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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씨 계신가요? 등기왔습니다."


지난 8월 8일 오전이었다. 군에 간 아들 앞으로 등기 한 통이 배달됐다. 송파구청 청소행정과에서 온 등기였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도 예전에 살았던 동네도 아닌 송파구에서 그것도 청소행정과에서 아들에게 무엇 때문에 등기를 보냈는지 궁금했다.

 

군대간 아들이 서울서 담배꽁초 무단투기?

 

등기 안에는 과태료 부과 통지서가 들어 들어있었다. 내용인 즉, 아들 녀석이 지하철 가락시장역 인근 횡단보도에서 담배꽁초를 무단 투기했으며 현장에서 적발되어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는 것이다.

 

"어머 어머… 기가 막혀서. 뭐 이런 나쁜 녀석이 다 있니? 창피하게 이게 뭐야. 담배를 피웠으면 피웠지 왜 아무 데나 버려가지고 부모한테 벌금 청구서까지 날아오게 만드는 거야. 난 못내 줘. 군인월급으로 내라 그래."

 

혼자 아무리 욕을 해봐야 군에 간 아들이 들을 리 없고 꼼짝없이 대신 벌금을 물어주어야 할 판이었다. 과속 위반, 주정차 위반으로 과태료를 물어보긴 했지만 아들이 버린 담배꽁초로 벌금을 물어야 한다니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올해 초부터 서울의 자치구 별로 대대적인 담배꽁초 무단투기 단속을 벌여 엄청난 과태료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뉴스를 들은 것도 같다. 거리도 깨끗해지고 과태료 수입도 늘어나니 참 좋은 제도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있을 줄이야….

 

낼 때 내더라도 아들에게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군대 가기 전 그런 단속에 걸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날아온 통지서 내용을 다시 한번 읽어 보다가 깜짝 놀랄 사실을 발견했다.

 

단속 날짜는 통지서를 받기 이틀 전인 8월 6일이었다. 입대 한달 만인 8월 4일, 첫 면회 후 집에 와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인 8월 5일 부대 앞까지 데려다 줬는데 그 다음날인 8월 6일 서울에 나타나 담배꽁초 무단투기를 하고 딱지를 떼었다니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확인을 위해 송파구청 청소행정과에 전화를 걸었다. 과태료 통지서에는 과태료 처분에 불만이 있는 경우 의견진술 절차를 거칠 수 있다는 항목이 나와 있다.

 

"아들은 군인이구요. 적발된 날짜에는 부대에 있었습니다.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은 맞지만 주소도 전화번호도 틀리구요.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은데 다시 한번 확인해 주세요."


"에이~ 그럴 리 있겠습니까? 단속한 공무원이 그렇게 함부로 하지 않거든요. 아드님한테 물어보세요. 분명히 아드님 맞습니다."


"글쎄, 아들이 군인이라 지금 부대에 있다니까요. 제가 분명히 일요일 부대 앞에 데려다주고 왔어요. 그런데 월요일에 어떻게 그 장소에 갑니까?"


"주민등록증번호 맞지요? 이름도 맞잖아요. 이거 우리가 마음대로 적는 게 아니고 아드님이 직접 적어준 겁니다. 거기 사인도 했잖아요. 부대에서 잠깐 나왔다가 걸린 거겠지요. 다시 물어보세요."


"통지서에 의견진술할 수 있다고 나왔잖아요. 지금 의견진술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어떤 절치를 거쳐야 이 과태료처분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세요."


"아 글쎄. 과태료 처분은 잘못된 게 없다니까요. 아들한테 물어보세요."

 

이런 마이동풍이 있나. 민원인이 자신의 억울한 입장을 설명하고 있는데 해당 공무원은 그저 웃어가며 자신들의 단속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잘못을 저지른 아들을 비호하고 있다는 듯 아무리 그래도 소용없다는 투다.

 

할 수 없이 아들의 부대로 전화를 걸었다. 혹시라도 그의 말처럼 부모도 모르게 서울에 나왔다 들어갔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당연히 아들은 서울에 나온 일이 없다고 한다.

 

다시 전화해서 아들이 부대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누군가 분실된 아들의 주민등록증을 도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문을 제기했다. 주민등록증과 함께 본인확인 절차를 거쳤느냐고 물으니 당연한 것 아니냐며 어이가 없다는 듯 비웃기까지 한다.

 

단속 공무원 잘못을 왜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지?

