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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8.27 09:59최종 업데이트 03.08.27 11:47

선비정신에 대하여

후손에게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세계 53위인데, 수출규모는 13위다. 수출규모에 비해 국민소득의 순위가 많이 처지는 이유는 낭비 또는 사치가 심하거나 분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太祖)에서 철종(哲宗)에 이르는 25대 472년간의 역사 사실을 편찬, 기록한 책으로 1,893권 888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적으로도 대단한 저작물로 인정받는 이 책은 하루 100 쪽씩 4년 동안 읽어야 다 읽을 수 있다. <조선왕조 500년>의 작가 신봉승씨의 경우 9년이 걸렸다고 한다.

단일 왕조로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세운 조선 왕조의 저력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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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등고시 시험에는 국사 시험이 없다. 자기나라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지도층이 될 수 있는 나라. 고위관리가 되는 나라.

나는 선비정신을 말하고자 한다. 선비란, 선비(士) 이면서 공직에 있는 사람(大夫)을 말한다. 이러한 사대부(士大夫)가 되는 방법은 과거 (科擧)시험을 통하는 것뿐이다.

조선은 이 과거제도를 통해 인재를 채용했으며,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재를 등용했다. 이러한 선비들과 함께 나라를 통치하는 임금은 엄청난 공부를 해야 했다. 임금이 하는 공부를 '경연'(經筵)이라고 하는데 임금은 하루 네 번 공부했다.

조강(朝講)은 아침에, 주강(晝講)은 점심 무렵에, 석강(夕講)은 저녁에, 야대(夜對)는 밤에 하는 공부를 말한다. 강의는 한 사람이 교재의 원문을 음독하고 설명하면 왕이 질문하고, 다른 경연관(經筵官)들이 보충설명과 고대의 사례들을 설명하는 식의 일종의 족집게 방식이었다.

중종(11대)실록은 이러한 경연의 토론방식이나 경학, 도학에 관한 논의내용까지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일례를 보면, 그때 당시 강원도에 수해가 나자 임금이 비가 많이와 수해가 난 원인이 뭐냐고 묻자, 연산군에게도 직언을 서슴치 않았던 이자건(李自健:한성부판윤=서울시장)과 임금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고 갔다.

李自健: 임금이 정치를 못해서 그러하옵니다.
中 宗: 그럼, 어찌하면 되느냐?
李自健: 소인과 군자를 구분하시면 됩니다.
中 宗: 소인과 군자를 어찌 구분하는고?
李自健: 큰 소인은 군자로 보이고, 작은 군자도 소인으로 보이기에 구별이 어렵사옵니다

이상의 대화에서처럼, 오늘의 현실에서 대통령이 작년 강원도에 엄청난 수해가 난 것을 들어 대통령께서 정치를 잘못해서라고 말할 수 있겠는지.

옛날 선비들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선비의 정신으로 여겼다. 하늘을 흘러가는 기운이라는 이 말은 '공명정대(公明正大) = 누구를 만나도 거리낌이 없다'는 도덕적 용기와 함께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호연지기를 자연을 벗삼아 웅혼한 기상을 가지는 것이라는 식의 설명은 부족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소(송사)가 일본보다 무려 100배나 많다. 이것은 도덕적 용기를 지닌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행동을 수반한 지식인이 없어서라고도 볼 수 있다. 이는 국가적인 비극이다.

호연지기는 선비들의 '꿈'이다. 조선왕조의 미스테리는 붓을 든 선비들이 칼을 든 무신을 다스렸다는 것이고, 이러한 것이 가능한 것은 도덕적 용기를 수반한 행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선비정신들을 살펴보자.

관동별곡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송강 정철(鄭徹)이 사헌부지평으로 있을 당시, 처가의 재산을 탐내 처남을 살해한 명종의 육촌 경양군(景陽君)의 처벌문제와 관련하여, 명종의 선처를 당부하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강직하고 청렴한 자세를 고집하여 그에게 사형을 집행하였다.

이일로 명종의 미움을 사 말직에 머무르기도 했다.

오성(鰲城)과 한음(漢陰 = 이덕형 李德馨)으로 잘 알려진 이항복(李恒福)은 중풍으로 몸이 불편해서 집에 있었다. 당시 광해군은 인목대비를 폐위하였고 이에 광해군의 행위를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고, 광해군은 그를 귀양보냈다. 은퇴하여 집에 있던 이항복은 가만히 있어도 될 것을 국가가 바로가지 못하는 것을 참지 못해 상소를 올렸던 것이다. 그는 권율 장군의 사위이기도 하다.

윤선도의 경우를 보자. 그는 송시열을 탄핵하여 귀양을 가게 되는데, 귀양을 가면서 '내 나이 73세인데 얼마나 춥겠느냐'며 초연히 ①삼수갑산(三水甲山)으로 간다. 그는 성품이 강직하고 시비를 가림에 타협이 없어 자주 유배를 당했다. 그의 나이 81세에 이르러 겨우 석방된 뒤 여생을 한적히 보냈다.

