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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 오후, 수저우(苏州) 시내 호텔에서 인터넷으로 뉴스 읽고 자료 찾고 하다가 샤워도 하고 TV도 보고 과일도 깎아 먹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약간 지루해 시내 구경을 하고 싶었다. 바깥은 국경절 연휴로 시끄러웠다.

황진저우(黄金周)가 막 시작되었는데 많은 시민들이 몰려나와 매우 혼잡하다. 중국 춘제(春节), 라오둥제(劳动节)와 함께 3대 황금연휴이라 보니, '13억'의 나라답다 하겠다.

'동방의 베니스'라 불리는 수향이며 예로부터 '수항저우메이런(苏杭州美人)'이라 했다.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도시. 상하이(上海)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는 소득수준이 꽤 높은 도시 중 하나이다.

황금연휴가 되면 백화점들은 바야흐로 갖가지 세일행사를 진행한다. 전통적인 세일 방식은 가격할인, 즉 다저(打折)라고 하는데 우저(五折)라 하면 50%로 잘라 판다는 뜻이 된다. 치저(七折)라고 하면 70%로 판다, 즉 30%를 할인해 주는 것이다.

또 하나 색다른 할인 방식으로는 가격은 할인하지 않지만 얼마 이상 구매하면 얼마를 되돌려준다는 식의 방법이 있다. 300위엔 구매하면 100위엔을 '더 쑹(送)한다'. 사실 깎아준다는 뜻이나 사실은 100위엔어치 더 구매할 수 있는 쿠폰을 준다.

수저우 시내 한 호텔에서
 수저우 시내 한 호텔에서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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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시끄럽다. 북이나 꽹과리 같은 악기가 동원된다. 고막 안 터지는 게 이상할 정도다. 그렇게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건물마다 붉은 현수막을 길게 내려뜨려 놓는다. 특가로 판매되는 상품을 줄줄이 써놓은 것이다. 애드벌룬도 붕붕 사람들을 들뜨게 하는데 일조한다. 작은 무대를 만들어놓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장기자랑 하면서 상품 주고 그런다.

엄마 아빠 따라나온 아이들도 신난다. 스케이트 보드도 타고 엄마한테 떼 써서 물놀이기구에 들어가 놀기도 한다. 한 행사장에 아이들이 꽤 모여서 노래도 부르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유행가인 라오슈아이따미(老鼠爱大米), '쥐가 쌀을 좋아하듯 당신을 사랑해' 뭐 그런 노래를 아이들이 끝까지 따라 부른다. 경품을 받으려면 기다려야 한다.

요즘 도시 곳곳에 유행하는 행사 중 하나가 바로 결혼사진 촬영이다. 직원들이 나와서 길거리를 점령하고 손을 잡고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사진 촬영하면 신부에게 공짜로 선물을 준다는 프로모션도 있다. 한국노래를 시끄럽게 틀어놓기도 한다. 세계유명 브랜드의 자동차, 가전제품도 있다. 패스트푸드 점에도 사람들이 많다.

날씨가 거의 30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 꽃으로 장식한 '환두궈칭(欢度国庆) 2007'가 아주 선명해 눈에 확 띤다. '국경일 잘 보내라'는 뜻이지만 사실 '국경일에 물건 좀 많이 사세요'로 보인다.

한바탕 돌아다녔더니 피곤했다. 호텔로 돌아와 더위를 씻고 잠깐 쉬려고 누웠는데 침대가 너무 푹신해, 정말 포근한 잠을 새벽 5시까지 10시간이나 잤다. 여행의 피로가 몰려왔나 보다. 새벽녘 창문을 여니 여명이 밝아온다.

10월 3일 12시가 넘었다. 이제 수저우의 타이후(太湖)를 찾아가려고 한다. 지도를 보니 아주 멀다. 깨알같이 생긴 시내 지도 구석구석 찾고 사람들에게 확인까지 해서 겨우 69번 버스가 간다는 것을 알아냈는데 도대체 버스가 오지를 않는다. 사람들도 거의 콩나물시루처럼 가득하다.

연구 끝에 일단 중간 지점으로 가려고 빈 버스인 2번(路)을 탔다. 버스는 여러 곳을 거치더니 놀이공원인 수저우러위엔(苏州乐园) 앞에 도착. 다시 69번을 갈아탔다. 버스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도심을 벗어나서 달리니 바깥 풍경이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다. 정류장들을 세어 보니 무려 거의 50번 이상 멈춰야 한다. 정말 멀구나.

