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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31 11:59최종 업데이트 06.03.31 15:04

엄마품처럼 따뜻한 색감...산수유를 품다

제 8회 산수유축제를 다녀와서...

산동면일대 산수유마을에 만개한 산수유 꽃
산동면일대 산수유마을에 만개한 산수유 꽃 ⓒ 문일식
몇 년 전 지리산에 갔다 우연히 구례 산동 산수유마을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산수유라는 꽃조차 생소했을 정도로 무지했고, 그저 꽃 축제하는 동네로만 알았습니다. 화사하지 않은 노란색이 빚어내는, 조금은 어두운 풍경들만이 있던 곳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서울에서 늘 봐오던 개나리와 비슷한 색감을 가진 산수유 풍경에 쉽게 마음이 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개나리와 산수유의 색감은 같은 노란색 계열임에도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개나리는 화사하고 밝은 노란색인 반면, 산수유는 눈에 잘 안 들어오는 약간 어두운 노란색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산수유는 한동안 제게 평가절하의 대상이었지만, 그 풍경만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남아 있었습니다. 마을 돌담길과 어우러진, 개울과 어우러진,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다리와 어우러진 바로 그런 산수유의 모습 말입니다.

대음리 산수유 군락지의 풍경
대음리 산수유 군락지의 풍경 ⓒ 문일식
몇 해가 지나고 봄의 전령사 3월이 마지막으로 치닫는 주말…. 산수유축제(3.25-4.2)가 열리는 산수유마을을 찾았습니다. 산수유마을 입구는 축제의 시작을 대변하듯 거리마다 사람과 차들로 넘쳐났습니다. 경찰들의 호루라기 소리, 경적소리에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소리가 한데 섞여 고요했던 산수유마을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기억이란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동시에 주는 것 같습니다. 오래전 기억을 답습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고, 예전 기억을 더 좋은 추억으로 만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리산 온천을 바라고 진입했지만, 어느새 산수유마을을 처음 찾았던 바로 그 코스를 그대로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평가절하의 대상이 되었던 곳이었는데…. 아이러니컬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기억을 좇는 게으름이라 해야 할지.

구례 산동면 일대 국내 산수유 60% 이상 생산

노란색 물결 가득한 산수유마을 풍경
노란색 물결 가득한 산수유마을 풍경 ⓒ 문일식
상위마을을 포함해 산동면 일대는 우리나라 산수유의 60% 이상을 생산하는 주산지입니다. 산동이란 지명은 1000년 전 이 곳으로 시집온 중국 산동성 처녀가 산수유를 가져와 심은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 산수유나무는 계척리 계척마을 입구와 달전마을에 있는데, 주민들은 계척마을에 있는 산수유를 할머니 산수유, 달전마을에 있는 산수유를 할아버지 산수유라고 부릅니다.

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코스는 상위-하위-대음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상위마을은 산수유마을 가운데 가장 으뜸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상위마을은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마을로 노고단과 성삼재, 만복대와 정령치의 기세등등한 지리산 준봉과 고개들이 감싸고 있습니다. 지리산 자락에서 시작되는 작은 계곡은 너른 지대로 나오면서 깊고 너른 계곡을 만들고, 다시 평탄한 지대로 나오면서 길게 늘어진 하천이 되어 흐르고 흐릅니다.

상위마을의 돌담길과 어우러진 산수유 풍경
상위마을의 돌담길과 어우러진 산수유 풍경 ⓒ 문일식
상위마을 작은 계곡에서 핀 산수유를 시작으로 하위의 작은 마을을 돌아 대음까지 내려온 후 다리 인근 산수유군락을 감상하는 것이 제가 찾는 코스입니다. 그중 대음의 산수유 군락과 냇가를 끼고 펼쳐진 산수유 풍경은 제일 압권이라고 할만 합니다.

