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가는 길에 오른쪽으로 보면 정갈하게 다듬어진 주차장이 보이는데 여기가 소수서원이다. 대개 서원하면 근처에 물이 흐르고 풍경이 좋은 곳에 위치하는데 소수서원도 예외는 아니다.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죽계천가에 있어 아담한 정취가 있다. 여기에 취한대와 경렴정을 세워 학업에 정진하다가 잠시 쉬기도 했을 것이니 옛날 선비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취한대-이황선생이 명명하고 창건 ⓒ 김정봉
소수서원은 주세붕으로부터 시작되어 퇴계 이황이 풍기 군수로 부임하면서 명종5년에 '소수서원' 현판을 하사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래서 소수서원에는 곳곳에 이황의 흔적이 남아 있다.

▲소수서원 현판-강당 안쪽에 흐릿하게 보인다 ⓒ 김정봉
죽계천 건너 취한대는 이황이 지은 것이고 경렴정 안의 초서 현판은 이황의 제자인 고산 황기로 글씨이다. 취한대 옆 백운동(白雲洞)·경(敬)字바위의 글자는 주세붕· 이황 선생의 친필 각자이다. 좋은 바위에 글씨를 새기고 싶어하는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취한대의 위치는 공사로 바뀐 듯하다.

▲백운동·경자 바위-주세붕·이황 선생의 친필 각자 ⓒ 김정봉
소수서원에 들어가면 곧게 뻗은 소나무가 인상적이다. 죽계천을 뒤로 하고 벤치에 앉아 물소리를 들으면서 시원한 솔바람을 맞으며 유생과 선비들의 생활 모습을 상상해 본다. 아쉬운 것은 몇 해전에 왔을 때에는 취한대로 건너갈 수 있었고 경렴정도 개방을 해 놓아 벤치 대신 거기에 앉아 잠시 쉬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수서원 앞 소나무-보고 있으면 눈이 시원하다 ⓒ 김정봉
또 하나 눈에 특이하게 들어오는 것은 절에나 있을 법한 당간지주가 있다는 것이다. 거북등 무늬를 하고 굵게 자란 소나무를 배경으로 멋지게 서 있다. 본래 소수서원 자리는 숙수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이다. 소수서원 사료전시관 앞뜰에는 이 절에서 나온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숙수사지 당간지주-숙수사는 안향선생이 수학하던 곳이다 ⓒ 김정봉
서원 담 밖, 풍광이 수려한 곳에 경렴정이 있다. 시연이 베풀어지던 곳으로 거기에 앉아 있으면 절로 시 구절이 생각날 것 같다.

▲경렴정-주세붕 선생이 창건 ⓒ 김정봉
경렴정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서원 안으로 들어가면 맨 처음 만나는 것이 명륜당으로 유생들이 강의를 듣던 곳이다. 강당 안의 북쪽 면에는 명종의 친필인 '소수서원'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내부는 강당과 방으로, 외부는 둘림마루로 되어있다.

▲명륜당 ⓒ 김정봉
강당 앞의 화단은 유생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을 만큼 예쁘게 조성되어 있다. 담 넘어 왕벗나무에서 떨어진 꽃잎이 꽃 담을 만들어 놓았다.

▲꽃담 ⓒ 김정봉
낙동강을 끼고 세워진 서원은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이 대표적인데 도산서원은 구조가 짜임새 있고 복잡한 반면 병산서원은 개방적이어서 호쾌한 맛이 있다. 소수서원의 구조는 비교적 간단하고 정갈하다.
강당 옆으로 안향선생을 비롯하여 네 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고 사당 뒤에 책을 보관하는 장서각이 있다. 강당 뒤편으로 스승과 유생의 기숙사가 자리하고 있다.
일신재와 직방재는 당시 원장, 교수, 제유사의 집무실겸 숙소로 사용되었는데 현판은 둘이지만 한 건물인 점이 특이하다.

▲직방재·일신재-선비의 기숙사 ⓒ 김정봉
그 오른쪽 개울 쪽으론 학구재와 지락재가 있다. 당시 유생들이 공부하던 기숙사로 스승의 그림자를 피해 뒷물림하여 지었다. 게다가 건물 기단의 높이도 선비들의 기숙사 보다 낮게 지어 졌다.

▲학구재-유생의 기숙사 ⓒ 김정봉
학구재는 공부 잘 하라고 건물 입면이 '工'자형이다. 지락재는 죽계천과 마주하는 담장과 연해 있어 꽃 잎이 휘날리는 봄날이 오면 유생들 마음이 뒤숭숭해 졌을 게다.
봄날에 소수서원의 유생들은 요샛말을 빌려 말하면 사고를 많이 쳤나 보다. 소수서원을 지나 부석사 방향으로 조금 가면 청다리(제월교)를 만나게 된다. 이 청다리는 어릴 때 어른들이 '다리 밑에서 주어 왔다' 라고 놀리는 말의 진원지가 되는 다리이다.

▲청다리-'다리 밑에서 주어 왔다'라는 말의 진원지 ⓒ 김정봉
청다리 근방에는 유생을 따라 온 종들이 살았는데 유생들이 그 종이나 마을 처녀와 정분이 나 아기를 낳게 되면 미리 애를 다리 밑에 버리게 하여 우연히 다리 밑에서 아이를 주운 것처럼 하여 이런 말이 생겨났다 한다.
소수서원 조금 못 미쳐 순흥면이라는 곳이 있다. 순흥은 조그맣지만 오랜 내력을 지닌 곳인데 순흥 면사무소에는 순흥박물관이 있고 그 옆에는 봉서루라는 누각이 있다. 오가는 손님을 맞이하던 곳으로 현판 '흥주도호부'는 공민왕의 글씨라 전해진다. 흥주는 순흥의 고려 때 이름이다.

▲봉서루-흥주도호부의 정문 ⓒ 김정봉
순흥에는 시골 장터에서나 맛볼 수 있는 묵밥집이 있다. 묵밥은 묵을 채로 썰어 국물을 자작하게 넣고 김치하고 김을 넣어 말아먹는 것이다. 값이 싸고 별미로 먹을 만하다.
묵밥을 먹고 봉서루에 올라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 오늘 여행길에 만난 선인들의 얼굴이 스쳐 간다. 의상대사, 공민왕, 주세붕, 명종, 이황, 안향, 그리고 소수서원의 유생들과 마을처녀... 죽계천가 바위 위에서 야릇한 사랑이야기가 들려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