수저우 타이후 스공산 구이윈둥 동굴 부근
 수저우 타이후 스공산 구이윈둥 동굴 부근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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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그 옛날 춘추시대 오나라 왕 부차가 서시를 위해 지은 궁이 있던 곳으로, 나무를 하천 도랑을 통해 날랐다는 것에서 유래한 무두(木渎) 마을을 지났다. 부차는 이곳 링옌산(灵岩山)에 궁을 짓고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는 정원을 꾸몄다고 한다. 시간되면 꼭 다시 이곳을 와야지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달리고 달려 조금씩 호수가 가까워지는 듯하다. 타이후는 그 면적이 거의 2500평방 킬로미터에 이른다. 정사각형으로 따져도 양끝을 60킬로미터 속도로 1시간은 달려야 할 정도가 아닌가. 물론 이보다 12배가 넘는 중국 최대의 호수인 칭하이후(青海湖)에 비하면 작긴 하지만 우리의 호수 개념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

타이후를 끼고 있는 도시는 산수가 어우러진 우시(无锡)와 동굴이 아름다운 이싱(宜兴)도 있다. 원림의 도시 수저우에서는 호수에 있는 둥산(东山)과 시산(西山)을 찾아가기가 쉽다. 지금 버스는 서산 끝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타이후 다챠오(大桥)를 건너면서부터 바다라는 착각이 들었다. 다리가 끝나고 창사다오(长沙岛)를 지났다. 다시 예산다오(叶山岛)를 지났고 시산 진 구석구석 돌더니 끝자락인 스공춘(石公村) 스공산 종점에 도착했다. 버스를 갈아타고 나서도 거의 1시간 30분이나 걸렸다.

입장권을 보니 산을 중심으로 호반을 바라보며 한 바퀴 돌면 좋은 산책길일 듯하다. 오른쪽으로 걸어가니 구이윈둥(归云洞)이라는 조그만 동굴이 나타났다. 3억년 전에 생겨난 석탄암 동굴이라 하는데 그 속에 불상이 하나 있고 주변에는 꽃과 나무들이 피었다.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와 구름이 머무는 곳이라니 이름은 운치가 있는데 동굴은 좀 민간신앙 냄새가 많이 난다.

동굴 옆으로 난 둥근 문이 오히려 운치가 있다. 문을 지나 가니 왼편 산자락에 2개의 라이허팅(来鹤亭)과 돤산팅(断山亭) 정자가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아래가 절벽이라 어떻게 올라가지? 궁금했는데 옆쪽으로 가파른 계단길이 있다. 이 정자를 세운 명나라 시대 학자 왕오(王鏊)가 지은 시가 적혀 있다. '산과 사람이 만나니(山与人相见),하늘은 물과 함께 떠오르네(天将水共浮)'라는 문구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수저우 타이후 스공산에 있는 두 개의 정자
 수저우 타이후 스공산에 있는 두 개의 정자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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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호수나 볼까 하는 생각으로 편하게 와서 입장권을 끊고 들어왔는데 삼면이 호수로 둘러싸인 아담한 산이 이렇게 운치가 있을 줄 몰랐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 산 정상에는 서로 어깨를 기대고 선 두 개의 괴석이 있었다고 한다. 그 돌들은 부부 석으로 하나는 꼽추와 닮은 할아버지처럼 생겨 스공(石公)이라 했고 하나는 할머니 돌 스포(石婆)라 한데서 유래한다.

산모퉁이를 넘어 가니 크고 길고 높은 암석 위에 윈티(云梯)라고 적혀 있다. 구름 사다리라니 정말 낭만적인 작명이다. 한칼에 깎인 모양의 바위 위로 올라가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바위 중간까지 올라가려는 것이 불안해 보였다.

수저우 시산 스공산에서 바라본 타이후
 수저우 시산 스공산에서 바라본 타이후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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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지나니 바위 하나로 만들어진 밍위에포(明月坡)라 불리는 돌 비탈에는 정자가 있고 아래로 미끄러지듯 생긴 긴 복도가 있다. 이곳이 산비탈이고 앞에는 바로 호수라 시야가 넓다. 그 옛날 부차와 서시가 물놀이 하면서 호수를 감상하던 곳이라 한다. 호수에는 쾌속정들이 빠르게 질주하며 물살을 일렁이고 있으니 바다의 파도와 사뭇 비교해도 무방하다.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 몇 군데 놀이시설을 지나니 스공쓰(石公寺)가 나타났다. 이곳은 무공을 수련한 해등법사(海灯法师)가 창건한 사원이다. 그는 스촨 서북부 장여우(江油) 사람으로 어린 시절 지역 악질 토호에게 아버지를 잃고 복수를 다짐하며 출가해 무공 수련을 했다.

수저우 타이후 시산에 있는 스공쓰
 수저우 타이후 시산에 있는 스공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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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우 타이후 스공산에 있는 스공쓰 사원의 해등법사
 수저우 타이후 스공산에 있는 스공쓰 사원의 해등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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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을 찾아 다니며 무공을 연마하던 중 1930년대를 전후해 두 명의 소림사 고수를 만나 소림무공을 전수 받는다. 그는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악전고투 끝에 소림사 4대 절기를 완성했다고 한다.

