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세무조사는 현 정권이 조선·동아·중앙 등 주요 신문에 불만을 품고, 타격을 가하기 위해 사전 계획에 따라 실시한 것이란 주장이 한겨레신문 전 청와대 출입기자에 의해 제기됐다..." (조선일보, 10월 25일, "조선, 두세달내 그냥 안둬...상속세로 뒤집어 버릴 것" 기사)
"언론사 세무조사는 현 정부의 언론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예상된다..."(동아일보, 10월 25일, "언론세무조사는 빅3신문 타격용" 기사)
"현 정권의 언론사 세무조사는 1998년 말부터 치밀하게 계획됐으며 국세청의 주요 간부들을 미리 호남 인맥으로 교체하는 등 충분한 사전준비를 한 뒤 단행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중앙일보, 10월 25일, "98년 청와대수석 '중앙일보 작살내겠다'" 기사)
"일부 언론이 자신들의 보도와 관련된 사항은 거두절미하고 유리한 부분만 발췌, 보도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며 황당하게 생각한다"(한겨레 성한용 차장, 10월 25일 문화일보 인터뷰)
10월 25일, 한국의 '빅3' 조-중-동이 최근 출판된 책 1권을 소개하며 "세무조사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는 내용의 기사를 동시에 내보냈다. 세무조사와 사주 구속 등으로 입지가 좁아진 이들이 환영하며 재빠르게 '반격'의 빌미로 사용한 책은 <한겨레> 정치팀장인 성한용 차장이 최근 펴낸 <디제이는 왜 지역갈등 해소에 실패했는가?(중심)>.
조-중-동은 이 책이 "언론사 세무조사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언론탄압"임을 주장/증명하고 있다며 일제히 크게 다루었다.
그러나 정작 이 책의 저자인 성한용 차장은 "일부 언론이 자신들의 보도와 관련된 사항은 거두절미하고 유리한 부분만 발췌, 보도했다"며 "대단히 유감스럽고 황당하게 생각한다"고 밝혀 책의 원래 취지가 조-중-동이 주장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는 뜻을 내비쳤다.
조-중-동, 거두절미하고 유리한 부분만 발췌, 보도
성 차장의 책은 원래 DJ정부의 핵심 공약이었던 '지역갈등 해소'가 왜 실패했는가를 살펴볼 목적으로 쓰여졌다.
조-중-동이 DJ정부의 '계획된 언론탄압' 증거로 보고 있는 문제의 글은 성 차장이
"전라도 정권을 우습게 본 '빅3', 언론"이라는 제목으로 DJ정권과 언론의 관계를 25쪽에 걸쳐 기록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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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중-동은 성 차장의 책을 '세무조사'에 대한 '반격'의 무기로 삼았다. 청와대가 마치 '배신감'을 느낀 것 같이 표현한 10월 26일자 동아일보 기사 |
성 차장은 이 글을 통해 이른바 '빅3'가 DJ 집권기간 동안 '정권감시'라는 미명하에 얼마나 끈질기게 지역감정을 조장해왔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가혹한 빅3의 비판에 DJ가 마지막으로 뽑아든 칼이 바로 '세무조사'라는 것이다.
"...그 전까지 DJ는 한국사회의 여론 형성에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이 세 신문사 사주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빅3'의 사주들은 DJ를 깔보기 시작했다... '빅3' 쪽에서는 DJ정권을 혹독하게 비판한 것이 언론 본연의 임무인 정권감시 기능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라고 주장하겠지만, 그런 주장은 30∼40% 정도만 진실을 담고 있다... '빅3'는 필요 이상으로 지역갈등을 증폭시켰다... 그 결과 지역갈등, 특히 경상도 지역에서 '반DJ' 감정이 더욱 심해졌다..."(p282∼283)
이 글은 대체로 DJ정권 하에서 '사건' 중심으로 언론의 보도 행태를 쫓아가며, 알려지지 않은 정권 핵심인사의 말들을 덧붙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조-중-동은 그 당시의 상황이나 '지역감정'을 조장한 자신들의 보도행태는 아예 빼버린 채, "처음부터 DJ정권이 언론을 탄압하기 위해 세무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여권 핵심인사의 말만 뽑아 부각시켰다.
