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교협·민변·작가회의. 시민사회 진영을 대표하는 세 단체가 뭉쳤다. '지식인 공동 행동'이라는 의지를 담아 남북정상의 10·4 합의문에서 제시된 '통일 지향적 법제도 정비 대상'으로 꼽히는 국가보안법을 다시 공론의 장에 내놓았다. 북한을 '적국'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지난 2004년, 17대 국회가 출발하면서 개폐 움직임이 일었지만 보수측의 반대로 개폐 시도는 무산됐다. <오마이뉴스>는 이들 단체의 릴레이 기고를 통해, 한반도가 전쟁의 시대를 종식하고 평화체제로 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진실화화해위는 6월 12일 오송회 사건이 독재정권의 불법연행과 고문으로 조작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978년 여름 조성용(뒷줄 가운데)씨가 군산제일고 교사로 재직할 당시 이광웅(뒷줄 오른쪽) 박정석(앉은 사람)교사 등과 함께 고창 선운사를 방문했다.
 진실화화해위는 6월 12일 오송회 사건이 독재정권의 불법연행과 고문으로 조작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978년 여름 조성용(뒷줄 가운데)씨가 군산제일고 교사로 재직할 당시 이광웅(뒷줄 오른쪽) 박정석(앉은 사람)교사 등과 함께 고창 선운사를 방문했다.

1982년 전현직교사들 9명이 이적단체를 구성하거나 이를 불고지하였다는 이유로 실형을 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들은 "4·19와 광주사태의 정신을 잊지말자, 교사 자신들의 끊임없는 독서를 통해 현실비판의식을 높이자, 학생들에게 뼈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어 현실비판 의식을 높이자"라고 토론하면서 오송회라는 이적단체를 구성하였다는 것이다. 5명이 소나무 아래 모였다고 하여 '오송회(五松會)' 사건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건이다.

과연 4·19와 5·18을 기리고 학생들에게 이를 알리는 것이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인가. 적어도 당시 경찰, 검찰, 1심, 항소심, 대법원은 모두 '그렇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최고 7년까지의 징역을 살았고, 그 후 오래도록 복직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첫날 만수대의사당 방명록에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 주권의 전당'이라고 서명하고, 마지막날 서해갑문을 방문해서는 '인민은 위대하다고 서명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 북한에서 '인민'을 즐겨 쓰면서 이 말은 남한에서는 입에 올릴 수 없는 말이 되었고, 어느덧 '인민' 하면 '인민재판'이나 '빨갱이'를 떠올리게 됐다. 그런데 '인민주'이라니…. 또 노 대통령은 만찬석상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과 장수를 빌었다.

둘째날에는 '아리랑' 공연을 관람했다. 북한의 설명에 따르면, 아리랑 공연은 60년 외세의 압제를 넘어 강성대국으로 가는 북한의 역사를 그린 서사시라고 한다.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공연을 보고 기립박수까지 쳤고, 재벌 총수들도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다고 한다.

오송회와 강정구 교수,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이른바 '오송회 사건' 선생님들의 언행과 노대통령의 언행 중 어느 것이 더 '북한 체제'를 이롭게 하는 것인가. 당연히 노 대통령의 언행이다.

기존 관행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죄를 네 번이나 범했고, 재벌총수들은 공범 내지 불고지죄에 해당한다. 그런데 나는 며칠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다가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 일부 보수 단체에서 아리랑 공연 관람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였는데, 검찰은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이유는 같은 행위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의 본질이다. 형사법의 대원칙은 '행위책임'이지 '행위자책임'이 아니다. 그런데도, 국가보안법은 동일장소에서 동일한 행위를 했어도 행위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처벌 여부가 달라질 수 있는 이상한 법이다. 

내가 보기엔 "6·25는 통일전쟁"이라고 했다는 강정구 교수 말보다, 김정일의 건강과 장수를 빌고 아리랑 공연에 기립박수를 친 노무현 대통령의 행위가 북한 체제를 '직접적으로 이롭게 하는' 행위임에도, 강정구 교수만이 처벌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 사람의 생각은 누가 심사하는가. 경찰과 검찰의 공안부서가 심사하고, 법원이 심사한다. 이들이 '원래 북한체제를 이롭게 하는 자'라고 낙인찍은 이상 오송회 선생님이나 강정구 교수는 북한과 관련한 어떤 말을 해도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처벌 받을 수 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위험한 말을 해도 결코 처벌받지 않는다.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비정상의 극치이다.

