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어린 왕자>촬영장면 연홍미술관 마당에 대낮같이 조명을 밝힌 채 촬영을 강행하고 있다.

▲ 영화<어린 왕자>촬영장면 연홍미술관 마당에 대낮같이 조명을 밝힌 채 촬영을 강행하고 있다. ⓒ 최경필

"참 맑은 영화"라고 했다. 영화에 대한 소개를 부탁하자, 연출을 맡은 최종현 감독의 첫마디였다. 요즘 한국영화의 침체기, 또는 <디워>, <화려한 휴가>로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영화계의 상반된 평가가 있지만, 기본 관객 수를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코믹영화가 아닌, 휴먼드라마 같은 영화 한편이 제작되고 있다.


지난 6월부터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촬영을 시작한 영화 <어린 왕자>가 이제 남도의 조용한 한 섬에서 그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1943년에 발표된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동화를 소재로 삼아 영화제목으로도 사용했다. 언뜻 제목과 소재만 놓고 볼 때 주제가 무거울 것 같지만, 최종현 감독은 "무거운 주제를 쉽게 풀어내고 싶었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영화는 상처를 간직한 폴리아티스트(음향효과 기술자) '종철(탁재훈 역)'이 겪게 되는 훈훈한 사랑과 뜨거운 감동을 그리고 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창조해내는 폴리아티스트 '종철'은 자기 일에서는 최고지만, 가정에서는 반쪽자리 아빠다. 5살도 안된 아들을 잃은 종철이 교통사고를 통해 만난 '영웅(강수한 역)'은 바로 먼저 보낸 그의 아들 은규의 분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왠지 모르게 '영웅'에게 끌린 '종철'은 '영웅'이 햇빛재활원에 있는 몸이 아픈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사고처리를 핑계로 만남을 계속한다. 죽은 아들 때문에 아내 '선옥(조안 역)'은 '영웅'의 등장에 대해 불편해하고 오히려 가족 간의 갈등만 높아지는 가운데, '영웅'이 한번 입양되었다가 파양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된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처지, '종철'의 '영웅'에 대한 진심어린 행동에 부부간의 불신과 갈등도 사라지고 '영웅'과 함께 살기로 한다. 그러나 '종철'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영웅'의 병세는 악화되고, 결국 '종철'은 아이에게 최고의 추억을 남겨주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준비한다.

 

영화<어린 왕자>촬영장면 3일 동안 계속된 촬영에도 조연, 단역으로 출연한 어린 아역배우들까지 장면마다 최선을 다했다.

▲ 영화<어린 왕자>촬영장면 3일 동안 계속된 촬영에도 조연, 단역으로 출연한 어린 아역배우들까지 장면마다 최선을 다했다. ⓒ 최경필

영화<어린 왕자>촬영장면 막바지 촬영이지만, 모두 피곤한 기색도 없었다.

▲ 영화<어린 왕자>촬영장면 막바지 촬영이지만, 모두 피곤한 기색도 없었다. ⓒ 최경필


최종현 감독이 마지막 로케장소로 고흥군 금산면의 외딴섬 연홍도를 삼은 것은 지난 해 폐교를 개조해 만든 연홍미술관을 '영웅'이 생활하는 '햇빛재활원'의 소재로 삼았고, 조용히 촬영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중순쯤 잡혔던 촬영일정이 시도 때도 없이 계속 내리는 비로 연기되어 지난 8일부터서야 촬영을 시작했다. 조그만 섬, 겨우 70여명의 주민들이 사는 이곳에 스테프진만 70여명에, 출연진까지 100여명이 넘게 찾아왔다.


영화제작 차량과 크레인 등 장비 등이 화물선으로 공수되었고, 미술관과 섬 방파제 등에는 대낮처럼 조명을 밝히면서 3일 동안 밤낮으로 촬영이 강행되었다. 마침 긴 장마가 그치고 촬영 기간 동안 바람조차 잠시 멈춘 채 촬영을 도와주었다.


