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목 한쪽 벽에 걸린 사진 앞에서 사람들은 잠시 발걸음을 늦춘다. 봉래동 주민들의 초상과 이곳 노동 정서를 담은 사진을, 여전히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장면. 기록과 현재가 가장 직접적으로 마주한 순간이다. ⓒ 정남준
재개발은 늘 '도시의 미래'라는 이름으로 도착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하는 것은 미래보다 더 오래된 현재,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다. 2025년 1월부터 11월까지 부산의 여러 산복도로 달동네를 걸으며 카메라에 담은 것은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이었다. 골목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도시 저변을 떠받치는 일상의 최소 단위였다.
수정동과 범일동, 봉래동, 감천동 일대의 산복도로는 산업화 이후 가장 값싸고 가장 가파른 땅으로, 도시의 노동자와 노인의 삶을 오래 품어온 공간이다. 이곳에서 골목은 곧 생활 반경이자 안전망이었고, 계단은 병원보다 먼저 오르는 인생의 경사로였다.
▲ 수정동의 겨울 골목은 햇빛보다 그늘이 먼저 내려앉는다. 두꺼운 외투를 여미고 천천히 골목을 걷는는 주민의 뒷모습은 이 동네가 얼마나 오랜 시간 ‘위로만’ 확장되어 왔는지를 말해준다. ⓒ 정남준
▲ 바다를 메워 만든 땅 위에 세워진 공중화장실을 나서는 어르신의 걸음은 유난히 느리다. 범일동 매축지의 인공적인 평평함과, 골목 안쪽의 급격한 경사가 한 프레임 안에서 겹친다. 개발의 시간과 개인의 신체 시간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 정남준
그러나 재개발은 이 관계를 단절시킨다. 고층 아파트와 도로는 공간을 '정비'하지만, 사람의 관계망과 생활 동선까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노인은 엘리베이터 없는 경사에서 엘리베이터 있는 고층으로 옮겨가지만, 그 안에서 더 고립된다. 아이는 더 넓은 놀이터를 얻게 되지만, 골목에서 불리던 이름은 사라진다. 상점은 더 깨끗한 상가로 옮겨가지만, 외상 장부와 안부 인사는 계약서 어디에도 옮겨 적히지 않는다.
▲ 구봉산 자락의 작은 마을. 낡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어르신은 이 동네가 ‘산동네’라 불리기 전부터의 이야기를 꺼낸다. 전깃불도, 포장도로도 없던 시절의 기억은 이제 그분의 몸에만 남아 있다. ⓒ 정남준
▲ 봉래동의 골목은 아이의 어깨에 멘 가방보다 조금 더 넓을 뿐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재개발 기운이 오가는 골목을 지나가는 이 작은 뒷모습은, 이 동네의 과거와 미래가 한 순간에 교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정남준
다큐멘터리 사진이 이 낡은 골목을 기록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낡은 풍경은 가난의 표식이 아니라 도시가 떠안지 않으려 했던 삶의 구조다. 사진 속 인물들은 개발의 수혜자도, 명시적 피해자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다만 개발의 속도에서 가장 늦게 호명되는 존재들일 뿐이다.
이 기록은 철거를 비판하기 위한 선동도, 개발을 미화하기 위한 자료도 아니다. 다만 재개발이 도시를 어떻게 바꾸는가가 아니라, 도시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묻는다. 카메라가 겨눈 것은 고층의 스카이라인이 아니라, 그 그늘 속에서 여전히 오르내리는 노인의 발, 아이의 가방, 오래된 가게의 통로였다.
▲ 바다가 보이던 자리에는 이제 빌딩의 벽면만 남았다. 수정동의 한 어르신이 옥상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시야에서 사라진 것은 풍경만이 아니다. 이 동네가 바다와 맺어온 감각의 거리 또한 함께 차단되었다. ⓒ 정남준
▲ 푸른 방진막과 크레인 사이로 작게 남은 ‘달상회’ 간판. 재개발의 거대한 규모에 비해 가게의 문은 지나치게 낮고 좁다. 그 문을 밀고 들어가는 어르신의 옆모습은, 삶의 마지막 끈을 놓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 정남준
이 골목들이 사라진 뒤에도 도시는 계속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 풍경들이 사라질 때, 우리는 도시가 무엇을 대가로 무엇을 얻었는지를 정확히 기억해야 한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바로 그 기억을 사회 앞에 남기는 마지막 장치다.
▲ 감천동에서 40년을 넘게 산 어르신은 “여기서 아이를 키우고, 남편을 보내고, 다시 혼자가 됐다”고 말한다. 이 골목은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그대로 통과시킨 드문 장소다. 도시재생, 재개발은 그 인생의 공간적 결말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 정남준
▲ 서동 산만디기로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 게단 아래 작은 가게의 어르신, 게단 중간에 있는 집을 향해 들어가는 어르신, 계단을 올라 골목을 살피는 사람들. 이 느린 집단 보행은, 이 지역이 아직도 ‘서로를 살피며’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정남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