상위마을에서 계곡을 끼고 오르면 아담한 돌담길 사이로 보이는 산수유가 참 아름답습니다. 겨우내 잦아든 물소리도 따뜻한 날씨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우렁차고 시원했습니다. '정다움'이란 단어는 바로 이럴 때 쓰는 단어가 아닌가 합니다. 뒤꿈치를 들지 않아도 되는 얕은 돌담너머 비치는 민가와 노란 물감을 흩트린 듯한 산수유가 방문객들을 향해 한없이 팔을 벌리는 듯합니다. 계곡 돌 틈 사이로 봄을 부르짖는 듯한 물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합니다. 너럭바위에 앉아 발이라도 담그고 싶은 기분이 샘솟았습니다.

하위마을의 산수유 풍경
하위마을의 산수유 풍경 ⓒ 문일식
상위마을에서 내려오다 보면 마을로 진입하는 길이 하나 나옵니다. 성급한 사람들은 그저 아스팔트를 따라 내려가기 마련인데 이 작은 마을 역시 산수유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비록 시멘트로 포장된 길일지라도 산수유와 낮은 담장이 만들어내는 친근하고 정감 있는 풍경이 가히 일품입니다.

푸르름으로 봄이 더욱 극적입니다.
푸르름으로 봄이 더욱 극적입니다. ⓒ 문일식
봄입니다. 봄을 물씬 풍기는 것은 비단 산수유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지상의 따뜻한 봄기운을 느끼려 파릇파릇하게 올라오는 푸름이 산수유의 노란색과 어울려 맘껏 봄을 연출합니다. 마을을 빠져나와 대음까지 갈 땐 지루한 아스팔트길을 걸어야 합니다.

산수유마을을 찾는 사람들 여행객, 사진작가 그리고 화가

대음리 다리위에서 산수유 풍경을 스케치하는 사람
대음리 다리위에서 산수유 풍경을 스케치하는 사람 ⓒ 문일식
꽃 축제엔 꽃을 즐기려는 여행객들도 많지만, 사진작가나 그에 준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곳 산수유마을에는 또 다른 부류가 있는데 바로 화가들입니다. 특히 대음의 산수유군락 내에선 많은 화가 분들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분들이 산수유마을을 즐겨 찾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대음리에서 산수유의 풍경을 찍는 모습
대음리에서 산수유의 풍경을 찍는 모습 ⓒ 문일식
대음리 산수유군락에 들어서면 노란 산수유 꽃이 한 점 한 점 어우러져 따뜻한 이불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문득 편안한 잠자리에 들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한가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대음리의 개울과 어우러진 산수유 풍경
대음리의 개울과 어우러진 산수유 풍경 ⓒ 문일식
산수유군락을 가로질러 개울가를 폴짝폴짝 뛰어 반대편 마을 쪽으로 들어갔습니다. 개울가에 핀 산수유는 상위마을 계곡과 또 다른 봄 풍경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지대가 높은 상위마을보다는 지대가 낮은 대음리 산수유가 더 만개했기 때문일 겁니다.

대음리 다리를 건너 대음리를 빠져나오면 상위마을에서부터 시작된 산수유와의 시간이 끝납니다. 물론 이곳 산동면에는 더 많은 산수유 군락이 있지만 이 정도만으로 충분히 눈요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더 돌아다닌다면 아마 산수유에 질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겨울과 봄의 느낌이 교차하는 듯한 풍경
겨울과 봄의 느낌이 교차하는 듯한 풍경 ⓒ 문일식
향도 없고, 멋도 없는 것이 산수유입니다. '그다지 밝지 않은 노란 색감의 향연'이라고 하면 어쩐지 반어법적인 표현일 겁니다. 그렇다고 어린 시절 추억이나 향수를 자극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서울 태생에 한창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던 때에 태어난 지극히(?) 젊은 층이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평가 절하해놓고, 이제 와서 '그저 산수유의 노란 색감이 좋아졌다'라고 하면 좀 우스꽝스러울까요? 그건 아마도 엄마 품처럼 포근하고 정겨운 느낌이 노란 산수유에서 짙게 배어나오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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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식 (mis71) 내방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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