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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산골 방하 마을에 모내기가 한창입니다. 다랭이논 층층이 하나하나 손으로 모를 심고 있었어요. 큰 천막에다가 모판을 싣고 끌고 있는 이형옥(80)할아버지
▲ 모내기 두메산골 방하 마을에 모내기가 한창입니다. 다랭이논 층층이 하나하나 손으로 모를 심고 있었어요. 큰 천막에다가 모판을 싣고 끌고 있는 이형옥(80)할아버지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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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 대항면 대성2리(방하 마을)에는 지금 모내기가 한창입니다. 항아리 위에 고무통을 덮어놓고 돌로 눌러 놓았어요.
▲ 장독대 김천시 대항면 대성2리(방하 마을)에는 지금 모내기가 한창입니다. 항아리 위에 고무통을 덮어놓고 돌로 눌러 놓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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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여기 마을 이름이 뭔가요?"
"가만, 내가 대답하기 전에 먼저 물어봅시다."
"네? 아…. 네."
"거 어디서 오신 분들이요?"
"구미에서 왔습니다."
"어이? 저짝 산 넘어 왔어요?"


경북 김천시 대항면 대성리(방하) 산골 마을을 찾아가려고 산을 하나 넘어 왔어요. 가파른 '방아재' 고개를 힘겹게 넘어오니 조용한 산골마을이 눈앞에 펼쳐졌어요.

깊은 산골에도 봄은 왔나 봅니다. 어느새 논에는 모내기를 하려고 물을 가득 대놓았어요. 파릇파릇하게 자란 모판도 보이고요. 그런데 이 마을에는 흔히 보는 넓고 반듯한 논이 아니었어요. 맞아요. 층층이 돌을 쌓아 논둑을 만든 '다랭이논'이었어요.

파릇파릇 자란 모판이에요. 이제 막 다랭이논에 심을 거예요. 올가을 방하마을에는 풍년이 들겠지요?
▲ 모판 파릇파릇 자란 모판이에요. 이제 막 다랭이논에 심을 거예요. 올가을 방하마을에는 풍년이 들겠지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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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앞에서 내려오는 걸 지켜보던 아저씨 한 분. 자전거를 타고 '방아재 고개'를 넘어 왔다고 하니 무척 놀라워하셨어요.

"여는 방하마을인데… 그런데 뭐하는 사람들이요?"
"아, 네. 저희는 우리 둘레에 시골풍경을 찾아다니고 있답니다."
"그라믄 잘 오셨네요. 일루 와봐요. 여(여기) 마침 모내기를 하고 있으니까…."


아이고, 이렇게 반가울 수가, 우리가 가려던 곳이 바로 '방하 마을'이었고, 오는 길에 갈림길 때문에 이리저리 헤매다가 끝내 산을 한 바퀴 돌아서 왔는데, 제대로 찾아왔구나 싶었어요. 무엇보다 때를 맞춰 모내기를 하고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있나요?

"아이고, 장화라도 신고 왔으만 모 좀 심고 가라 하겠구만."


어르신을 따라 모퉁이를 돌아가니, 마을 할머니들이 대여섯 둘러 앉아 있다가 우리를 보고 하는 얘기였어요. 모두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긴 고무장화를 신고 있었는데, 아마도 모심기를 하다가 잠깐 쉬는 듯했어요.

"여, 이 양반들이 우리 마을 취재하러 왔댑니다. 어여 가서 모 숨굽시다."
"어데? 여를?"
"허허, 그렇다카이!"


아까 길에서 만난 어르신이 어서 일하러 가자면서 마을 분들을 부추기며 우리를 소개했어요.

방하 마을 어르신들이 모두 나와서 모내기를 하고 있어요. 깊은 산골짜기라서 반듯한 논이 없어요. 요즘 흔한 이앙기도 없어요. 하나하나 손으로 심고 있답니다.
▲ 모심기 방하 마을 어르신들이 모두 나와서 모내기를 하고 있어요. 깊은 산골짜기라서 반듯한 논이 없어요. 요즘 흔한 이앙기도 없어요. 하나하나 손으로 심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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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다리 내 다리야!

