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중구 을지로 2가 외환은행 빌딩. ⓒ 권우성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의 이면에는 론스타의 무차별적인 구조조정에 일생의 운명이 뒤바뀐 이들이 있다.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넘긴 결정적 근거가 됐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감사원 조사결과 금융감독당국과 외환은행 상층부 차원에서 조작됐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이를 접하는 이들의 마음은 더 쓰리다.
반면 이강원 전 행장, 이달용 전 부행장 등 외환은행 매각의 주역들은 퇴임 후 은행으로부터 수십억원을 받았다. 외환은행 매각을 놓고 '울고 웃는' 사람이 따로 있었던 셈이다. <오마이뉴스>는 의혹과 비리로 얼룩진 '검은 커넥션'에 의해 뒤틀린 외환은행 전직 지점장 3명의 안타까운 사연을 따라가 봤다.
# 1. 실직고통에 시달리다 심장마비로 숨진 지점장
2005년 1월 22일 새벽. 27년간 외환은행에서 근무하다 2004년 말 퇴직한 이아무개 전 지점장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과도한 스트레스에 의한 심장마비였다. 은행의 인력 구조조정 일환으로 특수영업팀 전보를 받고 희망퇴직을 한 지 한 달여 만의 일이었다.
누가 이 전 지점장을 51세의 나이에 죽음에 이르도록 했을까? 이 전 지점장 주변의 인물들은 "지난 2004년 말 은행측의 구조조정으로 사실상 반강제적인 희망퇴직을 한 뒤, 그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왔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이 전 지점장 친지들에 따르면 "평소 과묵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가 숨지기 직전 '할 말이 있다'며 비몽사몽간에 괴성을 질렀다"고 한다. 그때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와 같은 시기에 은행을 떠난 한 전 지점장은 "특히 회사에 애정이 많았던 이 전 지점장이 26년 동안 일해 온 곳에서 버림을 받고 난 뒤 그 누구보다 마음 아파했다"며 "이런저런 모임에서 어린 자녀들(이 전지잠장은 슬하에 고등학생과 중학생 아들을 뒀다)을 두고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명예퇴직을 주도했던 외환은행 본점 고위 책임자들은 빈소조차 방문하지 않아 유족들을 더 안타깝게 했다. 이 전 지점장의 한 친지는 당시 주변의 지인들에게 보낸 글에서 "고인이 26년 동안 나름대로 외환은행을 위해 열심히 뛰며 일했던 공과는 있을 터인데, 엊그제까지 일하다 명예퇴직을 당한 지점장이 유명을 달리했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며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 2. 원직복직 위해 론스타에 맞서 싸우는 지점장

▲'IMF 금융위기 7년 - 위기 이후의 한국' 토론회가 지난 2004년 12월 3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전국금융산업노조, (사)금융경제연구소 주최로 열렸다. 당시 외환은행 노조원들은 토론회장 앞에서 '론스타'를 규탄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2004년 11월 투기자본감시센터는 금융감독위원회를 상대로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에 대한 법적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당시 서울 외환은행 본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 투가자본감시센터
지난 11일 저녁 7시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을지로 지점 2층 사무실. 책상 위에 전화기와 컴퓨터 몇 대 만이 덩그러니 놓인 이곳에서 외환은행 업무추진역 소속 조아무개 부장을 만났다.
조 부장은 지난 2004년 11월까지 부산 연산지점 지점장으로 근무하다 은행 측의 갑작스런 인사발령으로 특수영업팀에 배치된 뒤 최근 업무추진역으로 다시 근무지를 옮겼다. 월급은 예전보다 20% 삭감이 됐다. 조 부장이 이곳에서 하는 일은 외환카드 가입판촉, 아파트담보대출 유치, 연체정리 등 은행업무 가운데 가장 힘든 일들이다.
조 부장이 매달 채워야할 목표량도 만만치 않다. 조 부장을 포함해 업무추진역 행원 41명의 매월 목표량은 '인건비+간접비'의 100%이다. 조 부장은 "대부분 관련 업무 전문가들이 아닌데,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란 무리"라며 "결국 목표치에서 미달하면 다시 조사역으로 인사조치를 내고, 또 월급을 삭감해 퇴직을 유도하려는 은행측의 속셈"이라고 말했다.
조 부장은 최근 언론에 보도되는 '외환은행 헐값매각' 기사를 볼 때마다 혈압이 오른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금융감독당국이 직접 개입해 론스타에 헐값으로 넘겼다는 사실에 기가 찰뿐이다. 조 부장은 특히 외환은행 매각 당시의 은행 상층부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특히 이들이 퇴임 후 은행으로부터 수십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뜨렸다.