영화 내용상 출연진으로 어린 아이들도 10여명이 찾으면서 섬마을에도 모처럼 생기가 돌았다. 늦은 밤 촬영장 한쪽에 자리 잡은 노인들은 오랜만에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자리를 쉽게 뜨지 못했다. 한 주민은 "예전에는 150여 가구가 넘게 살았고 아이들도 많았는데, 이제는 겨우 한두 명 정도 밖에 없다"며 밤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영화나 문화의 혜택을 받지 못한 이곳 주민들에게 영화의 줄거리나 주인공이 누구인지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오랜만에 찾아온 외부사람들과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반가울 뿐이다.

 

연홍미술관 야경 막바지 촬영으로 대낮처럼 조명을 밝힌채 촬영을 하고 있다.

▲ 연홍미술관 야경 막바지 촬영으로 대낮처럼 조명을 밝힌채 촬영을 하고 있다. ⓒ 최경필


내가 찾은 이날 밤도 날을 세워가며 동이 틀때까지 촬영이 계속 되었다. "슈", "하나", "둘", 셋......."그만". 모니터에 앉아 주문하는 연출감독, 카메라 감독과 바쁘게 움직이는 제작진들.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모두가 숨소리조차 죽인채 움직인다. 주인공 '영웅'이 눈을 감은 장면만 3시간 가까이 촬영할 정도로 한 장면 한 장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최종현 감독은 2005년 개봉한 <나의 결혼원정기>에서 조감독을 맡았고, 이번 <어린 왕자>가 첫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이 영화에는 가족을 잃은 상처에 갇혀 살지만, '어린 왕자' 영웅을 만나 상처를 극복해가는 종철 역에 만능 엔터테이너 탁재훈이 맡았다. 최근작인 <내 생애 최악의 남자>까지 주로 코믹 영화에 출연해온 그가 이번 작품에서 내면의 심리를 밀도 있게 그려내야 하는 정극 연기에 처음 도전하고 있어 진정한 배우로 거듭나기 위한 새로운 도전이다.


많이 아프지만, 항상 밝은 '어린 왕자'같은 아이 '영웅'역을 맡은 강수한은 이제 겨우 8살로 SBS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에서 오윤아의 아들 역을 맡아 출연했다. 늦은 밤까지 이어진 촬영에도 흐트러지지 않고 촬영에 임할 정도로 맑은 미소를 가진 아이이자, 차세대 아역스타로 기대되고 있다.


또 최근 <홀리데이>, <므이> 등 여러 장르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내고 있는 배우 조안이 털털하고 무뚝뚝하지만, 그 마음만은 포근하고 여린 '종철'의 아내 역을 맡아 출연했고, 중견배우 전무송, 최주봉, 이효재 등를 비롯하여 최근 <화려한 휴가>에서 '용대'역을 맡아 열연했던 박원상이 조연으로 출연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는 어린 아이들이 많이 등장하고 대사 중에 욕이 전혀 없는 영화로 나이에 관계없이 가족들이 함께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가족의 정"이라고 최종현 감독은 말했다.


주인공 '종철'역에 탁재훈을 캐스팅한 것도 "(그의) 강한 코믹이미지가 (오히려) 영화를 쉽게 풀어가는 데 힘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가족사회가 붕괴되는 요즘 사회상을 반영했고, 영화를 통해 가족의 중요성을 새삼 돌이켜볼 수 있는 이 영화에 거는 기대는 영화의 흥행을 떠나 그 나름대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오는 11월 초에 롯데시네마를 통해 개봉할 예정이며, 시간이 촉박하지만 다음 달 열릴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출품할 계획.

2007.09.13 11:51 ⓒ 2007 OhmyNews
어린왕자 연홍도 연홍미술관 고흥군 탁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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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어용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세월호사건 후 큰 충격을 받아 사표를 내고 향토사 발굴 및 책쓰기를 하고 있으며,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인생을 정리하는 자서전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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