방하마을(경북 김천시 대항면 대성2리) 사람들이 모두 나와 함께 모내기를 하는데, 가만 보니 손으로 하나하나 심고 있어요. 요즘은 농사일도 기계가 대신 하던데 여기는 그렇지 않았어요. 어릴 때 보던, 논 양쪽에서 못줄을 길게 잡아주는 건 없었지만, 그냥 한 줄로 서서 눈대중으로만 모를 심는 거였어요. 골짜기라서 논이 반듯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밖에 할 수가 없다고 하네요.

"이야! 어르신들, 마술사가 따로 없네요?"
"우리 손이 마술이지!"

이것저것 묻는 대로 얘기를 들려주면서도 손은 조금도 쉬지 않아요. 금세 저만큼 새파랗게 모를 심어놓았어요.

모내기를 하면서 구성지고 서글프게 노래를 하시던 정순식(64)어르신, 이 마을에서는 가장 막내랍니다.
▲ 아이고 다리, 내 다리야! 모내기를 하면서 구성지고 서글프게 노래를 하시던 정순식(64)어르신, 이 마을에서는 가장 막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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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다리 지고 다리
수성다리 내 다리야
하실(화실) 삼거리라 내 다리야
못내 터목 장개 다리야
한강이라 철교 다리
아이고 내 다리야


쉴 새 없이 모를 심던 어르신 한 분이, "내 노래 한 번 들어 볼라요?" 하더니 어느새 구성지게 노래를 하시네요. 아니 매우 서글픈 노래였어요.

"이야! 우리 어르신, 노래 참말로 잘 하시네요."
"그럼! 나 같이 문자깨나 쓰는 사람이나 하지, 이런 사람들은 모른다니까! 하하하!!!"
"하이고 참말로, 어여 모나 숨과! 여 봐라 넘들 하매 이만큼 왔는데 안즉도(아직도) 거 있잖아!"
"아이고 성님, 내가 이 양반들 왔으니까 웃자고 하는 얘기지."


어르신들끼리 옥신각신하며 말다툼 하는 것도 퍽 정겨웠어요.

"이야! 저 어른 노랫소리가 어째 저리 서글프냐?"

옛 가락을 남달리 좋아하는 남편이 어르신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가슴이 저리다고 했어요. 노랫소리가 하도 좋아서 한 번 더 들려 달래니까 서슴없이 또 불러주십니다. 손짓으로 추임새까지 넣으며 노래하는 어르신한테 흠뻑 빠져들고 말았어요.

옛날에 다리가 퉁퉁 붓는 병을 '수성다리'라고 했대요. 그런데 이 병을 앓는 이가 산나물을 뜯으러 다니면서 불렀다는 노래인데, 노랫말을 살펴 보니 김천 대항면에 있는 마을 이름이 모두 나왔답니다.

꽃이 많이 피고 산나물 열매가 많이 열려 하실(화실, 화곡).
구성면, 영동군 상촌면, 대항면으로 가는 세 갈래 길이 있다 해서 삼거리(삼거).
마을 뒤에 작은 못이 있어 못내.
어떤 이가 직지사를 찾아 도를 닦으러 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자리 잡고 살았다는 터목. 그리고 장개리.

이 모두 대항면에 있는 마을의 옛 이름인데, 마을마다 있던 다리를 빗대어 '수성다리'를 앓는 이의 아픔, 한이 배어있는 노래였어요.

긴 고무 장화 신고, 허리를 굽혀 손으로 모를 심는데, 어르신들 모두 마술사 같았어요. 금세 논 하나를 모두 채웠답니다.
▲ 산골 모내기 풍경 긴 고무 장화 신고, 허리를 굽혀 손으로 모를 심는데, 어르신들 모두 마술사 같았어요. 금세 논 하나를 모두 채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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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옥 할아버지는 올해 나이가 여든이에요. 그런데도 매우 정정하답니다. 지게에 모판을 켜켜이 싣고 나르고 있어요.
▲ 지게에 모판을 나르며 이형옥 할아버지는 올해 나이가 여든이에요. 그런데도 매우 정정하답니다. 지게에 모판을 켜켜이 싣고 나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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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마을 사람들이 이 어르신 논에 품앗이를 나왔어요. 머리에 새참을 이고 가는데... "아이고, 암것도 없어요. 각중에 하느라고..." 말투가 무척 정겨웠던 할머니.
▲ 새참 오늘은 마을 사람들이 이 어르신 논에 품앗이를 나왔어요. 머리에 새참을 이고 가는데... "아이고, 암것도 없어요. 각중에 하느라고..." 말투가 무척 정겨웠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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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만이 고향을 지키는 방하 마을