조 부장은 "수백명의 종업원들을 하루아침에 백수로 만들어 놓고 어떻게 자신들은 수십억원을 챙겨서 나갈 수 가 있느냐"며 "국부 유출에 대한 논란도 크지만 이 때문이라도 반드시 감독당국과 은행 상층부 간의 유착이 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BIS 비율' 조작과 관련해서도 조 부장은 "일반 상식을 가진 은행원이라면 일주일 사이에 그렇게 BIS비율이 고무줄 늘어나듯 줄었다 늘었다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지점장으로 발령을 받기 전인 97년부터 99년까지 은행 본점 리스크관리 팀장을 맡으면서 BIS 비율이 어떻게 산정되는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았던 그다.
그는 "론스타는 인수 초기부터 어떻게 하면 인력을 줄여 높은 값에 팔 것인가에 대한 관심밖에 없었다"며 "결국 대주주인 론스타의 잇속 챙기기에 우리가 희생됐을 뿐"이라고 씁쓸해 했다.
조 부장을 포함한 업무추진역 행원들은 현재 외환은행과 론스타를 상대로 부당전보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 3. 희망퇴직후 주변 친구들과 사업 시작했지만...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12일 오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외환은행 불법 매각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최아무개 전 지점장의 사정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상고출신인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30년간 외환은행을 위해 봉사해 오다 지난 2004년 말 특수영업팀으로 발령이 난 뒤 은행 측의 권유로 희망퇴직을 했다.
이후 몇 차례 개인사업을 추진하다 최근에서야 주변의 동료들과 무역회사를 차렸다. 희망퇴직 이후 은행으로부터 받은 24개월치 위로금에 은행 대출을 보탰다. 하지만 사업경험이 전혀 없는 최 전 지점장 입장에서 회사를 꾸려 나가는 것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는 "겨우겨우 회사를 차리기는 했는데, 처음 해보는 개인 사업인데다 이런저런 장벽도 만만치 않아 앞으로 이를 꾸려나가는 것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여느 다른 퇴직자들과 마찬가지로 최 전 지점장도 은행과 대주주인 론스타에 대한 불만이 컸다. 특히 몇 년간 우수 지점장으로 선정 돼 여러 차례 은행으로부터 포상을 받기도 했던 최 지점장 입장에선 은행 측의 특수영업팀 발령 기준이 무엇인지부터가 의문스러웠다.
최 전 지점장은 "최근에 보도되는 기사들을 접하면 론스타와 당시 외환은행 상층부에 완전히 농락당했다는 느낌"이라며 "자신과 함께 당시 희망퇴직했던 이들이야 말로 외환은행 헐값매각의 최대 희생양"이라고 말했다.

▲2004년 2월 25일 오후 직장폐쇄 3일째인 서초구 방배동 외환카드 본사에서 외환카드노조원과 사무금융연맹 노조원들이 연대집회를 갖고 '투기자본의 불법적 정리해고 저지'를 결의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2003년 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매각된 외환은행은 당초 1000명을 감원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같은 계획에 따라 우선 2004년 10월까지 1차로 400여 명을 감원했다. 하지만 추가 감원이 쉽지 않자 외환은행은 연말까지 400명을 더 정리한다는 계획을 마련하고 일방적으로 203명을 특수영업팀으로 발령을 냈다.
특수영업팀에 소속된 203명(해외지사 포함)의 명단을 살펴보면 근속연수가 최저 7년에서부터 33년까지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이 가운데 38명은 지방 지점에 근무하던 중 갑작스런 발령을 받고 서울로 올라와 숙소도 잡지 못한 채 한 달 가량 찜질방과 여관을 전전하기도 했다.
은행 측은 먼저 비현실적인 목표량을 부과하면서 이들을 압박했다. 지점장 출신의 경우 연간 170억원의 가계대출(아파트담보대출)을 유치하거나 신용카드 1800장을 모집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한 지점 전체가 1년간 가계대출에만 매달려도 170억원을 유치하는 게 쉽지 않다.
결국 노조를 포함해서 특수영업팀 행원들은 당시 발령을 사실상 추가 인력 구조조정을 위한 은행측의 사전 준비작업으로 규정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기로 했다.
김보헌 외환은행 노조 전문위원은 "현재 외환은행이 경영위기에 놓여 있거나 잉여인력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외환은행이 지닌 미래가치까지 훼손해 가면서 구조조정을 이어간다는 것은 매수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대주주의 수익성 띄우기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싼 값에 팔기 위해선 1인당 생산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한마디로 대주주인 론스타의 잇속 챙기기에 불과하다는 게 김 전문위원의 주장이다.
특히 외환은행은 지난해 직원들의 생산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1인당 영업이익에서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국민은행보다 앞섰다. 1인당 당기순이익도 3억 6333만원으로 웬만한 은행들을 2배 이상의 격차로 따돌리며 1위를 차지했다. 결국 직원들을 대거 정리해 1인당 생산성을 높여 팔기 좋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김보헌 전문위원은 "외환은행이 사상 최대 이익에도 불구하고 경영개선이란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상시 구조조정을 통해 1인당 생산성을 키워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속셈이 더 짙다"고 지적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