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01.11.01 21:57최종 업데이트 01.11.02 21:31

한총련 수배자 어머니의 편지

2001년 겨울 무렵, 나를 막막하게 하는 것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끔 들르는 대학 동아리 카페에 가슴 아린 글이 올라와 있다. 용한이 어머니가 쓰신 호소문이다. 송용한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배중인 600여 명 한총련 수배자 가운데 하나다.

내가 용한이를 처음 본 것은 93년 신학기였다. 당시 체구가 작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용한이는 예일곱 명 있는 동아리 신입회원들 가운데 있었다. 오락과 스포츠 동아리에 밀리던 사회과학 동아리 '동아시아 역사 연구회'.

"동산에 아침 햇살 구름 뚫고 솟아와/새하얀 접시꽃잎 위에 눈부시게 빛나고 /발 아래는 구름바다 천리를 뻗었나 /산 아래 마을들아 밤새 잘들 잤느냐"('천리길'의 일부)라는 낭만적인 가사로 시작하는 동아리가로 총회를 시작하던 곳.

AD
용한이는 신입생 가운데 하나였고, 나는 후배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학술부장이었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새로운 시각을 얻으려는 후배들에게 나는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게 하는 강행군으로 후배들을 지도했다.

가장 적극적이면서도 나와 달리 움직일 줄 알았던 용한이, 순둥이처럼 생겼지만 부지런했던 주형이, 가장 학구적이며 이론에서는 공격적이었던 승택이, 동아리나 학업보다는 또 다른 짐을 진 것 같아 안타까웠던 성봉이, 가끔씩 댓거리에 참여했던 헌이와 영진이 등등.

우리는 분명히 죽이 맞는 동아리의 일원들이었다. 당시 동아리 전체에서도 우리 동아리는 가장 활기찬 동아리였다. 그런 동력은 이론만을 가르치던 나와 댓거리가 끝나면 후배들과 술을 마셔주던 진국 선배가 균형이 맞았기 때문이다. 여자 회원이 없어서 족구로 동악대의 여자 회원을 강탈하다시피 입회시키기도 했지만 지금까지도 가장 정겨웠던 시간이었다.

나는 후배들에게 50여 권으로 된 커리쿨럼을 만들되 진보진영의 시각만이 아닌 다양한 시각을 접하도록 신경을 썼다. 후배들 역시 어려운 학습 여정을 잘 따라주었기에 나 스스로도 토론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 해가 지나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나는 동아리와 멀어져 갔다. 93학번 후배들도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더러는 군대에 갔다. 학생회에 관심을 쏟은 후배는 용한이가 유일했다. 용한이와 나는 그 후 몇 차례 만나지 못했다. 직장생활 초기에 학교 근처에서 술을 먹다가 우연히 들린 교내 시위에서 용한이를 봤다.

용한이를 봤을 때, 난 그냥 눈물이 났다. 우습게 말하지만 용한이에게 운동권이라는 쉽지 않은 멍에를 씌운데 내가 가장 큰 역할을 한 때문일 것이다. 소주를 두 병이나 마신 상태에서 나는 그 녀석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용한이는 당시부터 학생운동으로 인해 수배자의 명단에 올라 있었다.

용한이를 다시 본 것은 피신다니던 용한이가 내 자취방에 찾아왔을 때다. 이미 나와 비교도 안될 만큼 키도 훌쩍 컸다. 구파발에 있는 작은 방에 녀석이 찾아왔다. 밤에는 쓸쓸히 술을 마시고, 아침에 나는 출근을 했다. 녀석은 그 집에 며칠 머물고 떠나면서 작은 가방을 남겨두고 떠났다. 책과 이런 저런 옷가지가 녀석의 피신생활을 말해주었다. 가방에는 집 열쇠로 보이는 열쇠가 남겨져 있었다. 99년 여름 나는 그 집을 떠나서 중국으로 들어왔다. 용한이를 볼 때가 97년 겨울 즈음이니 그로부터 근 4년이 지났다.

용한이는 여전히 수배자다. 나는 중국으로 건너와 학업과 글품을 팔아서 살아간다. 거리는 참 멀지만 인터넷에 개설된 동아리 카페에서 녀석의 소식을 만난다. 9월에는 오랫동안 피신 생활을 하는 용한이를 돕기 위한 주점이 열린다고도 하는 소식을 접했다.