예를 들어 지난 98년 11월, 한창 최장집 교수의 색깔론 시비가 일고 있을 때 성 차장은 그 때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98년 11월엔 이런 일도 있었다. 청와대의 한 수석비서관이 술을 마시다가 한밤중에 기자실을 찾아왔는데, 마침 기자실에 필자(성한용 차장-편집자) 혼자만 남아 있었다. 최장집 교수에 대한 『조선일보』의 색깔론 제기가 파장을 일으키고 있던 시기였다. 술에 취한 이 수석은 필자에게 문서를 하나 보여주었다. 문서에는 "이번 사건이 조선과 한겨레의 싸움으로 장기간 지속되면 밀릴 가능성이 있다. 최장집 교수 사건은 조선일보가 대통령에게 타격을 주기 위한 것이므로 효과적으로 대처해 언론개혁의 단초로 몰고 가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술 취한 수석은... "...중앙과 세계는 당장 작살내겠다. 조선도 두 세달 내에 그냥 안 둔다. 국세청 상속세로 뒤집어버리겠다"... 그의 횡설수설은 나중에 고스란히 현실이 됐다."
당시 상황에서 수석비서관이 내뱉은 말들은 그 상황 전체를 두고 이해해야 하지만, '빅3'인 언론은 그런 상황 설명은 전혀 없이 "...중앙과 세계는 당장 작살내겠다..." 운운하는 수석의 말만을 '기사'에 실어 '언론 탄압'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조선>은 "조선도 두세 달 내에 그냥 안 둔다"는 수석비서관의 말만 제목으로 뽑고, 위와 같이 '색깔론'을 불러일으킨 자신들의 잘못과 '상황'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 자신들이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문장만 짜깁기해 기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처럼 조-중-동은 '지역감정' 조장의 책임성, 과장/왜곡된 언론 보도와 운영 등에 대한 반성 없이 성 차장의 글마저 임의로 필요한 부분만 뽑아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으로 몰아갔다.
오마이뉴스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성한용 차장의 책 <디제이는 왜 지역갈등 해소에 실패했는가>에 실린 "전라도 정권을 우습게 본 '빅3', 언론" 중 핵심적인 부분을 골라 요약해 소개한다.
다음은 책의 내용 중 일부이다.
... 2000년 10월 DJ의 노벨 평화상 수상이 결정됐다. 하지만 경상도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북한에 '마구 퍼준 대가'로 DJ가 노벨 평화상을 받는다는 주장이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빅3'는 국내의 경제난을 부각시켰다. 정현준 사건과 진승현 사건 등 잇따라 터진 금융사고가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별다른 증거도 없이 동교동계 실세들의 이름이 신문지면에 오르내렸다. 『조선일보』의 김대중 주필은 11월 18일자 칼럼에서 DJ에게 공적자금 추가 투입과 관련해 '석고대죄'를 하라고 요구했다. DJ와 청와대 사람들은 언론에 대해 차츰 '한계'를 느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빅3'를 한번 '손봐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갔다.
2000년 1월 11일 DJ는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을 했다.
"언론자유가 지금 사상 최대로 보장되고 있는 만큼 언론도 공정보도와 책임 있는 비판을 해야 한다. 국민과 일반 언론이 사이에는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여론이 상당히 높다. 언론계, 학계, 시민단체, 국회가 합심해서 공정한 언론개혁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짧지만 강한 메시지였다. 집권 초기부터 유지해온 언론 자율에 의한 개혁방침을 바꾸겠다는 선언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DJ발언의 배경에 대해 "현 정권은 정권 초부터 아무리 잘해도 비판을 받았다. 호남 편중 인사 보도, 경제위기를 과장하는 보도 경향 등은 대표적 사례다. 특히 '제2의 경제위기설'에 대한 언론의 과장된 보도가 체감경기를 위축시키고 경제위기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개혁을 하겠다고 나선 배경에 정권에 대한 무차별적 비판과 이를 바로잡으려는 '정치적 의도'가 작용했음을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청와대의 한 수석은 이 즈음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언론사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조선, 동아, 중앙은 길길이 뛸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보다 더 뭘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한겨레가 줄기차게 요구한 언론개혁을 곧 시작한다. 기사를 미리쓰지 마라. 조금만 기다려라."
