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문화

포토뉴스

론 뮤익의 작품 <매스>(2016-17)를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 ⓒ 전사랑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현대미술 조각의 거장 론 뮤익(Ron Mueck, 1958~) 회고전을 성황리에 개최 중이다. 지난 주말 국립현대미술관에 들어섰다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론 뮤익의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겹겹이 줄을 서고 있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흡사 황금연휴의 출국장을 방불케 하는 인파였다. 전시장을 내려다보니 거기엔 매표소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기사에 쓸 사진도 제대로 못 찍겠다 싶어, 일단 후퇴했다. 이후 시간을 따로 빼서 평일 오전에 전시장을 다시 찾아서야 원활하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가 특별한 이유, 론 뮤익 30년 작품 세계 조명

이번 전시는 프랑스 카르티에 현대미술 재단과 함께 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전시로 론 뮤익의 30년 작품 세계를 전반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현존하는 작품이 50여 점에 불과한 론 뮤익의 작품을 전 세계 각지에서 한 데 모아 감상할 수 있는, 매우 드문 기회다.

무엇보다 론 뮤익의 작품은 작가가 직접 한 땀 한 땀,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작품이 다 그런 것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지만 현대 미술 조각에서 작가가 직접 돌과 재료를 매만지는 것은 전통적인 방식이라 여겨지며, 매우 특별한 일이 되었다.

론 뮤익이 아이의 조각을 채색하고 있다 ⓒ 전사랑

예를 들어 제프 쿤스는 제작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아이디어'를 낸다. 그는 자신의 '공장'에서 기술자, 조수들을 고용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킨다. 또한 마우리치오 카텔란 또한 아이디어를 내고 전문 기술자들에게 의뢰해 작품을 만든다. 실제 카텔란의 밀랍인형을 만든 조각가가 작품에 대한 저작권 소송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아이디어가 중요한 개념미술이 된 지 오래다. 소송은 기각됐다. 작가가 직접 작품을 '조각'하지 않고도 '조각가'라고 불릴 수 있는 시대다. 이에 반해 론 뮤익의 작업 과정을 보고 있으면 돌에 생명을 불어넣으려 했던 16세기 미켈란젤로가 떠오르기도 한다.

1958년에 태어난 론 뮤익이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40대가 다 되어서였다. 1979년부터 1996년에는 TV 프로그램에서 필요한 모형과 인형을 제작했다. 1996년 조각작품 <피노키오>가 영국의 전설적인 아트 딜러이자 컬렉터 찰스 사치의 눈에 들어 조각 작품 세 점을 의뢰받게 되면서 본격적인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된다.

1997년 뮤익은 데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등과 함께 본격적인 영국 현대미술 시대의 개막을 알린 <센세이션> 전시에서 나체로 누워있는 자신의 아버지를 조각한 <죽은 아빠>를 출품했다.

2006년 영국 가디언 지에서 시인이자 비평가 크레이그 레인(Craig Raine)은 이 <센세이션> 전시에서 진정한 '걸작'은 "시끄럽고 관심을 갈망하는" 작품들이 아닌 뮤익의 <죽은 아빠>였다고 회상했다. 어찌 보면 론 뮤익은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때부터, 현대미술 작가들이 작품 자체보다 요란하게 자기 자신을 브랜딩 하면서 놓치고 있는 진지함,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과묵한 작가의 명상적인 작업과정... "일종의 시대 저항, 진짜를 보여준다"

론 뮤익은 과묵한 작가다. 그는 인터뷰를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잘 드러내지도 않는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각각 48분, 13분짜리 다큐멘터리를 통해 얼핏 하게나마 작가의 삶을 엿 볼 수 있다.

영상에서도 작가는 말을 거의 하지 않고 묵묵히 작업을 이어간다. 감독 고티에 드블롱드는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완성되는 론 뮤익의 작업과정을 따라간다. 뮤익의 극사실주의 작품들이 오랜 시간과 노력을 거쳐 탄생되는 과정은 명상적이고,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전시 도록에서 홍이지 학예연구사는 이러한 그의 작업과정은 "일종의 시대 저항"이라고 느껴진다고 언급하며, 이는 "진짜를 향한 인간의 근본적인 갈망을 충족"시킨다고 밝힌다.

작가의 존재를 작품에 온전히 투여해서 만들어진 작품들도 그런 과정의 집약체이고, 작업 과정만큼이나 명상적인 작품은 우리 앞에 고요히 존재를 드러낸다. 그래서일까. 전시실은 사람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조용하다.

<젊은 연인>, 1998/2014. ⓒ 전사랑

그건 아마도 론 뮤익의 작품이 관람객들 각각을 가장 내밀하고 섬세한 기억으로 이끌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작업은 인간의 가장 평범하고 보편적인 순간들을 포착해낸다.

이번 전시에는 오지 않았지만 <포개진 연인> 2005, <임신한 여인>(2002), <엄마와 아기>(2001), <죽은 아빠>(1996-1997)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들이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유령>(1998/2014), <젊은 연인>(2013)은 10대의 한 장면을 포착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미묘한 감정의 기류, 어색하고도 복잡한 감정들이 인물의 불안한 눈빛에서 드러난다.

섬세한 작업과정을 거친 작품들은 그만큼 우리를 작품으로 끌어당겨 우리의 지난 과거를 상기시킨다. 혹은 작품을 바라보며 작가의 집요한 티테일 표현해 감탄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작품 속 인물에게 빨려 들어간다.

<유령>, 2013. ⓒ 전사랑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했던 작품은 <쇼핑하는 여인>(2013)이었다. 아기띠로 아기를 '메고' 양손 가득 장을 본 '엄마'가 서 있다. 품 속 아기가 너무 어리다. 한 개인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그저 '엄마'라는 역할로만 존재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일까. 품 속 생명력을 뿜어내는 아이는 엄마를 보고 입을 열어 엄마를 찾지만, 어딘가를 보고 있는 그녀의 눈빛은 텅 비고 공허하다.

그녀 자신의 존재가 쪼그라든 만큼인지, 조각 자체도 다른 인물들에 비해서 작은 크기였다. 우리가 작품을 통해서나마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사람에게, 혹은 지나간 과거에 공감할 수 있기를 작가는 유도한다.

<쇼핑하는 여인>, 2013. ⓒ 전사랑

100개의 해골 형상으로 구성한 대형 설치 작품 <매스>(2017)를 통해 작가는 관람객을 죽음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이끈다 . 이 작품은 전쟁, 전염병, 자연재해 등과 같은 집단적인 죽음을 상징하기도 하고, 천장까지 쌓여있는 해골 '더미'로 시각적으로 죽음을 극대화시킨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이기도 하다.

삶의 개인적인 순간들을 지나, 개개인의 특질이 흰색으로 칠해진 해골 더미가 자연광을 받아 빛난다. '더미', '군중'에 의미와 함께 종교적인 미사'의 뜻을 지닌 작품의 제목만큼이나 숭고한 작품이었다.

다가오는 5월의 연휴, 오전에 미술관을 방문해 특별한 경험을 해 보길 추천한다.

전시는 7월 13일까지. 입장료 5000원. 자세한 내용은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전시 설명(링크)에서 참조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론뮤익#서울전시#국립현대미술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문학을 공부하러 영국에 갔다 미술에 빠져서 돌아왔다. 이후 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술에 관련한 글을 쓰고 있다.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