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정치부에서 한나라당을 맡고 있는 최경준 기자입니다. 그러나 지난 일주일(6월 28일∼7월 3일) 동안은 열린우리당을 담당했습니다. 원래 열린우리당을 출입하던 손병관 기자가 이라크에서 피살된 고 김선일씨 사건 때문에 외교통상부로 취재 지원을 나갔기 때문입니다.

▲6월 28일 오전 열린우리당 의장실에서 열린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천정배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열린우리당으로 출근한 첫 날인 지난달 28일 오전 상임중앙위원회의를 취재했습니다. 전 날 이미 열린우리당은 고 김선일씨 피살사건 진상조사단의 '의혹 투성이' 조사 결과 발표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습니다. 따라서 이날 회의에서는 여당다운 뭔가 제대로 된 대책이 강구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비공개 회의 내용을 브리핑한 임종석 대변인은 엉뚱하게도 테러방지법을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테러방지법은 지난 2001년 11월 국가정보원이 입법예고를 했으나 국가인권위원회와 테러방지법 제정반대 공동행동 등 인권기관·시민단체들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쪽에서는 대(對)테러센터의 소관 부처를 국가정보원으로 하지 않고 인권침해 소지를 없애는 방안을 병행한다고는 하지만, 굳이 이 시점에 내놓은 대안이 하필 테러방지법이냐는 비난을 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비난의 요지는 테러방지법이 없어서 김선일씨가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게다가 열린우리당은 테러방지법 재 추진을 발표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백지화'시키는 혼선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열린우리당의 '이유 없는 헛발질'
임종석 대변인은 또 박창달 한나라당 의원의 체포동의안에 대해서 "자유투표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아무 문제의식 없이 발표했습니다. 박영선 원내 대변인은 그날 기자에게 "'검찰의 체포동의안 요구가 무리하다'는 일부 의원도 있었지만 소수였다"며 "지도부가 의원들에게 현명하게 판단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해 절대다수가 찬성 의견임을 시사했습니다.
그러나 과반 의석을 점유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현명한' 판단으로 17대 국회 첫 체포동의안은 부결됐습니다. 이에 천정배 원내대표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식으로 급히 사과 성명을 냈지만, 열린우리당에 대한 비난 여론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한 달 가량 국회를 공전시킨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가까스로 원 구성에 합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고 김선일씨 국정조사특위 위원장 자리를 놓고 여야가 또 다시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원 구성에 합의한 지 딱 하루만입니다. 국정조사 특위가 진상규명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면 열린우리당이 위원장을 양보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시각도 제기됐습니다.
이종걸 원내수석부대표에게 "국정조사특위 위원장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기에 그토록 연연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번 국정조사는 안보 등 국가적 관점에서 처리해야 할 사안이 산적해 있다"며 "자칫 눈앞의 사안을 국민의 알권리 보장이라는 명분으로 무조건 국민에게 알리면서 인기 위주로 공개나 비공개를 판단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말했습니다. 어찌됐든 우여곡절 끝에 열린우리당이 위원장을 맡게 됐습니다.
신기남 의장 "넙적다리 안쪽에 살이 붙는 순간…"
지난 1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TNS에 의뢰해 지난달 29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최근 공개됐습니다. 분양원가 공개 백지화 논란으로 10% 포인트 이상 폭락했던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다시 하락, 20%대를 기록하며 탄핵사태 이후 처음으로 한나라당에 1위 자리를 내줬습니다.
신기남 의장이 이날 오전 회의에서 "창당 이래 최대위기 상황"이라고 토로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신 의장은 "넙적다리 안쪽에 살이 붙는 순간 열린우리당은 존재할 의미가 없어진다"며 "파부침선(밥 짓는 솥을 부수고 되돌아갈 배를 가라앉히는 등 결사의 각오로 싸움터에 나섬)의 각오로 말고삐를 다시 잡고 개혁정치를 실천하자"고도 말했습니다.
임채정 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도 "우리당이 잠시 방심했던 것 같다"며 "그러나 우리에게는 능력이 있으니 안이했던 자세를 바로 잡고 국민 속에서 역사적 책임을 지는 모습으로 발군해야 한다"고 지도부를 독려했습니다. 이부영 상임중앙위원은 "당 지도부와 원내 대표단은 이런 일이 한 번 더 일어날 때 열린우리당의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에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또 다른 '악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정동채 신임 문화관광부 장관의 인사청탁 개입 의혹과 비례대표인 장복심 의원의 금품로비 의혹 사건 등이 그것입니다. 그동안 열린우리당을 지탱해줬던 토대인 도덕성과 관련된 문제였기에 그 충격은 배가 됐습니다.
