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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위원회는 오는 27일 숱한 논란을 불러왔던 생명보험사 상장 문제를 매듭지을 예정입니다. 상장자문위원회에서 상장 차익을 계약자에게 배분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놓은 가운데 정재욱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가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주>
▲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생명 본관.
ⓒ 오마이뉴스 김종철
한미FTA 문제나 재미교포의 총기난사 사건 등 여러 국사를 처리하시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그런데 제 마음 구석 한편을 짓누르는 일이 하나 있어 어쩔 수 없이 대통령께 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생명보험회사 상장'과 관련된 일인데, 지난 18년간 논의되어 왔던 바로 이 문제가 이번 주 금요일(27일) 금융감독위원회에 의해 일방적으로 매듭지어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늘 저는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이른 새벽녘 책상 앞에 앉아 간절한 마음으로 대통령께 감히 이 글을 올립니다.

지난 18년간 끌어왔던 국내 생보사의 상장은 세계 7위의 보험대국에 걸맞지 않는 빈약한 자본력을 확충하고 생보사의 소유 및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마땅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지난 50여년간 생보사 성장에 기여했던 보험계약자의 공헌이 부인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보험계약을 가입할 때는 '왕'처럼 대접받다가 막상 보험금 지급이나 이익배분 문제가 야기될 때는 이런 저런 핑계를 들어 '봉' 취급당하는 일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됩니다.

갑자기 뒤집힌 상장자문위의 결론

돌이켜보면 생보사 상장시 주주와 계약자간의 이익배분 상충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지난 1999년부터 모두 3차례에 걸쳐 각기 다른 상장자문위가 구성되어 상장을 추진한 바 있습니다.

먼저 금융감독원 내에 설치·운영된 1차(1999년) 상장자문위의 결론은 과거 생보사들이 보험계약자에게 배분해야할 배당금을 아예 지급하지 않거나 또는 충분하게 지급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보험계약자들이 경영위험을 공유해왔음을 적시하면서 계약자에게 상장이익을 배분하라는 결론을 도출한 바 있으나, 당시 신임(이근영) 금감위원장의 취임과 함께 유야무야되고 말았습니다.

참여정부 초기에 금감위 내에 설치·운영된 2차(2003년) 상장자문위도 계약자 배당의 불충분성과 상장차익의 계약자 배분 타당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으나, 당시 해당 생보사인 삼성생명 등의 강력한 반발로 역시 무산되었습니다. 하기야 아무리 주인일지언정 말을 물가까지는 끌고 갈 수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한편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참여정부 후반기(2006)에 증권선물거래소에 설치·운영된 제3차 상장 자문위의 활동과정에서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너무나 많이 발생했습니다.

우선 2003년과 동일한 위원장(KDI 나동민 박사)이 작업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자적 양심을 외면한 채 노벨상 운운해 가며 180도 다른 결론(계약자배당은 충분했고 계약자는 경영위험을 공유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상장차익을 배분할 필요가 전혀 없다)을 도출하는 데 선봉장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새로운 분석기법을 도입했기 때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지만, 보험이나 금융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이는 과거의 결론을 뒤집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된 노리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국회 정무위 및 재경위 국회의원, 그리고 시민단체 등에서 결론에 대한 제3자 검증을 위해 분석에 사용한 데이터와 가정을 공개하라고 누누이 요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상장자문위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컨설팅업체(틸링하스트)로부터 이미 검증을 받았기 때문에 결론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따라서 자료를 공개할 수도, 또 그럴 필요조차도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결론 뒤집은 새로운 분석기법, 왜 공개 안하나

▲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교보생명 본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저는 이 순간 지난 해 줄기세포 연구로 온 국민에게 환희와 절망의 청룡열차를 선사했던 황우석 박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TV 등에 태연한 모습으로 나와 세계적 과학권위지인 사이언스, 네이쳐 등에 이미 게재된 논문인데, 국내 과학자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업적을 비하하려 하고 있다는 그의 천연덕스러운 언변이 아직도 제 귀에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다음으로 금감위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태도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초에 금감위는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정부·해당 생보사·시민단체 등을 배제하고, 철저히 제3자 위주로 상장자문위를 구성하겠다고 공언을 한 바 있습니다. 이것이 과거와는 달리 상장자문위가 금감위 또는 금감원이 아닌 증권선물거래소에 설치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금감위는 생보사와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온 인사들로 상장자문위를 구성하는 데 깊숙이 개입했고, 또 상장자문위는 이미 짜여진 각본에 따라 현재의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보험계약자 보호라는 감독당국 본연의 의무와 책임은 망각하고 오히려 생보사 경쟁력 제고라는 미명 하에 보험계약자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반면에 통합감독기구인 금감위 및 금감원이 출범하기 이전까지 생보사의 감독정책을 맡아왔던 재정경제부의 입장은 어찌되었든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처음 생보사 상장이슈가 부각되었던 1989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국내 생보사는 주식회사와 상호회사의 속성을 고루 지닌 혼합형회사임을 과거 문서와 수차례 증언을 통해서 직·간접적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특히 지난 2006년 10월말 재정경제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모 국회의원의 국내 생보사의 성격을 묻는 질문에 대해 권오규 재경부장관이 이를 다시 한번 확인해 주는 증언(국내 생보사는 혼합회사적 성격이 있다)을 하였습니다.

공익기금 조성은 여론무마용 사탕발림

국회, 시민단체 등의 반발을 의식해서였는지 연초부터 윤증현 금감위원장이 직접 나서 공익기금 조성을 공공연하게 언급하고 다니기 시작했고,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지난 4월 6일 생보협회는 향후 20년 동안 총 1조5000억원의 공익기금을 조성하여 사회공헌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이를 확인해줄만한 어떠한 합의문서도 공개되지 않았을 뿐더러, 이 돈이 결국 여론무마용 사탕발림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사태가 이렇게 심각하고 급박하게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왠지 몇몇 뜻있는 정치인들과 소수 언론매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이 문제를 나몰라 하고 있고, 주요 언론매체는 입과 귀를 닫고 있으며 다수의 보험계약자들은 사안의 복잡성 때문에 미처 개별적인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복잡한 국정운영 때문에 불철주야 바쁘신 줄 알면서도 제가 감히 대통령께 직접 글을 올리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끝으로 말없는 2000만 유배당 보험계약자는 철저히 외면한 채 삼성생명, 교보생명 등 몇몇 생보사들만을 관객으로 증권선물거래소를 무대 삼아 진행되고 있는 금감위 각본 및 연출, 상장자문위 주연의 꼭두각시 인형극이 하루빨리 막을 내리고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상장방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대통령께서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주시길 아무쪼록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태그:#생명보험회사, #편지, #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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