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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양천 시민 체조 교실 16일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평일 저녁 8시, 안양사랑 시민체조교실이 열리고 있다. 안일교 주변 체조교실에 벚꽃이 흩날리는 모습. ⓒ 김은진
요즘 저녁 8시가 다가오면 내 눈빛이 또릿또릿 해진다. 그 시간에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곳이 있다. 바로 경부선 안양역 인근 안일교 체조 교실이다.
"건너 마을에 최진사댁에 딸이 셋 있는 데에~, 그중에서도 셋째 따님이 젤 예쁘다던데~."
이 노래가 들려오면 냉큼 달려가 체조를 하고 싶다. 바로 내가 셋째 딸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집이 최진사댁은 아니지만 나는 이 노래와 함께 유년기를 보냈다.
어릴 때 엄마는 철물점을 하셨다. 엄마의 가게에서 나는 가수 이은하의 노래를 즐겨 들었다. 특히 '최진사댁 셋째 딸'이라는 노래를 아주 좋아했다. 노래 가사처럼 나 또한 아들 없는 집의 셋째 딸이었다. 하지만 가사를 들으며 위풍당당하게 살아가리라 다짐했던 노래다.
더군다나 시원한 목소리에 화려한 율동까지 늘 멋진 무대를 보여주는 가수는 어린 나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녀의 긴 머리를 따라 하려고, 스카프까지 머리에 두르고 언니들 사이에 섞여 춤을 추던 생각이 났다.
시민 체조 교실에서 에어로빅 하게 된 사연
▲ 시민 체조 교실 16일 누구나 자유롭게 참가하는 시민 체조 교실은 4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평일 8시 안양천 곳곳에서 열린다. ⓒ 김은진
지난 4월 1일부터 안양천 고수부지에서 체조 교실이 시작되었다. 안양역 인근에 위치한 안일교 아래서 벚꽃을 보며 밤 산책을 하던 지난주의 일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체조를 하고 있었지만, 신나지 않는 국민 체조 정도로만 생각하고 관심을 두지 않던 나에게 어디선가 익숙한 노래가 들렸다. '최 진사댁 셋째 딸'이었다.
'이거 예전에 철물점에서 매일 부르던 노래잖아.'
셋째 딸? 그거 난데... 그렇게 갑자기 추억의 쓰나미가 밀려와, 나를 체조 대열로 끌고 들어갔다.
나는 맨 뒷줄에 어설프게 끼어들었다. 딱딱한 체조가 아닌 신나는 에어로빅이었다. 멀어서 강사의 동작이 보이진 않아도 앞에, 또 옆에 정확한 동작으로 따라 하는 고수들이 많았다. 나이는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아 보였지만, 마치 십 대처럼 유연하게 움직여서 내심 놀랐다.
첫 동작은 가수 이은하의 춤이 연상되는 '검지 손가락으로 하늘 찌르기'다. 오른쪽을 찌르고 왼쪽을 찌르는데, 문득 오래전 여가수의 찰랑이던 귀걸이가 떠올랐다. 그걸 따라 하려고 어린 나는 빨래집게를 귀에 꽂기도 했었다. 동작을 바꿀 때마다 가지가지 추억이 소환되니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마음이 풋풋해졌다.
다음은 옆으로 두 걸음 옮기며 팔을 안으로 접었다 오므렸다 하는 동작이었다. 등에 도화지라도 덧댄 듯이 뻣뻣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사선으로 폴짝 뛰며 앞으로 두 팔을 밀었다 당겼다. 스트레칭을 하는 큰 동작이 반복되었고 따라 하기 어렵지 않았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맞춰 움직였다. 체조 동작도 가사를 생각하고 만든 것 같다. '장윤정의 사랑아'에는 귀여운 동작과 하트 포즈가 많고 '노찾사의 사계'에 맞춰 미싱을 돌리듯 팔을 돌리며 스트레칭하는 재미있는 동작이 있다.
한 시간 동안 신나게 몸을 움직이고 나면 등에 땀이 살짝 고인다. 평소에 하지 않는 자세라서 굳었던 몸이 부드럽게 펴지는 느낌이었다.
사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동작이지만 음악에 맞춰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니 더 신이 났다. 이렇게 움직이다 보니 뭉친 어깨도 풀어지고 잠도 잘 와서 저녁 8시가 다가오면 밖으로 나가고 싶어 몸도 마음도 분주해진다.
처음엔 수줍어 스트레칭만 하려고 했지만 점점 주위의 분들이 과감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발동작도 따라 하게 됐다. 동작이 커질수록 마음속 스트레스도 쓸려 내려가는 것 같다.
동네 운동회처럼 정감 있는 집단 에어로빅
요즘엔 다들 즐기는 운동이 한 가지씩은 있는 것 같다. 등산이나 요가, 필라테스도 다 좋지만 이렇게 신나는 음악에 여러 사람이 모여 에어로빅을 하니 동네 운동회를 하는 것처럼 정감이 있었다.
게다가 체조하러 가는 길에는 봄꽃들이 가득하다. 튤립, 라일락, 보라 유채꽃, 조팝나무 꽃, 민들레, 벚꽃... 이들과 눈 맞춤 하는 것은 보너스로 주어지는 즐거움이다.
지난 16일에는, 다같이 마지막 동작을 하는데 하천 제방 위에 심어진 벚꽃 나무에서 폭죽처럼 꽃잎이 쏟아졌다. 참가자들의 탄성도 함께 터졌다.
흩날리는 벚꽃 잎 아래서 양팔을 벌리고 하늘을 쳐다보니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체조 강사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며 다함께 행복한 추억을 만든 것 같다고 했다.
어쩌면 이 벚꽃나무가, 인생이라는 무대를 묵묵히 헤쳐 나가는 주인공들을 위해 깜짝 시상식을 열어준 건 아닐까 생각되었다.
예로부터 춤과 노래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힘이 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체조를 하다 보면 유대감도 생기고 마음까지 건강해지는 듯하다.
안양천을 따라 곳곳에서 평일 8시에 체조 교실이 열린다고 한다. 인근에서 참여하면 굳었던 몸도 풀리고 스트레스도 해소될 것이다(시민 누구나 참여 가능, 우천 시엔 휴강). 경기 안양시 시민 체조 교실은 10월 31일까지 진행된다.
춤과 낭만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시민 체조 교실, 해보니 강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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