열린우리당은 지난 2일 경기도 용인에서 비공개로 열린 중앙위원 워크숍에서 당 위기 극복 방안을 백화제방(百花齊放)으로 쏟아냈습니다. 우선 당내 투표로 선출된 당 의장, 상임위원, 중앙위원 등이 당의 노선에 어긋난 행동을 할 경우 소환할 수 있는 '당직자 소환제도'를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또 비례대표 숫자의 3배수로 후보자를 선정한 뒤 2000명의 순위확정위원회로 하여금 비례대표 순번을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비례대표 금품로비 의혹을 초기에 차단하겠다는 것입니다.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사태와 관련 보완 대책도 마련했습니다. 원내부대표 15명이 의원 10명씩을 맡아 정기적으로 당의 운영 방침이나 주요 정책 등에 대한 상황을 전달해주는 '10호 담당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입니다.

▲30일 오후 본회의 개회 직전에 개최된 열린우리당 의총에서 의원들이 선열 및 고 김선일씨에 대한 묵념을 올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유시민 "나도 100만원 받았다... 뭐가 문제냐?"
이런 사후약방문식 대책들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 것이냐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열린우리당은 한동안 위기감을 털어내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한나라당에 역전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아직도 바닥을 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난 1일 발표된 여론조사에는 정 장관 인사청탁 의혹이나 장 의원 금품로비 의혹 사건 등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지지율은 더 낮을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당 지도부가 정말 위기감을 갖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당 중앙위원들이 워크숍을 하기 위해 출발하던 시각, 신기남 의장은 미국 방문에 앞서 기자들과 오찬을 함께 했습니다. 신 의장은 이 자리에서 "현재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으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 만큼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면서 "우리당이 겪는 과도기적인 진통은 (언론 보도처럼) 그렇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사태'에 대해서 신 의장은 "열린우리당이 미흡했던 대목은 있었지만, 한나라당은 거의 전원이 체포동의안에 반대했고 열린우리당은 대다수가 체포동의안에 찬성했는데 (언론에서는) 왜 열린우리당만 문제삼고 한나라당의 태도는 문제 삼지 않느냐"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 그렇겠지"라고 전제가 달리긴 했지만, 신 의장은 체포동의안 부결 사태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책임이 왜 무거운지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유시민 의원이 중앙위원 워크숍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서영석 서프라이즈 대표 부인 김아무개씨의 교수임용 로비와 관련해 "교수 임용에 지원하면서 전화 안 하는 사람 있느냐"며 "(로비받은 사람이) 그냥 전화 받고, '그러세요'하고 끊으면 되지, 그걸 가지고 무슨 진정을 내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1면에 싣고, 그게 무슨 기사거리나 되느냐"고 말했다고 일부 언론에서 보도했습니다.
또 유 의원은 장복심 의원의 금품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나도 장 의원한테 100만원의 후원금을 받았는데, 의원들끼리 그 정도는 후원금으로 주고받는 게 문제가 되느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당내 일각에서는 장복심 의원 사건을 두고 '조직적인 음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7월 2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듣고 있는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종걸 수석부대표는 3일 "<동아일보> 기자가 장 의원 후원회장에게 김희선 의원에게 얼마를 줬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장 의원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겠다고 제의했다고 한다"며 "당으로서는 묵과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동아일보>가 친일진상규명법을 주도하고 있는 김희선 의원을 공격하기 위한 의도로 기사를 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대표는 정말 당이 '묵과'해서는 안될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천정배 원내대표도 4일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현재로서는 (장 의원이) 실정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1500만원의 특별 당비에 대해서도 "적법한 것"이라며 "나도 창당과정에서 수천만원의 당비를 냈는데, 그것도 내가 지역구 공천을 받기 위해 낸 것이냐"는 논리였습니다. 진상조사단을 만든다더니, 투명한 조사는 뒷전이고, 오히려 지엽적인 문제만 확대해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반성하는 자세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나요. 정동채 장관의 인사청탁 의혹에 대해서 당은 2일 이후 지금까지 어떠한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일부 의원은 "개혁적인 문화계 인사 추천과 임명에 노골적으로 반대한 분"이라며, 정진수 교수를 공격합니다. 서영석씨 부인의 청탁 사실 자체는 문제삼지 않는 '도덕 불감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열린우리당, 추락의 끝은 어디인가?
이쯤되면 열린우리당 지도부 등이 갖고 있는 '위기론'에 대한 실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분양원가 공개 백지화 논란 등 당정혼선과 김선일씨 피랍-피살사건 등에서 보여준 당과 정부의 모습은 17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만들어준 유권자들의 기대치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멉니다.
예고된 악재에 당 지도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열린우리당의 악재는 이같은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넙적다리 안쪽에 살이 붙었는지, 안 붙었는지는 반드시 만져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열린우리당의 '추락의 끝'은 바로 당을 바라보고 있는 국민의 눈빛을 두려워 할 줄 알고, 진지한 고민의 산물을 내놓는 데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