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면담이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의 외교 행보가 첫발부터 '미숙'으로 얼룩졌다는 점에서 이 후보의 국가지도자로서의 자질 및 역량 문제가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오르게 됐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3일 "방미 일정과 관련해서 그동안 저희는 저희 측 라인을 통해 면담성사 여부를 전해 들었을 뿐인데 지금 미국 국무부와 대사관 측에서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다"며 "저희는 더 이상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 대변인은 "4강 외교는 경제·자원 외교로 추진하는 것인 만큼 부시 대통령 면담 성사여부와 관계없이 4강 외교를 계속해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을 추진해온 재미동포 강영우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가 "두 사람의 면담은 (공식) 외교라인이 아닌 사적 라인을 통해 주선한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히고 있지만 한나라당이 면담에 거는 기대가 크게 가라앉은 것은 분명하다.
이 후보의 측근들은 하나같이 "국내에서 부시와의 면담을 추진했던 박대원 전 알제리대사나 박형준 대변인이 알 수 있는 문제"라며 말문을 닫았는데, 갑작스럽게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이 무산된 것에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대미관계 가장 중시하는 정당에 백악관 사정 밝은 전문가 없었다
한나라당의 이명박-부시 면담 추진과정은 한마디로 '아마추어리즘'으로 일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교 문제를 전담하는 미 국무부와 대통령의 외빈 접견을 관리하는 국가안보회의(NSC)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강영우 차관보라는 비선 라인에 의존해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을 무리하게 추진했을 때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인 셈이다. 이 대목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법 로비해서 공사를 입찰하는 옛날 사장 방식으로 미국 대통령 면담을 추진했다"(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혹독한 비판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강 차관보가 "이 후보와의 회동을 고려해보겠다(consider)"는 백악관 의전실장의 공문을 마치 면담이 확정(confirm)된 것으로 상황을 오판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이를 제대로 확인하는 절차도 없이 면담 계획을 서둘러 발표한 것도 너무 성급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주변 4강중 대미관계를 가장 중시하는 정당에 미 행정부와 백악관 사정에 정통한 외교전문가가 있는 지조차 의심받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달 28일 강 차관보가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 계획을 워싱턴 D.C의 주미 특파원들에게 먼저 흘리자 박형준 대변인은 몇 시간 뒤 당사에서 부랴부랴 면담을 '확인' 발표하는 어색한 모양새를 연출하기도 했다.
박 대변인은 "이번 면담은 외곽이나 사적 경로가 아닌 백악관 공식채널을 통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미국 대통령이 10월 중순에 (이 후보를) 만난다는 것은 미국이 이 후보의 위상을 인정한 것이고 차기정부까지 내다본 결정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후 면담의 불확실성이 증폭되자 극도로 말을 아꼈다.
익명의 한 의원은 "일레인 차오 노동부 장관, 미치 맥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총무, 톰 리지 전 국토안보부 장관 등 거물급 정객들의 이름이 언급되길래 부시와의 면담 추진이 전방위로 이뤄진 줄 알았는데 모두가 강 차관보가 접촉한 인사들이었다"며 "강 차관보 한 사람만 쳐다보다가 당이 우습게 됐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하지 않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