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바논 국경을 따라 걸어가고 있는 이스라엘 지상군. ⓒ 연합뉴스 / AP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18일째. 하지만 납치된 이스라엘 병사 석방과 레바논의 시아파 정치세력 '헤즈볼라' 무력화를 지상과제로 내건 이스라엘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헤즈볼라 박멸은 고사하고 공습과 더불어 지상 작전이 전개되면서 병력 손실만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이스라엘이 대규모 공습을 퍼부었지만 헤즈볼라는 연일 이스라엘 북부에 로켓을 쏟아 부으며 강인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군인과 민간인 사망자가 증가하면서 '올메르트 내각'의 전략부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와 함께 반전여론이 싹트기 시작했다.
지상 작전, 비대칭성의 함정
지난 27일 이스라엘 전시내각은 공습과 포격 위주의 현행 작전을 유지하되, 제한적인 지상 작전도 병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결정은 헤즈볼라 무장해제라는 애초의 목적을 반드시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3만명의 예비군에게 소집령을 내린 이스라엘은 확전도 불사하겠다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BBC는 "공습과 지상 작전 사이에 불일치가 존재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병행전략이 잘못된 조합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군은 지난주 말부터 레바논 남부에서 지상 작전을 확대했다. 공습만으론 헤즈볼라 거점과 로켓을 발본색원해 파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지만 군사분석가들은 "헤즈볼라를 상대로 한 지상 작전은 별 효과 없이 값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현재 헤즈볼라가 보유하고 있는 실전용 전투 병력은 2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잘 훈련되고 무장된 병력들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점령 이후 20년 넘게 게릴라전을 수행하면서 산악 지형에 밝다. 따라서 현지 지형에 어두운 이스라엘군은 한 수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노릇.
유명한 군사평론가 밴 이샤이는 온라인뉴스사이트인 Y-net에 기고한 글에서 "헤즈볼라는 로켓을 미끼로 주변에 매복하면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며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헤즈볼라는 로켓을 파괴하기 위해 투입된 이스라엘군을 로켓으로 유인해 매복공격을 가하는 게릴라 전술을 사용할 것이고, 지상 작전은 이처럼 압도적 우위에 있는 적을 상대로 비전통적 전술로 대항하는 헤즈볼라의 전략에 말려들어 자칫 비대칭 전쟁(asymmetric warfare)의 함정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밴 이샤이의 지적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26일 국경에서 4Km 떨어진 빈트 즈바일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압도적 화력을 지녔음에도 9명이 사망하고 20여명이 중상을 입는 치명적인 전력 손실을 입었다. 교전이 시작된 이래 단일 전투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가져온 치욕적인 하루로 기록될 만하다.
AP통신에 따르면 올메르트 총리는 26일 비공개 국방·외교 합동위원회에서 "이스라엘에 로켓을 발사할 수 없도록 국경으로부터 2km 정도의 공간을 원하며, 이 같은 완충구역(buffer zone)이 조성될 경우 국경순찰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헤즈볼라 무장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완충지대를 만들고 국경순찰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점령의도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전력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스라엘 특수부대는 생각보다 정교한 지하터널과 벙커, 은폐된 로켓창고를 찾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지상 작전 과정에서 사망한 이스라엘 병력은 33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래도 대안은 지상 병력
지상 작전에 대한 회의론과 달리, 여전히 지상 병력의 활용을 강조하는 견해도 있다. 리쿠드당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모쉬 아렌스는 "헤즈볼라의 로켓 공격을 억제하기 위해서 병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지상전 확대를 주문했다. 헤즈볼라의 로켓은 원거리 조종이 가능하고 휴대성이 뛰어나 위치 파악이 쉽지 않기 때문에 공습만으론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개전 초기부터 헤즈볼라 거점 분쇄를 위해 원거리 포격과 공습에 의존해왔지만 민간인 희생만 키워왔다. 레바논군 당국은 445명의 사망자 중 437명이 민간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레바논 보건장관은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있는 희생자까지 합치면 6백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비인도적 공격행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25일 남부 키암 마을 공습 과정에서는 유엔감시단 건물을 폭격, 감시단원 4명이 희생돼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다. 올메르트 총리는 "표적공습이 아닌 오폭"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무기 수준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만약 오폭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공습의 한계와 치명적 결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의약품과 굴착기를 운반하던 민간인 트럭들도 공습을 비껴가지 못했다. 이스라엘 군은 트럭을 로켓 발사기를 비롯한 무기 수송 차량으로 믿고 공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전문가들은 "헤즈볼라의 로켓 능력을 떨어뜨리고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기 위해선 지상군을 활용해야 한다"는 견해와 "지상 작전은 정확히 헤즈볼라가 원하고 있는 것"이라는 견해사이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지상 작전과 공습의 비중을 놓고 갈팡질팡하는 와중에도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북부에 맘껏 로켓 공격을 가하고 있다.
