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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1.26 17:34최종 업데이트 01.01.26 17:48

오늘도 눈은 그치지 않으려는가 봅니다

정관헌(靜觀軒)을 돌아보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관 파천(我館播遷)에서 돌아온 고종은 머리가 많이 희어져 있었다. 1901년 1월 7일, 고종은 아침 일찍부터 정관헌(靜觀軒)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 날도 1세기 후의 오늘처럼 아침부터 함박눈이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함녕전(咸寧殿) 후원의 화계(花階)를 지나 정관헌(靜觀軒)에 오른 황제는 가배를 한잔 가져오도록 한 이후에는 하염없이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곤룡포를 걸치고 있었음에도 밖은 상당히 쌀쌀해 두 볼이 제법 추위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후원 나뭇가지 위의 눈꽃도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이따금씩 바닥으로 눈을 쏟아내고 있었고,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배롱나무 위의 눈꽃처럼 황제의 시름도 제법 황제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 시름은,
황제를 벗어나,
함녕전(咸寧殿)의 꽃담을 벗어나,
광명문(光名門)을 벗어나,
정동의 외국 공관 지역으로 내달리고 있었고,
하늘까지도 달려갈 태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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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 7일 그 후원에서는 아이들이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눈을 굴려 가족 수만큼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두 눈은 시커멓게 솔방울로 장식하고, 눈썹은 시든 나뭇잎으로 붙이고, 두 팔은 소나무 나뭇가지를 매달아 만세를 부르게 하고 있었다. 고종이 1897년 2월 20일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덕수궁)으로 되돌아 오던 노상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이 만세를 부르던 그 때와 같이......

눈은 그치지않고 황제의 가슴 속에서 계속 내리고 있었다.
2001년 1월 7일의 눈보라와 같이...

눈은 그치지 않았다.
온세상을 덮어버렸다.

눈은 계속 계속 내렸다.
100년 전의 눈이...

눈은 그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1. 경운궁은 선조대왕 때부터 계속해서 불려지던 이름이나 조선 왕조를 침범한 일본이 덕수궁으로 명칭을 바꿈. 현 경운궁으로 명칭을 되찿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음.

2. 정관헌은 경운궁 내의 서양식 건물로 왕의 침전인 함녕전의 후원에 있는 건물. 함녕전과 정관헌 사이에는 현재와는 달리 꽃 계단과 잘 가꾸어진 후원이 있었다 함.

3. 함녕전은 고종의 침전으로 고종은 이곳에서 돌아가심.

4. 광명문은 함녕전의 문으로, 현재는 경운궁(덕수궁) 석조전 옆에 위치해 측우기 등을 보관하고 있으나, 예전에는 함녕전의 바로 앞에 위치함

5. 가배는 서양에서 들어온 커피의 일본식 한자 말. 조선말에는 커피를 가배로 썼음

6. 2001년 1월 7일은 전국적으로 대설주의보 및 경보가 내렸던 시기이나. 이 때마침 일요일이었기에 경운궁(덕수궁)을 한 차례 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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