)

날마다 놀라면서 살아갑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땅이 꺼지지 않고 하늘이 내려앉지 않아서 놀라면서 삽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좔좔좔 솟아나는데(미터기는 빙글빙글 돌 테지만), 우리 나라가 물이 넉넉한 나라가 아닐 텐데, 이렇게 물을 걱정없이 써도 괜찮은가 싶어서 놀랍니다. 돈 좀 있는 회사마다 시골에 땅을 사들여 땅속 물줄기를 뽑아들여서 돈 받고 물을 팔고 있는데, 이렇게 해도 한국땅에서는 지진 한 번 거의 일어나지 않으니 놀랍습니다.

서울과 부산, 서울과 인천을 이으려고 하는 물길을 놓고,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사람한테 일자리를 만들어 준다고 하는 소리가 때때로 먹혀들어가기도 하기에 더욱 놀랍습니다. 발전소 전기를 돌려서 수도물을 끌어들이는 청계천과 같은 물길을 낸다며, 전국 여러 지자체에서 수천 억에 이르는 돈을 쓴다고 하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놀랍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도 시와 군 우두머리가 밀어붙입니다. 공무원들은 우두머리 지시와 명령을 받고 착착착 기획서를 올리고 예산안을 짭니다.

지난달, 우리 동네 큰길가 거님길 돌이 쫙 뜯겼다가 다시 깔렸습니다. 하수도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도 아니고, 무슨 사고가 났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지자체에서나 흔히 일어나는 일, 예산을 써 없애려고 돌바꾸기를 했을 뿐입니다. 이런 바보짓은 그만해야 하지 않느냐는 비판은 퍽 예전부터 나왔으나, 비판이 있든 없든 잘못은 바로잡히지 않습니다. 그예 되풀이되면서 사람을 쉬지 않고 놀래킵니다.

.. “파업이 얼마나 계속될 예정이냐?” 나이가 많은 흑인 직원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가 2주일 동안 시위를 지속한다면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은 일자리를 잃는다. 하지만 어쨌든 난 원칙적으로는 너희들 편이야. 30년 전에 우리도 똑같은 행동을 했지. 사람은 가끔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해. 특히 피부가 희지 않을 때는 말이다.” ..  (159쪽)

저녁나절, 옆지기 다리를 주무르면서 배에 대고 이야기를 합니다. 두 달쯤 뒤면 세상에 나올 아이한테 말을 겁니다. “꽁꽁이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세상 무서워서 살기가 팍팍한데, 너도 참 힘들겠구나. 그러니 너는 세상에 나올 때부터 튼튼해야 하고 억세어야 한단다. 굶기지 않도록 애쓸 테지만, 너는 네 힘으로 이 세상을 잘 살아야 한단다.”

 (2) 이 땅은 누구네 땅인가

주한미군이, 한국땅에 '진주한 기념'으로 서로 돌려보던 기념사진책. 이 기념사진책을 만든 부대는, 1846년에 멕시코로 쳐들어가서 끔찍한 학살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런 부대가 한국땅에 오래도록 머물고 있는 현실입니다.
▲ 주한미군 기념사진책 주한미군이, 한국땅에 '진주한 기념'으로 서로 돌려보던 기념사진책. 이 기념사진책을 만든 부대는, 1846년에 멕시코로 쳐들어가서 끔찍한 학살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런 부대가 한국땅에 오래도록 머물고 있는 현실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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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앞서였나, 서울 회기동에 있는 헌책방에서 주한미군부대 병사들이 만들어서 기념으로 나누던 ‘군부대 사진첩’ 하나를 보았습니다. 이 군부대 사진첩은 “미국 제2 야전포병연대 7대대” 사람들 것이었는데, 이들은 1812년부터 싸움을 치러 왔다고 부대 역사를 적어 놓습니다. 1812년에는 캐나다에서 싸웠습니다. 그 뒤 자기들이 맡은 곳에 살던 북미 토박이(인디언)를 싹 쓸어버렸다고 합니다.‘seminoles’라는 이름이 보이는데 ‘세미놀레스’가 미국땅 이름인지 북미 토박이 겨레이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다음으로 1840년대에 멕시코와 전쟁을 벌여서 이겼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 “당연하지. 멕시코사람들의 꿈은 오직 하나니까. 모두 여기로 오고 싶어 하잖아.” “틀렸어! 멕시코사람들이 미국을 똑바로 가리킬 수 있는 이유는 여기가 그 사람들 땅이기 때문이야! 이 나라에 맨 처음 살았던 주민들은 에스파냐와 멕시코사람들 그리고 인디언들이었어. 영어를 하는 백인들은 전혀 없었다고!” “우리가 1846년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걸 너희는 도대체 언제 인정할래?” 조지가 고함을 질렀다. “우린 너희를 이겼어! 그게 그렇게도 알아듣기 힘들어? 국경은 전쟁을 통해 달라지는 거야. 10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불평을 하면 안 돼!” “그건 전쟁이 아니었어. 잔인한 습격이었지.” ..  (111쪽)

한국이 일본 식민지였듯 멕시코는 스페인 식민지였습니다. 한국은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나며 한국말을 찾았지만, 멕시코는 스페인 식민지에서 벗어났어도 멕시코말이 아닌 스페인말을 쓰고 맙니다. 그나마 멕시코 문화라도 고유하게 지킬 수 없던 가운데, 백인들이 땅따먹기 싸움을 하면서 저희끼리 부딪치고 다투는 동안 멕시코 삶터는 더 무너져내렸고, 멕시코 문화는 더 찢기었으며, 멕시코 살림은 더 주저앉았습니다.