로켓이 전선을 이스라엘로 끌고 들어가다
댄 할루츠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헤즈볼라는 수백 명의 인적 손실과 함께 로켓 발사 능력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헤즈볼라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매일 100발 이상의 로켓을 이스라엘 북부에 쏟아 붓고 있다.
심지어 28일에는 레바논 국경에서 50Km 떨어진 하이파 남쪽 아풀라 지역에 하리바르-1이라고 불리는 신형 미사일 5발을 떨어뜨렸다. 개전 이후 가장 남쪽에 떨어진 것으로 기록된 미사일에 대해 이스라엘 고위 관계자는 "하리바르-1은 파즈르5의 다른 이름인 것 같다"고 AP통신에 말했다. 이란제 파즈르5는 사정거리가 75Km에 달하기 때문에 텔아비브 외곽까지 도달할 수 있다.
비록 사상자는 없었지만, 단거리 로켓 공격 패턴을 유지하던 헤즈볼라가 처음으로 장거리 미사일을 이용해 타격하자 이스라엘은 충격에 빠졌다. 이틀 전 최고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가 "하이파 너머에까지 로켓공격을 가하겠다"고 말한 것이 단순한 호기가 아니었음이 증명된 것이다. 이번 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이스라엘군의 맹폭과 지상 작전이 펼쳐졌음에도 헤즈볼라 전력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헤즈볼라의 로켓 공격으로 전선이 이스라엘 내부로 확대되면서 지금까지 19명의 민간인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5차례 중동전을 치르면서도 깨지지 않던 '영토 내 전쟁 불가 원칙'이 깨진 것도 이스라엘로서는 뼈아픈 현실이다. 로켓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하이파, 티베리우스 등 북부 지역 주민 수만명은 공격을 피해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 난민 신세로 전락했고, 50만명 정도는 방공호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내부에서 저항 싹터
이스라엘이 전장으로 변해가자 수차례 로켓 공격을 받은 하이파와 행정수도 텔아비브 등지에서는 반전 시위가 꾸준하게 열리고 있다. 레바논 침공을 비난하고 정전을 요구하는 반전여론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이스라엘 정부는 내부의 저항에 직면해 있다.
물론 올메르트 전시내각에 대한 여론 지지도는 여전히 80%를 상회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결말이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숫자에 불과하다. 'IPS 뉴스'는 "올메르트가 애초에 내걸었던 헤즈볼라 제거라는 목표를 이룬다면 군사작전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겠지만, 계속해서 로켓이 떨어지고 사상자가 급증하면서 전쟁에 끌려 다니게 된다면 목표치를 낮춰야 될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계속되는 국제사회의 전방위적인 휴전 압력 속에서도 미국을 등에 업고 '선(先) 헤즈볼라 무장해제'만을 고집하고 있는 이스라엘. 헤즈볼라와의 싸움에서 고전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할 전략을 짜지 못한다면 이스라엘은, 미국이 이라크에서 그렇듯, 분명 레바논에서 길을 잃고, 어떻게 빠져 나올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