2007 남북정상회담 마지막날인 4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 내외와 수행원들이 남포시 서해갑문을 방문했다. 노대통령이 서해갑문을 둘러본 후 방명록에 '인민은 위대하다'고 서명했다.
 2007 남북정상회담 마지막날인 4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 내외와 수행원들이 남포시 서해갑문을 방문했다. 노대통령이 서해갑문을 둘러본 후 방명록에 '인민은 위대하다'고 서명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생각을 처벌한다? 비정상적 수사와 고문은 어디서 시작됐나

국가보안법은 법 제정 당시부터 지금까지 연행, 체포, 기소, 재판에 이르기까지 일반형사사건과는 다른 기관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왔다. 경찰은 별도의 보안부서를 두어 왔으며, 특히 대공분실 또는 보안수사대로 불리는 독립된 특별수사기구가 사건을 전담했고, 그 외 국정원이나 국군기무사 등 비밀정보구기들이 국가보안법 수사권을 행사해 왔다.

검찰 역시 공안부를 따로 두고 국가보안법 업무를 처리하여 왔다. 자연스럽게 이들 집단은 자기학습(?)과 이에 따른 자기증식을 통해 자신들만의 조직논리를 가지게 된다. 이들은 모든 것을 '국가안보'라는 안경을 통해 이해하고 해석하면서 '안보강박'에 빠지게 된다. 문제는 이들의 국가안보 개념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향적이며, 변화하는 국민의 상식과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국가보안법 자체의 문제와 적용기관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국가보안법은 형법과 형사소송법의 원칙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비정상적인 것들의 총집합소가 되어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피의자 인권이나 과학수사는 애초에 설 곳이 없다. 법이 행위가 아닌 생각을 처벌하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수사기관은 피의자의 '자백'을 받는데 총력을 기울이게 되고, 이를 위하여 수십년간 온갖 비정상적인 수사방법을 고안해 왔다.

우리가 기억하는 수많은 섬찟한 고문들은 거의 모두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이루어졌다. 이 역시 자백 때문이다. 오송회 사건 당시에도, 대공분실 수사관은 전기고문, 칠성판 고문, 비행기고문 등 악명 높은 고문은 물론 피해자를 통닭처럼 매달아놓고 얼굴에 수건을 덮고 자신이 먹던 짬뽕 국물을 계속 부어댔다. 피의자의 의지를 굴복시킨 후에는 '진술서'를 요구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진술서에 적게 한다. 입맛에 맞을 때까지 수회에 걸쳐 다시 작성하면서 내용까지 코치한다. 피의자들은 진술서를 반복하면서 실제로 그런 일을 했던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오송회 사건 피해자들도 각자 수십장이나 되는 진술서를 6~7회에 걸쳐 반복 작성하였다. 피의자가 여러명인 경우에는 피의자들의 자백내용을 꿰어 맞춘다. "옆 방 사람은 다 불었는데 너만 멍청하게 버티냐", "네가 이러면 다른 사람이 다친다"고 회유와 협박을 반복한다. 이렇게 해서 완벽한 자백이 나온다.

오송회 사건 피해자들의 경우 5년 전에 술집에서 있었던 말까지 글자 하나 안틀리고 정확하게 일치하는 진술서를 작성하였다. 필자 역시 학생시절 다른 동료들과 함께 홍제동분실에서 조사를 받은 일이 있다. 학생이라서 잠안재우기 외에 심한 고문을 받지는 않았지만, 필자 역시 자백과 수차례의 진술서 작성을 강요당하였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이상 위와 같은 비정상적인 수사관행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일 수 밖에 없다.

경찰·검찰·법원... 법치주의의 무덤이 될 국가보안법

지난 시기 수많은 국가보안법 관련 판결들이 법원의 재심이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의하여 부정당하고, 최근에는 인혁당 사건에서 판결의 위법성까지 선언됐다.

오송회 사건에 대하여도 불법구금 및 고문행위로 인한 자백강요가 있었음을 인정하는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내려졌고, 현재 재심개시결정이 신청된 상태다. 국가보안법은 피해자의 인권 뿐 아니라, 검찰과 법원의 정당성의 뿌리까지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필자는 국가보안법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국가보안법은 앞으로도 경찰, 검찰, 법원 모두의 무덤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경쟁을 통하여 선택되어야 할 생각을 법이 나서서 법관이 죄를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같은 행위로 오송회나 강정구 교수는 처벌되고 대통령은 그렇지 않는 것도 넌센스다.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보를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같은행위로 처벌받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나누어 분열시키고, 국가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나아가 형사절차에서의 인권의 진전을 막고 있음은 물론, 수사기관과 법관들까지 무의미한 고통에 밀어넣고 있다. 이들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국가보안법이 사라질 때다.

3일 아리랑 공연이 펼쳐질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 노무현 대통령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참석, 화환을 받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 아리랑공연 참관 화환받는 노대통령 3일 아리랑 공연이 펼쳐질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 노무현 대통령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참석, 화환을 받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민변 소속의 송상교 변호사가 쓴 글입니다.



태그:#국가보안법, #강정구, #오송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