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다는 건 가득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텅 빈 공간이지만 한 발 내디디면 흙길, 소리로 가득합니다.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미니다큐 ‘새들의 천국, 장남들의 눈부신 겨울’은 위와 같은 내레이션으로 막을 연다. 세종 도심 한복판에 남아있는 ‘야생의 섬’. 세종시청 뒤편 이응다리 앞 96번 임시 도로를 사이에 두고 금강과 마주한 배후습지인 장남들판에 대한 이야기다. 얼핏 보면 텅 빈 벌판일 뿐인 이곳에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는 건 숨겨진 보물, 그 경이로운 땅을 지키고 싶다는 뜻이다.
미니다큐는 지난 2년간 이곳을 취재한 기자의 영상 기록이다. 행정중심 복합도시로 대규모 개발이 이뤄진 세종시 노른자위 땅이 아직도 논으로 남아있는 건 멸종위기 2급 야생생물인 금개구리와 대모잠자리, 맹꽁이 등 법정보호종 덕분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지난 2014년 중앙공원 남측지역인 이곳에서 발견된 금개구리를 보전키로 결정한 바 있다.
겨울에는 멸종위기종 2급인 큰고니가 날아든다. 툰드라 지역에서 번식한 뒤 8천 킬로미터를 날아서 세종시를 찾는 겨울 진객이다. 2015년부터 이곳을 찾는 흑두루미 부부도 있다. 그해 순천만으로 가는 중간기착지인 이곳에서 다리를 다쳤을 때 야생동물 구조센터에서 치료를 받았던 흑두루미가 10년 째 이곳에 와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이밖에도 큰기러기, 흰꼬리수리, 잿빛개구리매 등 각종 멸종위기 조류가 날아드는 장남들의 겨울은 새들의 천국이다.
이곳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해온 이들이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임인 ‘장남들보전시민모임’. 이들은 장남들 모니터링단을 운영하면서 이곳의 생태를 조사하고 기록해왔고, 매년 모내기, 여름밤마실, 가을걷이, 흑두루미식당 등의 행사를 진행하면서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가꿔왔다.
러닝타임 21분의 미니다큐는 급격하게 도시화가 진행되는 세종시에서 살아남은 야생의 공간의 의미를 전하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의 가치를 일깨우기 위해 만들었다. 도심 속에서의 자연과 인간의 공존.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는 지속가능할까? 장남들은 이 질문에 대한 살아있는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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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 2025.06.05 1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