지난날에는 볍씨를 논에다가 바로 뿌려서 모가 자라면 한줌씩 던져놓고 심었는데(이런 방법을 투망모라고 하네요), 요즘은 그나마 모판에다가 미리 심어서 쏙쏙 뽑아다가 논에 심으면 된다고 아주 수월해졌다고 합니다.
▲ 모판 지난날에는 볍씨를 논에다가 바로 뿌려서 모가 자라면 한줌씩 던져놓고 심었는데(이런 방법을 투망모라고 하네요), 요즘은 그나마 모판에다가 미리 심어서 쏙쏙 뽑아다가 논에 심으면 된다고 아주 수월해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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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 모두 품앗이로 모내기를 하는 건가요?"
"그렇지. 오늘은 저 집에 논인데, 온 마실 사람 다 나온 기, 이기 다라."
"모두 몇 집이나 되는 데요?"
"한 열 댓집 되지."
"여 있는 사람이 다라."

그랬어요. 마을 사람 모두를 더해야 스무 명 남짓 된답니다. 여느 시골 마을처럼 방하마을에도 젊은이는 없고 어른들만이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답니다. 벌써 여기에서 4대째 산다는 할아버지도 있었고, 어릴 적에 시집와서 한 평생 살고 있다는 할머니도 있었어요.

"여 모두 칠십, 팔십이라."
"이렇게 일하시면 힘들지 않으세요?"
"왜 안 힘들어. 아파 죽제."

이 말을 듣고 있던 할머니 한 분이 일어나 허리를 곧추 세우시더니 이렇게 외쳤어요.

"아이고 허리야! 안 아픈 데 없다. 고마!"

"아이고, 허리야! 안 아픈 데 없다!" 모를 심다가 허리 한 번 펴고...
▲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허리야! 안 아픈 데 없다!" 모를 심다가 허리 한 번 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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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째 방하 마을을 지켜오신 할아버지에요. 여든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하시답니다. 농사일을 해서 아들 삼형제를 모두 대학공부까지 시켰다고 하시며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하지만 내 새끼들 모두 잘 키웠다."고 자랑하셨어요. 네 해 앞서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 되셨다는데, 자식들이 한결같이 아버지를 많이 걱정한다고 하셨어요. "걱정하지 마라 아버지는 잘 살고 있으니까..."
▲ 이형옥(80)할아버지 4대째 방하 마을을 지켜오신 할아버지에요. 여든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하시답니다. 농사일을 해서 아들 삼형제를 모두 대학공부까지 시켰다고 하시며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하지만 내 새끼들 모두 잘 키웠다."고 자랑하셨어요. 네 해 앞서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 되셨다는데, 자식들이 한결같이 아버지를 많이 걱정한다고 하셨어요. "걱정하지 마라 아버지는 잘 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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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어르신들 대단하십니다. 금세 논 하나 다 심었네요."
"아이고, 우리가 볼 때는 댁내들이 더 대단합니다."
"하하하! 그런 가요?"


힘겨운 농사일에 견주면 자전거를 타고 산을 넘어온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어르신은 우리를 더 추켜세우시네요.

어르신들만이 땅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하마을, 이른 아침부터 해 떨어질 때까지 쉼 없이 농사일을 하면서도 크게 웃고 노래도 부르면서 즐거워하는 걸 보니, 방하마을 농사꾼들이 무척이나 우러러 보입니다. 이거 바쁜 일손 거들어주지는 못할망정, 이것저것 물으며 귀찮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려니까 매우 미안한 생각도 들었답니다.

"어르신들, 올해 꼭 풍년들고요. 모두 건강하세요!"
"아이고 고마워요. 조심해서 잘 가요."

올가을 이 마을에 다시 찾아오면 그땐 틀림없이 풍년이 들어있을 거예요. 이렇게 애 쓰며 땀 흘리는 어르신들이 오순도순 살면서 즐겁게 지키는 땅이니까요. 

ⓒ 손현희


태그:#방하마을, #모내기, #다랭이논, #대항면 대성리,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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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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