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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리면 가고, 막히면 돌아가는 시위행렬

 

촛불문화제가 끝나고 시위대는 자연스럽게 거리로 향했다. 오늘(27일)은 끝까지 따라가 보기로 했다. 청계광장을 벗어난 대열은 을지로로 방향을 트는가 했더니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유턴을 두 번이나 했다.

 

명동 쪽으로 향해 가기에 명동성당에 들어가서 정리하는가보다 했더니 계속 직진해서 명동성당을 끼고 돌아 을지로 4가 쪽을 향하다가 경찰에게 막혔다. 그러나 충돌을 피하고 다시 유턴, 명동 내부를 통과해서 롯데백화점으로 향하다가 다시 경찰에게 막히자 이번에는 명동 밀리오레 앞으로 와서 정리집회를 했다(그 뒤 내가 빠진 뒤에도 집회는 이어져 또 백여명이 연행되었다고 한다).

 

왜 이런 경로를 나열하나 하면, 이 대열에는 '좌표'가 아니라 '지속' 그 자체가 중요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즉, '청와대로 가자!'는 등의 이동 목표가 없고, 열리면 가고, 막히면 돌면서 조금이라도 더 긴 시간 살아남자는, 전자가 근대적 운동기획이라면 후자는 마치 생명체의 삶의 본능이랄까, 뭐 그런 느낌이었다.

 

시위대 앞에 지도방송을 하는 누군가가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시위대는 비조직적이었고 산만했다. 그런데도 비폭력 원칙을 확고히 지켜 불필요한 경찰과의 충돌을 피한 것은 훌륭했다. 일부 격화된 시위대가 경찰에게 목청을 높이며 싸울 태세를 보였지만, 대부분은 평화 기조를 지키려는 분위기였다. 어린 학생들과 아이들, 주부들도 있어 더욱 분위기는 그러했다. 그리고 난 비폭력 평화행진의 기조를 확고히 지지한다.

 

시위현장에서 '조중동' 기자와 대화하다

 

마침, 이른바 '조중동' 기자인 선배를 거리에서 만났다. 예전에 술도 같이 많이 먹던 선배였고, 취업이 안 돼 괴로워하다가 어떻게 신문사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핼쑥한 얼굴로 변명도 많이 하던 선배였다. 그 속에서 자신이 대학시절 배운 가치들을 지켜나가겠다고 얘기도 했지만,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것은 진리이기에,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다행히, 그 선배와의 관계는 그런 의식에 의해 시작된 관계는 아니었다.

 

난 "어이, 조중동!"하고 부른 뒤 입사한 지 몇 년 됐는데 아직 시위 취재 담당이냐고 놀렸더니, 자기 '쫄따구'들은 다 지방에 가 있어서 벌써 며칠째 고생이란다.

 

신문사에서 촛불집회가 '불법시위'로 변질되었다고 쓴 후 자기도 '밤길 조심해라'는 이메일을 수백 통씩 받고 있단다.

 

"그렇지만, 이렇게 거리를 점거하고 하는 시위가 불법시위지, 평화시위는 아니잖아?"

 

왠지 대화가 재미있어졌다. 사람이 보수화되는 과정은, 과거에 따르던 가치를 돌연 다른 가치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질서'의 눈으로 보는 것부터 시작된다. 시위를 하라, 법 테두리 내에서. 요구를 하라, 제도 안에서. 위험하거나 돌발적이지 않게. 그러나 질서화된 가치는 이미 생동하는 진보일 수는 없다.

 

"'OO시위'라고 할 때 'OO'에 넣을 수 있는 건 다양하지. '밤샘' 시위일 수도 있고, (무장하지 않았으니까) '평화' 시위일 수도 있고, 집시법을 위반했으니까 '불법' 시위라고 할 수도 있지. 어떤 사건이라도 속성은 여러 가지가 있는 법이니까. 문제는 왜 다른 속성은 제쳐놓고 하필 '불법'이라는 속성으로 사건을 정의하려고 하느냐지. 그 역시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음…. 사실 청계광장에 앉아 집회할 때만 해도 나쁘지 않게 봤는데, 이렇게 밤 늦게 거리를 점거하고 다니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의미? 사실 전술적으로 얼마나 유효하냐, 이런 문제라면 난 이 방식이 최고라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그렇게 의미를 묻는 물음 자체가 무의미한 것 같은데? 사람들은 그렇게 논리정연하게 자기 행동을 시작하는 게 아니잖아. 또 어차피 이들의 힘으로 경찰을 뚫고 청와대에 갈 수도 없고, 간다 한들 뭘해? 그렇다고 우리에게 매체가 있어, 뭐가 있어. 효율성의 면만 놓고보면 우리에게 의미있는 수단은 어차피 없어. 중요한 것은 이 사람들의 행동에서 이들이 얼마나 분노하고, 절망하고 있는지를 느끼는 거지. 국민들이 이렇게 분노하고 절망하는데, 정부는 어떻게 할 거냐, 이게 핵심이지."

 

명령하라, 이뤄질 것이다? ... 시민사회는 절대 그렇지 않다

 

앞서 이 시위의 양상이 운동권들에게 익숙한 '좌표를 향한 이동'이 아니라 삶을 유지하려는 생명체의 본능 같다고 했다. 맞다. 어차피 대중이란, 그 안에 규정할 수 없는 역동성이 있다. 생물처럼, 본능적이긴 하나 비논리적인 경향성을 갖고 있다.

 

정치적 지도력이란, 이러한 대중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이들을 설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어떤 방향을 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미리 만들어 놓은 틀을 들이대며 그것이 질서라고 우기는 것은, 결단코 성공할 수 없는 지도력이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도 나오지 않는가? 자신이 과학자라고 공룡을 통제할 수는 없다. 특히 유전자 조작 같은 '간단명료한' 방법 따위로는.

 

'명령하라, 이뤄질 것이다.' 건설회사 사장으로선 익숙한 방식이겠지만, 시민사회는 절대 그렇지 않다. 그런 시민사회가 무질서하고 '비정상적'이라고 보는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그 역동성과 돌발성이 있어야 건강한 시민사회다.

 

지금 시민들이 이렇게 화를 내고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것이, 역으로 우리 사회를 튼튼하게 만드는 밑거름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제발 그 허상 뿐인 질서에 매달리지 말고, 사태의 근원을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 몇 명의 시위대를 잡아 가두거나, 배후세력이 어쩌니 하고 떠드는 것은 사태를 악화하는 지름길이다.

 

비록 가난한 국가지만 그래도 제 국민이 지지하는 쿠바 사회주의 정부는 카스트로를 빼고 말할 수가 없다. 카스트로는 어느 날, 대통령궁 창문을 열고 아래 광장에 모인 시민들에게 외쳤다고 한다.

 

"어이! 이웃 니카라과가 설탕이 부족하다고 한다. 우리는 많이 남으니 한 100톤 정도 보낼까?"

 

그랬더니 시민들은 자기들끼리 막 토론하더니 "좋소, 카스트로! 보내버려요!" 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독특한 카리스마를 갖고 대중과 소통하기를 두려워 않았던 카스트로기에, 50년의 장기집권 뒤에도 망명하거나 유폐되지 않고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아직도 문제를 모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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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명박, #광우병, #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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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기본소득당 공동대표.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기본소득 쫌 아는 10대> <세월호를 기록하다> 등을 썼다. 20대 대선 기본소득당 후보로 출마했다. 국회 비서관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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