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사진이 이메일이라면 필름 사진은 손편지 정도로 여기며 천천히 세상을 담습니다. 여정 후 느린 사진 작업은 또 한 번의 여행이 됩니다. 수평 조절 등 최소한의 보정만으로 여행 당시의 공기와 필름의 질감을 소박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사진 하단에 사진기와 필름의 종류를 적었습니다.[기자말] |
맛조개 사냥의 시작은 그저 바다 구경이었다.
내가 사는 전주에서 부안까지는 깊게 들어가도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하니, 주황색 저녁빛을 맞이하고 돌아오기에 적당한 위치의 나들이 장소이다. 작은 반도를 한 바퀴 돌면서 각도마다 변하는 색깔을 바라보는 것도 묘미 중 하나다. 이 기사는 약 4개월 동안 다녀온 바다를 필름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바다와 노을 구경으로 시작한 맛조개 잡이
▲ 변산의 노을 멀리 보이는 하섬 위로 해가 지고 있다. ⓒ 안사을
지난해 12월, 연로하신 외할머니를 모시고 고사포해변을 찾았다. 삽으로 모래를 파헤친 흔적이 군데군데 있었고 가족으로 보이는 서너 명의 무리들이 군데군데 앉아있었다. 뭐라도 잡나 싶어서 가까이 갔더니 구멍에 소금을 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로만 듣던 맛조개 잡이 활동이었다.
그 순간 두 개의 촉수 같은 것이 쏙 올라왔다. 초등학교도 채 들어가지 않았을 것 같은 어린아이가 매우 능숙한 손놀림으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맛조개를 캐 올렸다. 불혹을 바라보는 나의 눈에도 신기한 이 광경이 그 아이에게는 얼마나 벅찬 순간이었을까.
전주로 돌아와 기상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물때표를 보았다. 고사포나 변산해변은 없었지만 가까운 격포항의 물때가 나와있었다. 한 달여 후 그 시간을 참고하여 다시 바다를 찾았다. 가장 물이 많이 빠지는 때보다 조금 시간이 지나있었지만 호미를 들고 호기롭게 퍼질러 앉았다. 남부시장에서 산 밭방석이 엉덩이에 깔려있었다.
▲ 변산해수욕장에서 밭방석 두 개와 아이스박스 하나. 사진을 찍느라 물이 들어와 시간을 빼았겼다. ⓒ 안사을
▲ 해무와 함께 (핸드폰사진) 더 깊은 곳으로 가야 했다. ⓒ 안사을
첫날의 수확은? 난생처음 보는 조개 열몇 개와 바지락 몇 마리가 전부였다. 우리가 찾은 구멍은 죄다 게 구멍이었다. 밀물 때 물이 차있는 곳까지 깊이 들어갔어야 했는데 게가 있는 곳에 맛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보 같은 추측을 하며 게가 열심히 만들어놓은 동글동글한 흙더미를 보고 자리를 잡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 날 얻은 것은 땅을 파대느라 생긴 근육통과 조개 몇 개를 뜨거운 열로 쥐어짜 겨우 건진 뽀얀 국물 몇 숟가락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영상을 찾아보며 더욱 먼바다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미보다는 삽이 편할 것 같아서 휴대용 야전삽을 뒤져 찾아냈다.
드디어 직접 잡은 맛조개... 소리를 질렀다
부안으로 가는 길에 계화에 들렀다. 예전에는 드넓은 바다였고 조개구이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갇혀버린 바다를 죽은 자식 만지듯 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수평선이 있어야 할 곳에 지평선이 있다.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매립된 이곳은 기약도 없이 버려진 땅이 되었다.
공사 현장은 마치 터만 남은 절처럼 황폐하다. 하지만 이곳에도 여전히 생명은 있다.
▲ 계화 녹슨 파이프가 바다였을 곳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 안사을
▲ 도로끝 도로는 끝이 났고 수평선이 있어야 할 곳엔 무성한 갈대만 가득하다. ⓒ 안사을
2월 하순에 나간 두 번째 출정은 대성공이었다. 일단 모래를 어느 정도 파 놓고, 구덩이를 옆으로 넓혀가는 방식으로 하여 사선으로 모래를 떴다. 게 구멍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선명한 구멍이 보였다. 소금을 뿌리자 물이 두세 번 울컥울컥하더니 외계 생명체와도 같은 모습을 한 맛조개의 촉수가 올라왔다.
블로그 등에서 본 노하우대로, 한 번 더 기다렸다. 그러면 조개가 더욱 높게 올라올 것이기 때문에 실패가 적다고 했다. 두 번째 올라온 순간 손가락으로 맛조개의 몸통을 잡고 조심스럽게 빼내었다. 맛조개의 끝자락이 모래펄을 파고드는 몸짓으로 인해 맛을 잡은 나의 손끝에 모래의 질감이 쫀득하게 느껴졌다.
엄청난 일이라도 해낸 양 소리를 질러댔다. 구멍을 한 번 발견하니 연달아 눈에 띄었다. 물이 들어와 신발 밑창을 칠 때까지 맛조개 사냥에 여념이 없었다. 아이스박스 아래에 빈틈없이 차고도 그 위로 쌓였다. 땅을 파다 보니 백합이나 바지락 등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막상 잡는 와중에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아쉬웠다. 더구나 묵직한 필름카메라, 초점링을 손으로 직접 돌려야 하는 수동카메라여서 더 그랬다. 다음엔 꼭 맛조개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을 필카로 포착해 보리라는 소박한 목표도 세워본다.
▲ 이날의 수확 둘이서 먹기 벅찰 정도의 양이었다. ⓒ 안사을
오며 가며 발견하는 시골의 정경 또한 조개잡이의 손맛 못지않은 매력이 있다. 사진에는 담을 수 없지만 간혹 만나게 되는 시골 어르신의 재치 있는 입담 또한 폭소를 터트리게 한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이런 풍경을 되도록 부지런히 필름에 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이제 날이 풀렸으니 더 더워지기 전에 맛조개를 잡으러 또다시 바다로 나가볼까 한다. 그때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로 조금 돌아서 진행하며 새로운 풍경을 만나볼 것이다. 사람 사는 모습이 조금 더 담기면 더 좋겠다.
▲ 어느 밭 나무로 된 작물 재배용 틀 사이로 의자가 놓여있고 그 위엔 광주리가 있다. 어떤 목적으로 이렇게 배치했으며 누가 어떤 모습으로 저 공간에 있을지 참 궁금했다. ⓒ 안사을
▲ 소멸 나와 나이가 같은 카메라이기에 셔터막이 가끔 말썽이다. 오버홀이 필요하지만 그냥 그대로 둔다. 늙고 고장난 카메라로 담은 일그러진 풍경이 어쩌면 더욱 진실에 가까운 이미지일지도 모르므로. ⓒ 안사을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