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호정 너럭 바위에 앉아 풍류를 즐겨 영가대, 금적암, 차일암이라 불렸다. ⓒ 문운주
가을의 끝자락, 일교차가 심하다. 몸이 움츠러 든다. 노고단, 향적봉, 함양 화림동계곡... 어디로 갈까 고민하던 차에 친구의 전화가 울린다. "화림동계곡을 보지 않고 여행을 말하지 말라"라고 운을 떼는 것이 선택의 여지가 없다. 10월 말, 함양 화림동 계곡을 찾았다.
함양 화림동 계곡은 남덕유산에서 발원하는 금천이 '팔담팔정(8개의 못과 8개의 정자)'을 이루어 예부터 정자문화의 보고라 불렸다. 선비들이 한양길에 잠시 머물러 쉬어가는 곳이다. 농월정에서 거연정 까지 선비문화탐방로 (1구간 6Km )를 따라 숲과 계곡, 정자를 내려다보며 즐길 수 있다.
농월정은 병자호란 때 굴욕적인 강화가 맺어지자 지족당 박명부(1571~1639가 낙향하여 지은 정자다. 농월은 '달을 희롱하며 노는 정자다'라는 뜻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풍류가 느껴진다. 많은 문인·묵객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벌거벗은 나무들, 길거리에 낙엽이 수북이 쌓였다. 휑하니 정적만 감돈다. 오전 10시, 농월정 주차장에서 출발했다. 남강 다리를 건너 농월정 까지는 소나무 숲 길이다. 새소리와 계곡 물소리가 청아하다.
▲ 농월정 함양 화림동 계곡에 있는 누정, 선비들이 달을 희롱하며 풍류를 즐긴곳이라 하여 이름지어졌다 ⓒ 문운주
▲ 화림동계곡 물이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물결치는 모습 ⓒ 문운주
▲ 지족당 장구지소 농월정 너럭바위에 새겨 놓은 음각, 지족당 박명무가 다녀간 흔적 ⓒ 문운주
"지족당 장구지소(杖屨之所)"
장구지소는 지팡이와 신발이 머문 곳이라는 뜻이다. 지족당 박명부가 다녀갔다는 흔적이다. 음각(안으로 새긴 그림이나 글씨)으로 새겼다. 글자가 선명한 것으로 보아 새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인다. 너럭바위 곳곳에 방문객이 이름을 새겨놓았다. 자연에 대한 훼손이라기보다는 암각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너럭바위(달바위) 곳곳에 곱게 다듬은 웅덩이가 있다. 포트홀이다. 계곡물이 빠르게 흐르면서 자갈, 모래 등 작은 조각들을 암반 위에서 회전시킨다. 회전하는 입자들이 암석 표면을 갈아내며 원형의 구멍을 형성한다.
구멍에 물이 고이고 달이 들어오면 달이 하나가 아니라 수십 개다. 달을 품은 못이다. 달을 희롱하며 놀았을 법도 한다. 정자 주변을 맴돌며 즐기다가 다음 행선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강 길을 따라 길게 갈대밭이 펼쳐진다. 강물은 은빛으로 반짝인다. 윤슬이 너무 아름답다.
▲ 동호정 동호정은 임진왜란 때 의주 몽진을 도와 공을 세운 동호 장만리를 기리기 위하여, 그의 9대손인 장재헌 등이 1895년에 건립 ⓒ 문운주
호성마을 회관을 지나면서부터는 강을 끼고 산길이다. 솔잎이 쌓여 폭신폭신하다. 오르내리는 곳마다 데크 계단을 놓았다. 뿌리 째 너부러져 있는 나무들, 원시림을 연상케 한다. 쓰러진 나무는 썩어서 새나무가 자라는 토양이 된다. 자연의 순환이다.
한 십여분 걸었을까. 동호정에 이른다. 쪽빛 늪이 보름달 같은 암반과 함께 눈에 들어온다. 선비들이 둘러앉아 시를 읊고, 악기를 연주하고, 술을 마신곳이라 하여 영가대, 금적암, 차일암이라고 불렀다.
동호정은 임진왜란 때 의주 몽진을 도와 공을 세운 동호 장만리를 기리기 위하여, 그의 9대손인 장재헌 등이 1895년에 건립했다. 화림동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하다. 정자는 통나무를 깎아 세워 계단을 두었다. 자연 친화적(?)이다.
▲ 거연정 봉전 교에서 내려다 본 거연정 의 아름다운 모습, 화림재 전시서가 1640 년 서산서원을 짓고 억새로 정자를 지었다. 1868년 서원이 쳘폐되자 서산서원의 재목으로 재 건립하여 1901 년 중수 ⓒ 문운주
▲ 거연정 자연 바위를 그대로 두고 정자를 앉혔다. ⓒ 문운주
동호정에서 군자정 까지는 1.6km 거리다. 군자정은 일두 정여창이 노닐던 곳이라 하여 후손이 지은 정자다. 서하면 봉전 마을은 정여창의 처가마을이다. 정여창은 조선 시대 대표적 성리학자로, 문묘에 종사된 해동 18현 중 한 사람이다.
군자정과 다리를 사이에 두고 거연정이 있다. 거연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중층 누각 형식의 정자다. 거대한 암반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는 정자의 고요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정지를 받치는 기둥은 높이가 각각이다. 암반 높이에 따라 높낮이가 다르게 맞추어 기둥을 세웠다.
거연정은 화림재 전시서가 1640 년 서산서원을 짓고 억새로 정자를 지었다. 1868년 서원이 철폐되자 서산서원의 재목으로 재 건립하여 1901 년 중수했다. 정선 전 씨 입향조인 전시서를 기념하기 위해 후손이 지은 정자다.
노월정의 부드럽고 잔잔한 분위기에 비해 거연정은 웅장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자연 바위를 그대로 이용하고 소나무, 계곡물까지 조화시켜 건축했다. 마을(정선 전 씨문중)에서는 방문객이 쉬어갈 수 있도록 자리를 깔아 놓았다.
▲ 람천정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 167-1 ⓒ 문운주
▲ 경모정 계은 배성매(영조시대)가 산청에서 호성마을로 이사를 와 후학을 가르치며 쉬던 곳으로 후손들이 추모하기 위해 1978년 건립 ⓒ 문운주
▲ 군자정 일두 정여창이 노닐던 곳이라 하여 후손이 지은 정자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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