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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몇몇 초등학교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교사의 자질시비가 교직에 있는 나같은 사람들의 심기를 무척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내가 교직에 몸 담은 지도 어언 37년이 넘었고, 그 동안에 거친 학교만도 16개교에 이르고 있으며 교장이라는 직책을 맡게까지 되었다.
나는 지금도 초등학교 시절에 6학년 담임을 맡아주셨던 스승님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거의 매월 1회 정도는 전화라도 드리곤 하는데 그만큼 스승님께서 나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주셨기 때문이다.
내가 교감에서 교장으로 발령이 나게 되었을 때 스승님은 나에게 교장이 되면 주의해야 할 일과 꼭 지켜야 할 일들을 적어서 보내주시면서 좋은 교장이 되도록 가르쳐주기까지 하셨기 때문이다.
물론 이 스승님은 우리가 초등학교 6학년 시절에 얼마나 열심히 가르쳐주셨으며, 얼마나 사랑을 베풀어주셨는지 모든 동창들이 스승님의 은혜를 지금도 잊지 못하고 만나면 지난 날의 이야기로 꽃을 피우곤 한다.
그때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 중학교에 입학하는 시험을 보아야 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온 종일 '학력 전과'와 '실력 완성'을 달달 외우는 시험 공부를 하느라고 하루해가 짧았었다. 더구나 우리 학교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시골 학교였다. 그렇기 때문에 밤이 되기 전에 어두워져서 칠판의 글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교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집에 돌아가곤 하였다. 학교와 집의 거리가 무려 6km가 넘는 아이들도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집까지 달리기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겨울이 되어서 교실에 난로라도 피우면 거기에서 물을 끓여 먹을 수 있지만, 아직 난로를 피울 수 없는 초겨울에 점심 도시락을 먹으려면 차가운 밥을 그냥 먹어야 하는데, 선생님께서는 이런 우리들을 위해서 학교에서 약 100여 m쯤 되는 댁에서 따뜻하게 물을 끓여다주셨다.
사모님께서는 임신하신 무거운 몸으로 약 6ℓ나 되는 뜨거운 물이 든 무거운 주전자를 들고 학교로 가져다주시는 것이었다. 우리는 너무 죄송스러워서 그 시간이 되면 당번을 정하여 미리 받으러 가자고 정했지만 선생님께 호된 꾸중을 듣고 그칠 수밖에 없었다.
"공부시간에 누가 밖에 나가라고 했어.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는 거냐? 너희들이 가지러 가지 않아도 가져올 수 있으니까 염려 말아."
이런 꾸중을 듣고는 다시 나설 수가 없었다. 이렇게 고마운 선생님의 노력에 감사하는 학부모님들께서 마을별로 장작을 좀 마련하여 선생님께 드리려고 하였다. 그 무렵에는 장작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땔감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절이었는데 선생님이 날마다 물을 끓이는 노력은 보상을 해드릴 수 없지만 땔감이라도 좀 보내드리자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의 댁에서 이 장작을 싣고 들어오자 당장 학교로 달려와서 이 사실을 알리게 되었고, 선생님은 곧바로 달려가서 거절하시면서, "당장 그 장작을 팔아서 아이들에게 공책이라도 사주고 따뜻한 옷이라도 한 벌 사주도록 하십시오. 나는 어머니 방에 군불을 지피면서 끓인 물을 아이들에게 먹이고 있을 뿐이니까요"하면서 되돌려보내고 말았다.
"이거 우리가 손으로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날마다 힘들게 물을 길어다가 끓여서 학교까지 가져다주시는 노력을 하시는데 이것이 보답이나 되겠습니까? 우리들의 작은 정성이니 받아주세요."
그렇게 학부모들이 말했지만 선생님은 끝내 받지 않고 돌려보내시고 말았다. 이렇게 고마운 스승의 가르치심에 힘입어 교직 생활 30여 년 동안에 나는 촌지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별로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음을 자신하고 싶다.
지금도 함께 근무하는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촌지에 연연하지 않고 참으로 자식 사랑 같은 정성으로 가르치고 열성을 다하는 분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왜 아직도 교사들의 이런 이야기가 신문의 부끄러운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지 교사들의 자부심을 망가뜨리는 이런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