달마조사(达摩祖师)가 면벽했던 동굴에서 7일 낮과 밤을 정좌한 채 수련해 면벽좌선(面壁坐禅)을 익혔으며 두 손가락으로 땅을 딛고 2분 동안 서 있는 이지선공(二指禅功)과 머리를 허리 아래로 집어넣는 등 온몸이 면화처럼 유연한 동자유공(童子柔功), 그리고 나무 위에서도 마치 평지에 있는 듯 가벼운 몸놀림과 균형감각을 지닌 매화춘권(梅花椿拳)을 완벽하게 익혔다고 전해진다. 그의 4대 절기는 기록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으며 장편소설이 발표되기도 했다.

스공쓰에서 10여 년 동안 수련을 했던 곳이고 유언에 따라 지금은 그의 사리탑이 조성돼 있는 곳이다. 대웅보전 앞에 들어서면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로 '불(佛)'자가 적힌 조그만 벽이 나타난다. 불전 안에는 그의 무술 수련에 관한 내용들이 전시돼 있기도 하다.

뒷마당에는 7층 사리탑이 있는데 주위에는 무술 동작들이 새겨져 있어 무림 고수였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골귀석공(骨归石公)'의 유언을 남겨 자신의 유골을 스공산에 묻어달라고 했다. 이에 사원을 짓고 탑을 세운 것이라 한다.

수저우 스공산에 무공이 새겨진 사리탑
 수저우 스공산에 무공이 새겨진 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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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을 나와 호수 쪽으로 걸어가니 낡은 배 한 척이 조용히 호수에 걸쳐 있다. 수련들이 잔뜩 물기를 머금고 있어 배가 떠나가지 못하는 것인가.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으니 왠지 스산한 느낌을 준다.

바람에 쉼 없이 나무들이 스르르 소리를 내고 있는데 한적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것은 호수를 가르는 쾌속정이다. 소리 없는 파도는 낙엽들까지 자꾸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물 속에 뿌리 박은 나무 한 그루는 허리가 꺾여서도 넘어지지 않았지만 자꾸 흐느적거리는 것은 파도 때문일까.

수저우 타이후 호수에 있는 수련과 배
 수저우 타이후 호수에 있는 수련과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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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우 타이후 호수 속에 있는 나무들
 수저우 타이후 호수 속에 있는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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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가로운 여유가 즐거워 천천히 걷는데 승마장이 나타났다. 엄마는 아이를 가슴에 안고 말을 다독거리며 걷고 있다. 바람 소리 물 소리 말 코 푸는 소리 어울리는 것 같다.

호수를 따라 이어진 산책 길을 걷고 있는데 앞쪽에서 남자 둘 여자 하나, 세 명이 불쑥 인사를 하더니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한다. 그러자 하고 찍어주고 이메일을 알려줬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 외지에서 와서 수저우 시내에서 일하고 있는데 마침 휴일이라 놀러 왔다고 한다.

국경절을 맞아 사람들이 많이 놀러 온 듯 곳곳에 사람들이 많다. 출구 쪽 넓은 잔디 광장에는 운동기구들이 설치돼 있고 오랜만에 야외에 나온 듯 장난도 치고 사진도 찍으며 휴가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수저우 타이후, 바다 같은 호수와 수련
 수저우 타이후, 바다 같은 호수와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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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로 나와 마을 재래시장을 거쳐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왔다. 여러 개 노선 버스 중에서69번 버스를 타야 한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차 한대가 새로 와서 사람들을 태우는 데 15분 정도 걸린다. 2대 정도는 그냥 보내야 앉아 갈 수 있을 듯해 기다리는데 조금 전에 사진 찍어준 친구들이 버스 안에서 부른다. 어디로 가냐고 하길래 시내로 간다니까 자기네들이 탄 버스를 타면 된다고 빨리 오라고 손짓이다. 버스를 타니 곧바로 출발했다. 그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라 지루하지 않았다.

다리 셋으로 이어진 세 개의 섬(三桥三岛)을 지나며 타이후를 쉼 없이 쳐다봤다. 끝도 없을 듯한 호수, 지금이야 다리도 생겼지만 백거이를 비롯해 수많은 문인들이 다녀간 시산. 그 옛날에는 배를 타고 왔을 것이리라. 물살을 헤치고 자신이 힘들게 지나온 호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이르러 시도 쓰고 감회도 쏟았을 터이니 명산이었으리라.


태그:#수저우, #타이후, #스공산, #중국, #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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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를 통해 중국전문기자및 작가로 활동하며 중국 역사문화, 한류 및 중국대중문화 등 취재. 블로그 <13억과의 대화> 운영, 중국문화 입문서 『13억 인과의 대화』 (2014.7), 중국민중의 항쟁기록 『민,란』 (2015.1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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