연암 최익현 선생의 얘기다. 그는 구한말 한일합방이 되자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왜군과 싸웠다. 전쟁터에서 왜군에 포위되어 대치 중에 왜군들이 쳐들어왔다. 그 때 왜군들의 앞에 선 조선군을 보자 모두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같은 동포를 죽일수는 없다고 포박을 당해 결국 대마도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 때 최익현을 대마도로 귀양을 보낸 자가 이등박문이었는데 대마도로 가기 전 최익현은 버선에 조선의 흙을 넣었다. 까닭을 물으니, '내 비록 왜놈 땅에 있더라도 왜놈 땅은 밟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다. 그는 대마도에서 굶어 죽었다. 한평생 부끄럽지 않게 살았던 위인이다.

또 한분의 선비가 바로 매천 황현이다. 그 역시 구한말 한일합방의 역사적 비운을 당하게 되자, 쓰던 <매천야록>을 절필하고 자결을 한다. 당시 그의 나이 55세다. 유서에서 그는 '나는 죽어야 할 이유가 없지만, 이 땅에 선비가 있어온 지가 400년인데 나라가 망하는 데 한명쯤 죽지 않으면 얼마나 원통하랴.' 그는 유명한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자결했다.

지금 21세기를 말하면서 세계화(Globalization)를 말한다. 다름 아닌 우리 것을 버리고 미국식 표준을 따라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은행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의미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고서는 2009년 중국의 GNP가 1만불이 될 것이며, 2020년에는 중국의 경제가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한다.

2020년이 되었을 때 대한민국은 있을 것이고, 그 때 한국의 주역이 될 우리나라의 기둥은 지금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 정도의 청소년들일 것이다. 이들에게 우리가 과연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배울 것이 비단 조상의 선비정신만은 아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과학기술 역시 자랑할 만한 것임에도 우리들은 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

세종대왕이 당시에 만든 정교한 자동 물시계인 ②'옥루'(玉漏) 는 '흠경각'에 있었는데 그 정확하고 아름답기가 세계적으로도 손색이 없는 것이었다. 이처럼 자랑스러운 우리 것을 모르고 우리의 조선왕조가 당쟁 때문에 망했다느니 당파싸움만 하다가 오백년을 허송세월했다느니 하는 것은 우리의 역사를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임을 알아야 한다.

갓 쓰고 도포자락을 걸쳤다고 모두 양반이 아니라고들 말하지만, 우리 어르신들은 굳은 지조와 신념을 버리지 않고 살았다.

지금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무엇이 바르고 옳은 것인지를 말하는데 있어서까지 다를 수는 없는 일이다. 제대로 산다는 것은 그래서 쉬운 일이 아니다.

①원래 '삼수갑산'이라는 말은 '삼수'와 '갑산'이라는 고장의 이름에서 온 것입니다. '삼수(三水)와 '갑산(甲山)'은 모두 함경남도에 있는 오지로 매우 춥고 교통도 불편한 지역이었습니다. 옛날부터 중죄인들을 이곳으로 귀양 보냈기 때문에, 이곳은 한 번 가면 살아 돌아오기가 힘든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자기 일신상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각오하고 어떤 일에 임하려고 할 때 '삼수갑산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라는 표현을 쓰게 된 것입니다. http://penpen.netian.com/koreanlan/sam%20su%20gap%20san.htm

②1438년(세종 20) 1월에 완성되어 경복궁 안 흠경각(欽敬閣)에 설치하였다. 그 구조를 보면 흠경각 안에 호지(糊紙)로 높이 7자[尺] 가량의 종이산을 만들고 거기에 태양의 모형을 비롯해서 옥녀(玉女) ·사신(四神) ·사진(司辰) ·무사(武士) ·종인(鐘人) ·고인(鼓人) ·징인(鉦人) ·십이신(十二神) 등의 인형을 배치하고, 옥루의 기륜(機輪)을 설치하여 물이 떨어지는 힘으로 기륜이 회전되면서 이들 인형이 북 ·종 ·징 등을 쳐서 시각과 경(更) 등을 알리게 하였다. 또 오위(午位:午時에 해당하는 위치)의 앞에 있는 대(臺) 위에 장기(裝器)를 놓았는데 그것은 물이 흘러들어가 그릇이 비면 기울고 반쯤 차면 수평이 되며, 엎어지도록 하여, 이 모든 기관이 사람의 힘을 빌지 않고 자동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종이산의 사방에는 농촌 사계절의 광경을 계절마다 그려 세웠고 인물 ·오수(烏獸) ·초목의 모양을 나무에 새겨 절후마다 해당되는 것을 진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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