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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
아들아, 오늘따라 내 기분이 무척 좋다. 네 마음도 이심전심으로 사뿐했으리라 믿는다.
지난해 늦가을 집수리를 하면서 망가진 화단을 손질한다는 게 날씨도 춥고 땅이 언 탓으로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는 땅도 녹았고, 곧 씨앗을 뿌릴 때도 다가와 지난 일요일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애초에는 이 일을 잡역부와 같이 하려다가 인건비도 줄일 겸 운동 삼아 나 혼자 쉬엄쉬엄하려 했다. 삽으로 묵은 화단의 흙을 다 긁어낸 후 그 흙을 철망에 쳐서 화단에 담자 흙은 미처 반도 차지 않았다. 거기다 대문 곁에 새로 만든 화단, 수돗가의 화단은 한 줌 흙도 없는지라 세 곳을 모두 새 흙으로 채우려면 상당한 양의 흙이 더 필요했다.
나는 뒷산 기슭에다 돌멩이를 가려내는 철망을 설치하고 흙을 퍼다 곱게 쳐서 그걸 양동이에다 담아 화단으로 부지런히 날랐다. 지난 일요일, 하루 종일 부지런히 흙을 치고 날랐으나 겨우 대문 곁 화단 한 곳만 간신히 채웠을 뿐이었다.
그날 밤, 나는 모처럼의 노동으로 무리가 갔는지 팔다리도 쑤셨고 허리도 뻐근했다. 이튿날은 세수를 하는데 코피까지 쏟았다. 네 어머니가 알았다가는 아무래도 한 소리 들을 것 같아 혼자서 한 이틀 꽁꽁 앓았다. 잡역부를 따로 부르지 않은 것이 좀 후회도 됐다.
하지만 기왕 시작한 것, 이 정도 일을 중도에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오기가 치솟았다. 또 화단을 가득 채운 고운 흙을 만져 보니 흙냄새도 상큼했고, 그 흙을 바라보니 사랑스럽고 뿌듯했다. 땀이 밴 곳에 쏟아지는 애정 때문이었다.

▲10년 전 어느 날 가족 나들이 (딸, 아들 그리고 아내) ⓒ 박도
오늘 일요일 아침, 나는 야무진 마음가짐으로 남은 작업을 시작했다. 오늘은 꼭 화단에 흙 채우는 일은 끝내겠다고. 하지만 내 마음만 앞섰을 뿐 양동이로 흙을 두어 차례 나르면 한참을 쉬어야 했고, 또 한번 나를 때마다 도중에서 두어 번씩은 쉬어야 했다.
오전 내내 부지런을 떨었으나 두 곳 중, 한 곳도 제대로 흙을 채우지 못했다. 그런 중, 오후 작업에 네가 나와서 거들자 무척 진척이 빨랐다. 나는 흙을 파서 철망에 치고, 너는 아버지가 친 흙을 양동이에 담아서 나르고…. 너와 함께 일하는 게 대단히 능률적이고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다시 태어나 직업을 택한다면 너와 함께 일하면서 그 직종을 가업으로 이어가고 싶다는. 들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땀 흘려 일하는 농사꾼도 좋고, 통통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그물을 걷어 올리는 어부도 좋을 듯하다.
한 잡지에 실린 ‘아름다운 대물림’이란 글에 수제 등산화의 명가인 송림 제화 창업자 이귀석 옹이 아들에게 제화 기술을 전수하면서 “한꺼번에 다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한 발짝 한 발짝 옮겨 놓는 것부터 시작해라”고 이르면서 구두 만드는 일의 기본부터 가르치는 그 모습을 그려보자 더없이 아름다운 부자상(父子像)이었다. 내가 화가라면 이 모습을 한번 캔버스에 담고 싶었다. 그러면 밀레의〈만종〉못잖은 명화가 될 것 같았다.
얼마 전, TV에서 경기도 여주의 오 부자 옹기 집을 소개한 바, 아버지와 아들 네 형제가 항아리를 만들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작업장에서 함께 물레를 돌리면서 옹기를 빚는 광경도 보기 좋았고, 아들이 빚은 걸 아버지가 살피면서 잘못된 부분을 일일이 지적하고는 당신이 5대 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물려받아 몸으로 익힌 도공의 비법을 다시 그 아들에게 전수하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아무튼 너와 함께 일을 하자 나는 힘이 훨씬 덜 들었고, 허리의 통증도 별로 느끼지 못했다. 나는 네가 오기 전에 담아 갈 흙을 마련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삽질을 했다. 너는 한번도 쉬지 않고 나르더구나.
나는 네가 흙을 담아 재빠르게 내려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너의 성장에 뿌듯함과 함께 나도 이제 늙어 내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린다는 서글픈 두 마음이 교차했다.
