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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였다. 평범한 학생에서부터 옆집 아저씨,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까지. 그러나 그들은 특별했다. 자신이 기획한 작품의 주인공이 됐다는 점에서, 연출을 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주목받기 충분했다.

 

지난 9일과 10일, 전주 프리머스에서 ‘2007 전북 퍼블릭액세스 영상축제’가 진행됐다. 퍼블릭액세스란 시청자 제작프로그램이란 뜻으로 일반인들이 직접 미디어를 만듦으로써 지역공동체의 통합과 의제설정에 참여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디어 손 내밀다’란 주제로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이하 영시미)’가 주최한 이번 행사엔 영시미 미디어 교육 수료작과 제작지원작 등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기획한 다양한 작품들이 상영됐다. 비록 많은 관객과 소통하진 못했지만, 시민들 자신이 직접 참여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상영작들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행사의 주인공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소식을 듣고, ‘전북지역 퍼블릭액세스 제작자의 밤’을 찾아갔다. 그곳엔 미디어가 내민 손을 잡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분위기는 조촐했다. 마치 그들의 삶처럼, 그들의 이야기처럼….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우리 같은 사람이 영화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겠어요. 영시미에서 진행한 영상아카데미교육이 시민들을 위해 무료로 진행된다는 것을 알고 교육을 받았죠.”

 

건축일을 한다던 조영권(45)씨는 지난달에 진행된 2007 영상아카데미에 참여했고, 그 수료작으로 <단절>이란 단편영화에 출연했단다.

 

<단절>은 너무나도 삭막한 가족의 일상을 통해 무감각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되짚는 내용을 담은 3분 9초짜리 작품이다.

 

“아~ 많이 창피하죠. 내가 3명의 가족 중에서 아빠 역할을 맡았어요. 아~ 언제 연기를 해본 적도 없고, 실수투성이였어요. 그런데 그것이 다 재미더라고요. 언제 이렇게 잘못(?) 만들어진 것을 볼 기회가 있겠어요. 잘 만들어진 것은 잘 만들어진 대로 재미가 있고, 또 초보적인 것은 어설픈 대로 그 나름의 재미가 있거든요. 다른 작품들 역시 우리 일상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현실적이고 피부에 와 닿더라고요.”

 

조씨와 같은 기간에 교육을 받은 채윤영(25)씨는 <나무와 못>이란 영화에서 출연과 더불어 사운드를 담당하는 스태프 몫까지 해냈다.


“저는 편집에 관심이 많았어요. 인터넷을 보다가 교육에 대해 알게 됐고, 참여를 했죠. 교육은 금, 토, 일 해서 3주간 진행이 됐어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교육과 함께 작품까지 만들어야 했죠. 그래도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오히려 교육기간, 작품 촬영하는 시간 내내 즐거움이 가득했죠.”

 

<나무와 못>은 패싸움에서 살인을 저지른 열일곱 고등학생의 이야기이다. 사회와 학교로부터 버림받은 주인공이 소년원에 갔다가 다시금 사회로 나와 세상과 맞서기까지의 과정을 8분 동안 담아낸다.

 

일반인들이 촬영기기를 이용해 영화를 만들기까지엔 숨은 조력자가 있었다. 바로 우리 지역 출신의 진영기 감독이다. ‘나의 가족’, ‘루즈 볼’, ‘작은 이야기’ 등의 독립영화를 만든 진 감독은 이론적인 교육을 담당했을 뿐 아니라, 촬영에 있어서도 전문적인 부분을 도와줘 시민들에게 ‘친절한 감독’으로 불린다.

 

“제가 지역에서 독립영화를 제작할 때, 영시미 측으로부터 창작지원을 받았어요. 그것이 계기가 돼 영시미에서 진행하는 각종 시민 대상 교육에서 강의를 맡게 됐죠. 참여하는 시민들 모두 즐거움을 느끼고 만족하니까 저 역시 보람을 느낍니다. 작품의 퀄리티는 둘째 문제고, 그들이 재밌어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상영작 중에는 지난 겨울 진행된 단편영화제워크숍의 수료작들도 있었다. 자신이 처음 만들어본 영화에서 조연출을 담당했던 전민경(21)씨는 진 감독에 대한 고마움을 빼놓지 않고 얘기했다.

 

“<골목길 소동>이란 영화를 찍었는데, 대부분 밤 촬영이라서 조명에 신경이 많이 쓰였어요. 전 조연출을 맡았지만 스태프가 부족해 조명까지 담당하게 됐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진영기 감독님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어요.”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던 민경씨는 당시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할 말이 많단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골목길이 배경이 되는 영화예요. 전주지역 내의 골목길이랑 집을 섭외해서 영화를 찍어야 했는데, 길을 막고 밤늦게 촬영을 해 동네 주민들에게 욕을 듣기도 했어요.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전기를 따오는 것도 쉽지 않았고요. 그런데 고맙게도 한 할머니께서 고생한다며 스태프 전원에게 커피를 타 주셨어요. 그땐 정말 너무 고마웠죠."

 

<골목길 소동>은 5분 33초 분량의 드라마다. 주인공 상태는 매일 밤 심부름을 시키는 엄마가 밉다. 오늘도 어김없이 상태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엄마. 밤길이 무서운 상태는 투정을 부려보지만 가차 없이 대문 밖으로 밀려 나오는데…. 과연 상태는 험난한 여정을 이겨내고 엄마의 미션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인가? 상태의 파란만장 심부름기가 펼쳐진다.

 

시민들의 노력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던 까닭엔 바로 영시미가 있다. 이번 영상제를 기획한 영시미의 서정훈 교육실장은 “이전에는 공모전 형식으로 진행됐지만 올해엔 참여형 영상제로 성격을 달리했다”며 이번 퍼블릭액세스의 가장 큰 특징을 설명했다.

 

“영시미에서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미디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건 곧 미디어 접근권을 강화한다는 의미죠. 일반인들이 미디어를 통해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란 사실상 무척 힘이 듭니다. 그래서 그 기회를 제공하고자 교육을 실시하고 있죠. 시민들 스스로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미디어로 만들고, 참여하고, 관람하는 과정은 이번 영상제의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분명, 많은 관람객이 다녀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출연하고 연출한 사람들은 일상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퍼블릭액세스란 바로 나 자신이라고 생각을 해요.” 한 참가자의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들은 미디어가 내민 손을 잡은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손을 잡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선샤인뉴스(www.sun4in.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퍼블릭액세스,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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