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는 연락을 기다린 지도 어느덧 100일이 흘렀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숨진 고 박예원씨의 어머니 이효은씨는 지금도 딸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다. 메시지 옆의 '1'은 2024년 12월 29일 이후 사라지지 않는다. 이씨뿐만 아니라 유가족 모두가 겪고 있는 일이다.
읽히지 않을 편지를 보낸다.
"사랑하는 내 동생 ○○아. 항상 예쁘게 웃는 너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이제 볼 수 없다는 게 정말 믿기지 않아. 마지막 연락조차 언니가 좋아하는 거 사다 준다는 너의 연락이 더 마음 아프고 가족방에 없어지지 않는 1이 아직도 믿을 수 없어."
오지 않을 전화를 기다린다.
"아들아. 천국에 도착했다는 전화 매일매일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까지 전화가 없구나.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나한테 전화해라. 아빠가 전화 요금 다 내줄게. 날이 새도록 천국의 일상 얘기하자.
- 전화를 기다리는 아빠."
답장을 하라고 채근한다.
"잘 갔니? 도착했음 카톡해야지 왜 답이 없어."
"성호. 내 동생으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 이제는 모든 짐을 내려두고 너와 ○○이의 행복을 위해 살기를. 많이 보고 싶다, 아주 많이! 행복한 여행이 되어라. 곧 만나자. 사랑해.
- 누나가."
"사는 동안 두 다리로 아둥바둥 오로지 가족과 일밖에 몰랐는데... 당신에게 닥친 시련이 너무나 감당이 안 되네... 얼마나 무섭고 고통이었을까. 하늘에서 편히 쉬어요. 나에게 인사 없이 가서 많이 서운한데 내가 참아야지. 고생 많았고 우리 애들 지켜줘요. 사랑합니다. 많이 사랑했어요.
- 당신만 사랑한 와이프."
계단 위 2636개의 편지

공항엔 아직 유가족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2636개의 편지가 공항 계단에 여전히 붙어 있다. <오마이뉴스>는 참사 100일을 맞아 2636개의 편지를 모두를 촬영해 기록했다. 유가족, 친구, 직장동료, 지인, 그리고 참사 소식에 공항을 찾은 자원봉사자, 시민, 공직자, 다른 참사 유가족이 직접 손으로 쓴 편지다.
"잠이 안 올 때 계단의 메시지를 보며 울기도 해요."
- 고 이민주씨 어머니 정현경씨
수많은 편지에는 유가족의 고통을, 앞으로의 참사를 막기 위해 남은 이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담겨 있었다.
함께 떠난 동갑내기 친구
2000년생 두 동갑내기는 함께 여행을 떠났다. 두 친구를 기리는 수많은 편지가 계단을 수놓았다.
"민주야 어렵다. 실감이 안 나. 말이 안 돼. 네 목소리가 내 귓가에 아직도 들려."
"민주야 보고 싶다. 난 아직도 거짓말 같아. 믿기지 않아. 사실 근데 진짜 내일이라도 연락해서 아니라고 할 것 같아."
"너 보고 온 다음 날 일하다 손가락을 베었는데 그 작은 상처도 이렇게 아픈데 넌 얼마나 고통이었을까 감히 상상도 할 수가 없네."
"너무 일찍은 못 가고 너무 늦지는 않게 찾아갈게."
"예원아. 오케스트라 모두 왔다. 네가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중요하고 귀한 존재였다는 걸 꼭 기억해라. 선생님이 진짜 많이 보고 싶다. 꼭 다시 보겠지만 그 시간이 아득하구나."
"예원아, 사실 나 아직도 믿기지 않아. 네 목소리, 얼굴 모든 게 생생한데 네가 내 카톡도 안 읽고 나한테 시비도 안 걸어주는 게 이상해."
"예원아. 거기서 민주랑 재미있게 놀고 있어. 가끔은 내 꿈에 나와서 같이 놀아줘야 해."
"이모, 삼촌과 이야기하면서 여행 다니기 좋아하는 우리 예원이가 민주 누나 손 꼭 잡고 아주 긴 여행을 떠났다고 생각하려고 해."
수많은 편지의 주인공 고 이민주씨의 어머니 정현경씨는 딸이 2024년 12월 29일 새벽 태국 공항에서 보낸 메시지를 내보였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민주씨는 엄마에게 자신의 사진을 보냈다. 엄마는 이렇게 답했다. "그래, 시간이 진짜 빨리 간다. 집에서 보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와라. 20대가 제일 좋은 시절이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딸의 "제일 좋은 시절"을, 엄마는 이제 볼 수 없다.
고인과 남겨진 이들의 거리가 점점 벌어진다. 지난 3월 25일 광주의 한 추모관에서 만난 고 박예원씨의 어머니 이효은씨는 눈물을 쏟아냈다.
"제가 아직 이곳에 있다는 건, 나나 우리 예원이나 아직 시간여행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계속 기도합니다. 시간여행자를 만나 제발 딸에게 이 말을 전하게 해달라고요. '떠나지 말고 제발 집에 있으라'고."
엄마는 왜 자신이 "꽃 피는 봄날" 추모관에 있어야 하는지 묻고 있다.
갈 길은 먼데 시간은 계속 흐르고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만 기억을 멈추지 않겠다는 이들이 있다.