.. “…… 우린 이제 더 이상 함부로 취급받으며 살지 않을 거야. 로스앤젤레스에 새로운 미국을 건설하는 거지. 우린 벌써 투표권을 행사하여 라티노 시장도 뽑지 않았니? 멕시코사람들, 특히 불법 체류자가 없으면 미국 경제는 무너질 거다. 누가 밭에서 토마토와 레몬을 수확하지? 캘리포니아 농장 일군의 95퍼센트는 불법 체류자들이야. 레스토랑에서 누가 음식을 나르지? 부유한 사람들의 집은 누가 청소하고, 누가 아이들을 돌보며, 누가 잔디를 깎지? 우리의 시위가 끝나면 미국사람들은 라티노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걸, 한 명도 남김없이 알게 될 거야. ……” ..  (137∼138쪽)

나라도 겨레도 문화도 살림도 차근차근 지키거나 가꾸기 어려운 멕시코에서 멕시코사람들은 ‘고향나라에서 굶어죽기’보다는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건너가 허드렛일이라도 하며 달러 벌며 살아남기’로 가닥을 잡습니다. 마침, 미국도 미국 사회에 걸맞게 노동자 일삯을 주면, 부자들이 부자놀음을 이어갈 수 없었던 터라, 허드렛일을 헐값으로 시키고 부릴 생각으로, ‘불법 이민자’를 자꾸자꾸 받아들입니다. 한손으로는 불법이니 붙잡아서 내쫓고, 한손으로는 싼값으로 일을 부려먹으려고 끌어당기고.

.. 베로니카의 아버지는 매주 자신이 진행하는 방송을 통해 라티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집회에 많이 참가할 것을 권했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에 도착한 청교도들도 불법 이민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지금 미국의 조상으로 간주됩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대륙에 있는 모든 백인들도 예전에는 불법 이민자들이었습니다. 백인들의 아메리카는 4천만 라티노와 함께할 때만 유지될 수 있습니다. ……” ..  (154쪽)

한국땅으로 들어오는 나라밖 노동자들도, 미국으로 넘어가려는 멕시코사람하고 똑같은 형편입니다. 빚을 지며 통행삯을 치러 목숨 걸고 국경을 넘은 다음, 여러 해 죽을힘을 다해 돈을 모아 빚을 갚고 겨우겨우 자리를 잡아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적어도 아이들한테 자기들과 같은 가난과 못 배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한국땅에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 또한, 고향나라에 남은 아이들을 먹여살릴 뿐 아니라 더 높은 학교까지 가르치는 데에 뜻을 두고 있습니다. 중국조선족이 남녘땅에 들어와 밥어미나 청소부나 밥집 아줌마 노릇을 해서 달마다 다문 백만 원이라도 벌어서 보내면(한 달에 딱 하루 쉬며 일하는 동안), 이 돈으로 자식들을 북경으로 보내어 대학등록금과 기숙사비를 댑니다.

.. “…… 그리고 다른 그링고들도 믿으면 안 돼. 네가 여기에 불법 체류 중이라는 걸 잊지 마. 미국사람들은 우리를 ‘불법 외계인’이라고 불러. 마치 지구 바깥에서 왔다는 듯이. 또 사실 우리를 그렇게 취급하지. 행운을 빈다. 잡히지 마!” ..  (75쪽)

똑같은 ‘외국인’ 노동자이지만, 살갗이 하얀 사람은 쏼라쏼라 하면서 영어학원 강사 노릇을 합니다. 초등학교에서 ‘원어민 교사’ 노릇마저 합니다. 영어 솜씨가 훨씬 뛰어나다고 해도 필리핀사람이 원어민 교사를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스리랑카사람이나 라오스사람 또한 영어학원 강사를 할 수 없습니다. 아마, 강사나 교사 노릇을 한다고 해도, 학생들이 싫어하겠지요. 우리들 한국사람은 스스로를 ‘아시아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티벳과 인도로 성지순례를 떠나고 네팔과 몽골에 가서 드넓은 자연에 입을 쩍쩍 벌리는 한국사람들이지만, 티벳 이주노동자와 네팔 이주노동자와 인도 이주노동자와 몽골 이주노동자를 볼 때면, 꾀죄죄하거나 더럽다거나 못났다고 하면서 거리를 두고 있는 한국사람들입니다.