 

말이 통하지 않는 공무원과 통화하며 약 올라 하는 나를 본 남편은 자기도 화가 나는지 본인이 직접 전화를 해 보겠다면서 전화번호를 가져갔다.

 

남편 역시 무척 화가 났다고 했다. 해당 공무원들이 모두 민원인들의 호소를 들어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속했던 담당 공무원과의 직접 통화를 원했더니 "알 수 없다", "자료가 없다", "자리에 없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더니 소송이니 손해배상이니 시민의 법적권리를 들먹거리자 비로소 연락받을 전화번호를 남기라고 했단다.

 

여러 번의 통화 끝에 남편은 과태료 고지서를 발부했다는 담당 공무원과 직접 통화할 수 있었다. 송파구청에 근무한다는 해당 공무원은 우연히 길을 지나다 담배꽁초를 무단 투기하는 젊은이를 적발했으며 주민등록증을 소지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확인은 하지 못한 채 불러주는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를 받아 적었고 사인을 받았다고 했다.

 

덧붙여 보통은 그 자리에서 벌과금 고지서를 직접 전달하는데 바쁜 일이 있다면서 달아나버려 우편으로 과태료처분 통지서를 보냈다는 것이다.  

 

우리 생각대로 누군가 아들의 주민번호를 도용한 것이며 해당공무원은 주민등록증은 물론 본인 확인도 없이 과태료 고지서를 발부했다는 것이다.

 

단속 공무원의 실수가 확인됐으면 잘못된 적발 절차로 인해 정신적, 시간적인 피해를 입은 시민에게 사과하고 적발사실을 무효화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일 것이다. 하지만 구청의 반응은 달랐다.

 

"이미 대장상에 등재된 것이라 삭제는 불가능하구요. 아드님 부대에 연락하셔서 해당 날짜에 부대에 있었다는 소재증명을 떼어서 구청으로 보내주시면 서류를 근거로 과태료부과를 무효로 해드리겠습니다."

 

공무원이 주민등록 확인 절차를 소홀히 해서 일어난 행정적인 실수인데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시민이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전화를 하고 팩스를 받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가 아닐 수 없다. 
         
염치도 없고 성의도 없는 공무원의 태도에 화가 난 남편은 또 한번 공무원과의 통화에서 큰 소리를 냈다고 했다. 나 역시 여전히 시민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공무원들의 태도에 실망을 넘어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들이 소속된 부대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지었다. 공문을 띄우든 팩스를 받든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우리가 나설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여일이 흐른 9월 5일 구청에서 답신이 왔다.   

 

내용은 간단했다. 의견진술이 받아들여져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어디에도 공무원의 실수로 시민에게 불편을 끼쳐서 죄송하다는 문구는 없었다.
 

건수 올리기식 무리한 단속 안돼


올초 강남구청에서 시작된 담배꽁초 무단투기 단속은 높은 적발 건수와 엄청난 과태료 수입으로 실효를 거두고 있어 서울시 전 자치구로 급속 확산되고 있다. 더구나 서울시에서 담배꽁초 단속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부여 방침을 밝힌 후로는 자치구별로 공무원을 동원해 대규모 적발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송파구청 역시 지난 5월 1일부터 공무원을 동원 집중단속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이런 집중단속의 와중에서 우리 아들의 경우와 같은 시민들의 피해 아닌 피해가 커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적발 시 범죄자를 취조하듯 시민을 대하는 공무원들의 위압적 태도는 물론, 의욕만 앞세운 막무가내 과잉 단속에 사람들 틈에 몰래 숨어 있다 나타나는 함정단속까지…. 송파구청 게시판에도 이에 항의하는 시민의 글도 적지 않게 올라와있다.

 

시민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힘들면서도 생기는 것 없는 계도보다는 건수마다 과태료가 부과되는 단속에 열심을 다하다 보니 생겨난 불미스러운 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담배꽁초 무단투기 단속은 깨끗한 거리조성을 위해 필요한 제도라고 하지만 담배꽁초를 버리지 않도록 계도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지 단속을 핑계로 시민의 권리 위에 군림하려 든다거나 과태료부과 건수를 올리기 위해 무리한 적발을 일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아직 채 1년도 되지 않은 담배꽁초 무단투기 단속, 앞으로 더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겠지만 시민들의 편의와 쾌적한 생활을 위한 제도인 만큼 서둘러 적발에 나서 자치구별 살림 불리기에만 급급하다는 오해를 받기 보다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태그:#담배꽁초무단투기, #송파구청, #과태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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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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