"너무 참담했던 그날은 이제 점점 멀어져 가는 것만 같습니다. 야속하게도 흐르는 시간을 멈출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현실이 더욱 가슴 아픕니다. 비록 시간을 멈추어 되돌릴 수 없다 하더라도 기억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100일이 지났지만 아직 진상규명까진 갈 길이 멀다. 갑작스레 손녀를 잃은 고 박예원씨의 할아버지는 충격으로 얼마 뒤 세상을 등졌다. 여러 유가족들은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가까운 이들마저도 그들에게 "아직도 안 끝났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누군가는 "무서워서 세상에 못 나가겠다"고 한다.
"집에 있는 것보다 공항이 편하고 그렇다고 공항에 있어도 마음 아프고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매일 공항에 있지만 너무들 관심이 없고 우리 부모님, 형제·자매들이 벌써 잊히는 것 같아."
"술친구가 보고 싶습니다.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할 나의 술친구. 정말 보고 싶네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만나러 가겠습니다."
"목포와 공항을 오가며 '이게 아닌데'를 수없이 되뇌어도, 결코 되돌릴 수 없음을 알면서도 쉬이 마음의 이별이 안 된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목소리 듣고 싶고 정말이지 미칠 것만 같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어떻게 우리를 버리고 하늘나라로 간 거냐. 믿을 수도 믿고 싶지도 않다."
유가족들은 가끔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얼굴을 만난다. 꿈을 기다린다. 다음 생을 기약한다.
"사랑하는 내 동생 ○○아 추도식이 끝난 후 비로소 그때야 내 꿈에 나타나 준 너, 내가 물었지. '○○아 다음 생에 태어나면 그때 또 누나 동생으로 태어나 줄 수 있을까? 그땐 더 잘해줄게.' 넌 대답했어. '누나, 그땐 내가 오빠로 태어날게.' 존재 자체가 축복이었던 너. 다음 생엔 오빠 동생으로 또 만나. 사랑해."
"엄마! 사랑하는 나의 엄마. 엄마의 빈자리는 크겠지만 잘 견디며 살아갈게. 보고 싶으면 언제든 꿈속에서 꼭 만나."
"12월 26일 목요일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딸이 저에게 송금을 하는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화를 걸어 '수림아 무슨 돈이야?' 했더니 딸이 '아빠! 그건 외로움값이야'(라고 답했습니다.) '응? 외로움값? 그게 뭔데?' 물어보니까 '나랑 엄마랑 OO이는 여행도 많이 다니고 같이 지내고 있는데 아빠는 우리 때문에 타지에서 외롭게 일하잖아.' 그리고는 깨어났습니다."
다른 참사의 유가족도 공항을 찾았다. "어느 평온한 날, 차갑게 식어 돌아온 가족을 맞아 본 사람"들은 "조금이나마 마음을 보탰"다.
"어떤 말로 가족 분들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을까요. 다만 어느 평온한 날, 차갑게 식어 돌아온 가족을 맞아 본 한 사람으로서 그저 눈물만 흘리다 갑니다. 부디 부디 쓰러지지 마세요."
"남아 있는 가족분들의 아픔과 충격. 시간이 갈수록 그리움은 더할 것이라 짐작합니다. 매순간마다 보고 싶고 심장이 조여오지만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하루하루를 견디게 될 그 마음 누구보다 잘 아는 저도 이곳에서 유가족 옆에서 조금이나마 마음을 보탭니다. 부디 굳건하시길.
- 대한민국의 또 다른 참사 가족."
"제 아들도 떠난지 100일이 다가오는데 함께 극락왕생하시길 바랍니다."
정부를 향한 요구는 부디 수취인불명이 아니길, 이들은 기원하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후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시민들은 "우리도 예외가 아니"라고, "그 순간만큼은 운이 좋았던 한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전국 각지에서 공항을 찾은 시민들의 편지는 계단을 촘촘히 메웠다.
"순간 그 순간 찰나만큼은 아무 기억도 못하길. 아무 고통도 없으셨길. 그냥 순간이 꿈처럼 지나갔길. (저는) 그냥 그 순간만큼은 그냥 진짜 그날 운이 좋았던 한 사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기에 더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길 바랍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시민들은 알고 있다. 정부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시민들은 다짐했다. 이를 위해 유가족과 연대하겠다고.
"마음이 너무나 아픕니다. 가신 분들이 편안히 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대한민국에서 두 번 다시는 이 같은 불행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조사와 항공 안전사고 대비 준비를 잘 해서 일가족을 먼저 보내는 아픔이 발생되지 않도록 정부에서 대책 마련해주시기를 바랍니다."
"179명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공항 시설 관련 방안 강화, 안전 시설 확충을 바라며 더 이상 이런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무지개를 보았어요.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 믿어요. 이제 가족 분들과 저희가 함께 연대할게요. 끝날 때까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진상규명이 반드시 이뤄지도록 유가족들에 대한 2차가해를 끊어낼 수 있도록 함께 연대하겠습니다."
"망고 안 사와도 되니까 얼른 와"

"엄마·아빠! 그렇게 이뻐하던 딸 왔어. 많이 보고 싶었지? 태국 가서 망고 사오라니까 사오기 싫은지 안 오네. 망고 안 사와도 되니까 얼른 와. 보고 싶어. 앞으로 어리광 피울 날이 많을 줄 알고 철없는 행동 많이 했었는데 이렇게 짧을 줄이야. 나 평생 철 안 들 거야. 그러니까 엄마·아빠가 따뜻한 햇살로, 시원한 바람으로 내 곁에 오래오래 있어 줘. 그럼 나도 엄마 아빠가 가르쳐준대로 남에게 배려하고 베풀며 살아갈게."
부치지 못한 편지는 지금도 공항 계단에 붙어 있다. 아래 편지 2636개를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