얼마 전에는 용한이의 어머니가 쓰신 호소문을 봤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게 보낸다는 그 편지는 우리가 정겹게 불렀던 동아리 회가 만큼이나 낭만과 비극이 같이 한다. 어머니의 편지는 그렇게 시작됐다.

"아마도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올 것 같습니다. 온 거리는 노랗게 은행잎들이 제 생명을 다하고 떨어지고 낙엽들은 자기들의 영양분을, 저장하려고 서로 힘을 다하여 색깔들을 물들이고 있는 것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수배생활 6년을 지나 7년에 접어드는 아들의 수배해제를 부탁하는 어머니의 비통한 글이다. 어머니는 600명에 달하는 한총련 수배자들의 어머니의 한 많은 삶을 말씀 하시고, 국가 보안법을 폐지해 중단된 공부를 마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수배 생활 전 행복했던 가정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말씀하신다.

용한이는 지금도 대학 친구나 선후배 방을 전전하며, 하루를 날 걱정을 할 것이다. 용한이뿐만 아니라 600명의 한총련 수배자들이 그러할 것이다. LA타임스까지 국가보안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지금도 국가보안법은 건재하다. 거기에 극우세력은 새로운 힘을 얻을 날을 고대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덧붙이는 글 | 송용한 군의 어머니께서 쓰신 호소문  

아마도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올 것 같습니다. 
온 거리는 노랗게 은행잎들이 제생명을 다하고 떨어지고 낙엽들은 자기들의 영양분을, 저장하려고 서로 힘을 다하여 색갈들을 물들이고 있는 것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이회창 총재님 부족한 제가 이렇게 글월을 올리는 것을 많은 이해와 먼저 용서를 빕니다. 저는 한총련 학생을 둔 송용항 어미되는 사람입니다. 

제나이는 53세이고 이름은 홍동자라고 합니다. 총재님게서 이나라와 국민을 이하여 여러가지 걱정근심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총재님 제아들이 수배생활한 지가 6년을 지나 7년째 접어 들고 있습니다. 한 나라에 살면서 보지도 못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한 아프지는 않는지, 굶지는 않는지 부모된 도리로서 너무나 견디기 힘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 어미로서 제 아들이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수많은 수배자들을 부모 품으로 돌려 보내주셨으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한총련 수배자들이 600명이 넘는다고합니다. 그 부모들은 매일밤 눈물흘리며 통곡하고 있습니다. 

그 수많은 부모들 생각좀 헤아려주십시요, 부모들은 늙어가고 생활은 오죽하겠습니까? 

국가 보안법을 페지 하시어 공부도 중단하고 있는 학생들의 공부도 마치게 해주십시요.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 젊은 학생들이 앞으로 나라를 빛낼 사람이라 생각하셔서 많은 학생들을 자유를 주십시요, 저희들에게는 귀하고 귀한 아들 딸들입니다. 

제가 여기 저기 메일을 통하여 호소도 하고 편지도 올려 보았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았습니다. 허망하게 세월만 지나갔습니다. 

총재님 부디제 소원을 저버리지 마시고 간절한 저희들 부모 소원 한번 풀어주십시요. 두손 모아 빌고 또 빕니다. 

제 아들이 수배생활하기 전에는 부자는 아니지만 저희들 네 식구는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지난 7년동안 그 수많은 고통을 메일로 는 다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덕망이 높으신 총재님 그 젊은 학생들을 저희들 부모품으로 돌려 주십시요 꼭 기다리겠습니다. 국민들이 마음이 편안해야 총재님의 마음도 편안하시리라 믿습니다. 

어려우시겠지만 지나 치시 마시고 저희들 힘든 사정 꼭 좀  생각해주십시요, 드릴 말씀은 많고 많지만 메일로 다 드릴 수가 없습니다 

총재님 날씨는,또 추워지는데 정말 걱정이 되는군요/ 계절 맞게 옷을 입는지 굶지는 않는지..... 

저희들 한살이라도 더 늙기전에 국가 보안법을 폐지해 주셨서면 고맙고 고맙겠습니다. 총재님게 부족한 제가 두서 없는 글월을 올려서 너무나 죄송합니다. 

부디 용서해주시고 바쁘시지만 한번 읽어봐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총재님 항상 건강 조심하시고 하시는 모든 일 다 잘이루시길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2001년 10월28일, 
홍동자 올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알자여행 대표, 한국문화관광미디어 특별취재본부장(상무). 저서 <중국은 있다>,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등 다수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