정권이 언론을 칠 때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까? 역시 세무조사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국세청이 조사팀을 정비하고 내사에 착수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DJ의 언론개혁 발언이 나온 지 한 달도 채 안 돼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청와대는 세무조사 착수 발표 직전 이런 저런 채널을 통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쪽에 세무조사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동아일보』에는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동아일보』쪽은 세무조사 발표를 듣고 당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비서관들은 "그만큼 현 정권이 동아일보를 미워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자기들과 같은 편인 줄 알았는데, 『조선일보』보다 더 지독하게 비판을 해서 훨씬 더 미워하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아무튼 국세청은 2001년 1월 31일 중앙언론사에 대한 일제 세무조사 방침을 발표한 뒤, 2월 8일부터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언론 길들이기' 아닌 '언론사 타격'이 목적
... 언론은 '공정성'이 생명이다. 사람들이 신문기사를 믿는 것은 그래도 신문기사가 '사실'을 다루고 있고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일보』 기자들은 성명을 통해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성명을 채택한 다음날부터 『조선일보』에 실리는 모든 기사는 DJ와 싸우는 기사가 된다. 공정성과 객관성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조선일보』 기자들은 판단을 잘못한 것이다. 정권과의 싸움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조선일보』의 김대중 주필은 5월 12일자 「김대중 칼럼」에서 국세청이 자신의 계좌를 무차별 추적하고 있다고 개인적인 사례를 들어서 주장하며, "세상은 바로 김대중 정권의 이런 행위, 이런 수법, 이런 인식의 결과를 다름 아닌 언론탄압이요, 언론자유 억압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신문지면의 사유화(私有化)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뿐만 아니었다. 『동아일보』의 저항도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동아일보』 6월 25일자 시론에서 언론인 남시욱씨는 「그래도 언론은 죽지 않는다」는 칼럼을 통해 "정부는 이번 세무조사에 대한 시비의 최종 판가름이 이 정부의 임기가 끝난 다음에 이뤄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미 한국의 언론은 재갈을 물릴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 이번 세무조사 결과로 한국 언론이 권력 앞에 무릎을 꿇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물론 권력은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 보복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을 탄압하는 권력이 훗날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두고 보자'는 협박처럼 들린다.
흥미로운 것은 DJ와 '빅3' 언론사의 대결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거대 세력간 '기세 싸움' 성격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세무조사와 사주 구속을 전후해 여론이 양분된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또 한나라당이 조선-중앙-동아를 적극 편들고, 과거 기득권을 누렸던 지식인들이 대거 '언론탄압'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무조사와 사주 구속이 정당성을 둘러싸고 여론조사에서 영남과 호남의 답변이 다르게 나오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지면을 통해 세무조사와 사주 구속이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필자들 가운데 경상도 출신들이 많은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아주 거칠게 분류하면 영남-한나라당-고소득 계층-과거 집권세력이 조선-중앙-동아와 한편을 이뤘고, 호남-민주당-저소득 계층-시민단체가 그 반대편을 이뤄 한판 승부를 겨루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DJ가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에 나서고 검찰 수사를 통해 사주들을 구속시킨 배경에는 '언론 길들이기' 목적이 있었을까? 결론을 얘기하자면 아니다. 세무조사 기획단계에서부터 깊숙이 개입한 인사의 증언에 따르면 조-중-동이 정권에 쉽게 무릎을 꿇지는 않을 것임을 예상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조-중-동의 격렬한 비판을 감수할 각오가 돼 있었다는 얘기다. 정확히 말하면 '언론 길들이기'가 아니라, '언론사 타격'이 정치적 목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 무슨 배짱으로 DJ는 세무조사를 시작했을까? 정답은 정권과 언론의 '결별'이다. 언론에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현 정권의 실력자 가운데 한 사람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는 정권에 대한 기사를 비판적으로 쓰든, 호의적으로 쓰든 신문사 마음대로다. 그대신 우리는 법률에 정해진 권한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어차피 몇몇 신문은 이회창 씨의 집권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더 잃을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