.. 카를로스는 화를 냈다. “이건 멍청한 짓이에요! 내가 오늘 아침에 토르티야를 먹는다고 도대체 뭐가 달라지나요?” “모든 사람이 너처럼 생각한다면 정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거다!” 이모부가 카를로스의 손에서 시리얼 봉지를 빼앗았다 ..  (155쪽)

어쩔 수 없는 노릇인가요. 한국사람이 ‘세계 소식’이라면서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 보고 듣는 이야기는 거의 모두 미국 이야기에 쏠려 있으니까요. 그 다음으로 유럽 이야기에 모두어져 있으니까요. 우리가 언제 티벳이나 네팔에서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겨레붙이 문화와 사회 이야기를 들어 봅니까. 방글라데시 문화가 무엇인지 압니까. 그렇게들 많이 찾아가는 인도 사회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역사는 어떠한지, 베트남과 버마 살림살이가 어떠한지를 곰곰이 헤아릴 일이 있는지요. 인도네시아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말레이지아사람이 무엇을 즐기며 살아가는지 모르는 가운데, 우리 곁에 있는 이웃나라를 살갗으로 받아들이거나 느끼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하는데, 부자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 되고자 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한테 자기 재산을 나누어 주려 하지 않으며, 스스로 가난이 무엇인가를 몸으로 느끼거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부자들은 하늘나라에 못 가지 않으랴 싶습니다.

한국사람이 이주노동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닭도, 한국사람 스스로 자기 뿌리를 느끼지 못하고, 자기 이웃이 어떠한가를 헤아리지 못하며, 자기 삶터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못 깨닫거나 안 깨닫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3) <눈물나무> 라는 책

이야기책 <눈물나무>는 독일에서 중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사람이 씁니다. 멕시코사람이 왜 가난할 수밖에 없으며, 어찌하여 미국 국경을 넘어야 하는지를 깊이 있게 파고들면서 다룹니다.

.. “비바 메히코!” 헤어질 때 호세가 모자를 흔들며 소리쳤다. “잊지 마라, 네 집은 여기야! 국경 건너편에서 돈이야 벌 수 있지만, 네 마음은 항상 여기에 있어야 해. 한 번 멕시코사람이면 영원히 멕시코사람으로 남는 거다. 비바 메히코!” ..  (54쪽)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사람도 멕시코사람 이야기를 써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대학교 교수로 일하는 사람도 멕시코사람 이야기를, 또는 가까운 데에 있는 중국조선족 이야기를 써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일본에 살고 있는 한겨레 이야기는 써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니, 한국땅에서 아파하거나 괴로워하거나 힘들어하는 사람들 눈물이 무엇인지를 이야기 하나로 써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 “국경을 건너가면 그렇게 끔찍하다면서, 그럼 아저씨들은 왜 여기에 있지 않고 넘어가려는 거예요?” 잠깐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도 멕시코에서 굶어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페드로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  (27쪽)

우리네 긴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땅을 넓힌 적도 있으나, 이웃나라가 쳐들어와서 땅을 빼앗긴 적도 있습니다. 쳐들어갔건 쳐들어왔건, 권력 쥔 사람이 아닌 여느 사람들, 바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부들부들 떨면서 죽어야 했습니다. 군대로 끌려가거나 노예로 붙잡히거나 고향에서 죽어라 농사지어서 나라님한테 바치고 군량미를 대면서.

신분 푸대접에 따라서 아주 많은 우리 어버이가 고달프게 살았고, 일본제국주의한테 짓눌리기도 했으며, 네나라 때(고구려,백제,신라,가야)와 마찬가지로 한겨레끼리 피를 흘리며 싸워야 하기도 했습니다. 독재는 겨우 걷혔지만, 속속들이 걷어내지 못해서 아직까지도 국가보안법은 서슬퍼렇게 남아 있습니다. 미친 소고기 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 숨통은 온갖 나쁜법과 유전자조작 먹을거리 따위로 아슬아슬합니다. 그렇지만, 비정규직인 사람이 많은 만큼, 정규직인 사람도 많아서 내 이웃 아픔을 내 아픔으로 못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픔이 있고 눈물이 있는 우리 나라요 우리 겨레입니다. 멕시코사람들 아픔을 잘 곰삭이고 새긴 독일 교사 한 사람은 <눈물나무>를 써냈고, 우리 스스로 안고 있는 아픔을 잘 곱씹고 되새길 누군가가 앞으로 ‘눈물꽃’을 써낼는지 모릅니다. ‘눈물꽃’은 시인 고정희 님이 써냈으니 ‘눈물풀’을 누군가 써내려나요. 아니면, 우리 스스로 붙안고 있는 아픔을 알아보려 하지 않으면서 아무런 눈물도 느끼지 못하고, 한 방울 눈물도 흘리지 않으면서, 오로지 돈벌이에만 눈을 밝히면서 살아갈는지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눈물나무

카롤린 필립스 지음, 전은경 옮김, 양철북(2008)


태그:#청소년책, #멕시코, #이주노동자, #외국인노동자, #소설책, #눈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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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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