마침내 일을 끝내고 샤워를 한 후, 온 식구가 밥상에 둘러앉아 네 어머니가 구운 삼겹살을 상추에다 싸서 먹으니 다른 어느 때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있고 즐거웠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고 가까운 곳에 있다”라는 말을 실감한 하루였다. 노동 끝에 휴식은 달콤하고 그 음식조차 달다.
나는 비록 네가 대입 수험생이지만,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한 시간이 책을 들여다본 시간 못지않게 값지다고 생각한다. 진리는 책 속에만 있지 않다.
이 세상 모든 곳에 다 진리가 있고 배울 게 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도와줘서 흐뭇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도와드려 즐겁다면 그것이 진리요, 진정한 행복이 아니겠느냐.
두 장애인의 우애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 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도 자를 수 있고, 마음을 같이하는 말은 그 냄새가 난초와 같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心 其臭如蘭)”는 말은 주역에 나온 바, 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께 배웠다. 그때 할아버지는 나에게 그 글을 가르쳐 주시면서 다음의 얘기를 하셨다.
옛날, 한 마을에 장님과 앉은뱅이 두 장애인이 이웃에 살았다. 두 사람은 동병상련으로 몹시 친하게 지내며 의형제를 맺었다. 그들은 매일 만나 서로 ‘형님 아우’하면서 사이좋게 지냈다. 형 장님은 동네 사람들로부터 들은 얘기를 아우에게 전했고, 아우 앉은뱅이는 자기가 본 바를 형에게 들려주었다.
어느 봄날, 두 사람이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들도 남들처럼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형 장님이 아우 앉은뱅이를 업고 가까운 절로 떠났다. 앉은뱅이는 장님 등에 업혀 귀를 잡고 방향을 지시하면서 자기가 본 봄 경치를 장님에게 들려주었다.
두 사람이 절로 가는 길에 경치 좋은 연못이 있어서 나무 그늘에서 쉬었다. 연못을 바라보던 앉은뱅이가 장님에게 소곤거렸다.
“형님, 연못 속에 있는 누런 돌덩이가 황금 덩이 같습니다.”
“그래? 아우 그럼 건지세.”
두 사람은 갖은 고생을 하며 누런 돌덩이를 건져 올리자 분명 황금 덩어리였다. 앉은뱅이가 장님에게 말했다.
“형님, 이 황금은 형님이 가지십시오.”
그러자 장님이 고개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우님, 무슨 말이오. 그건 아우님 몫이야. 아우님이 발견했잖아.”
“아닙니다. 형님이 가지셔야 합니다. 형님이 아니었다면 어찌 제가 이곳에 올 수가 있었겠습니까?”
“아니, 그건 분명 아우님 몫이야. 내가 아우님이 없었다면 어찌 이곳에 왔을 것이며 또 왔다손 치더라도 내가 어찌 황금을 볼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아우님 몫일세.”
두 사람은 황금 덩어리를 가지고 ‘형님 거다, 아우 거다’ 서로 밀쳤다. 그러다가 결론이 나지 않자, 형인 장님이 말했다.
“아우님, 우리 두 사람 비록 성치 못한 몸이지만, 이제까지 남달리 돈독하게 지내왔는데, 혹 이후로 이 황금 덩어리로 우리 둘 사이의 우정에 금이 갈지도 모르니 차라리 제자리에 갖다 놓은 게 어떨까?”
“형님, 좋은 생각입니다. 황금보다 우리의 우애가 더 소중하지요. 그렇게 합시다.”
마침내 두 사람은 황금 덩어리를 연못에 도로 넣고는 절로 떠났다. 그들이 떠난 후, 한 욕심 많은 첨지가 자기 논에 물을 대고자 삽을 어깨에 메고 연못가를 지나치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연못 속에서 큰 뱀 한 마리가 연못에서 나와 첨지의 발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첨지는 깜짝 놀란 나머지 삽으로 뱀을 두 토막으로 찍어 연못으로 던져 버렸다.
한편, 장님과 앉은뱅이가 절에서 부처님께 참배를 마치고 공양을 든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들이 연못가를 지나는데 신기하게도 연못 속에 황금 두 덩어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형님, 아까 황금 덩어리가 두 덩어리로 나뉘어져 있군요.”
“그래!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피(加被)를 내리신 게로군. 그럼 우리 나눠 가지세.”
“네, 형님.”
두 사람은 황금 덩어리를 가지고 돌아와 나누어 가진 후, 더욱 우의를 돈독히 다지며 여생을 잘 보냈다.
이 이야기는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 하면 하늘도 복을 내린다는 얘기다. 어디 친구 사이만 그러하랴. 혈육 사이는 더 그렇다. 집안이 화목하면 가난을 면케 된다는 옛 말씀도 있다. 아버지는 이 밤 대단히 기쁜 마음으로 네게 이 이야기를 전한다. 마음에 새겨두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