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 혁신의 노예]
정규직 된 오마르, 가르시아의 변화

라이더법 1년,
스페인 라이더들 삶 이렇게 바꿨다

2.

스페인

글.신상호

사진.이희훈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배달원 종사자는 45만 명. 배달앱 라이더와 택배, 우편 종사자까지 포함된 수치입니다. 이는 3년 전에 비해 10만 명이 넘게 늘어난 것입니다. 현재 배달앱 라이더만 집계한 정부의 공식 통계는 아직 없습니다. 다만 온라인을 통한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2017년 2조 7326억 원에서 2021년 25조 6847억 원으로 연 평균 75.1% 폭발적인 상승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배달앱 라이더의 법적 지위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21년 5월 라이더 권익보호법안을 만든 스페인을 찾아, 두 나라 라이더들의 일상이 어떻게 다른지 그 나라의 변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말]


배달 플랫폼 기업들은 배달 업무를 하는
라이더들을 모두 회사 직원으로 채용할 것

스페인 정부는 2021년 5월 배달 플랫폼 기업들에게 강력한 변화를 요구하는 '라이더법(정식명칭 : 디지털 플랫폼 유통에 종사하는 개인의 고용 상태에 관한 법률)'을 제정, 공표했다. 스페인 노동법의 적용대상을 늘린 것인데 플랫폼 배달앱에서 자영업자(개인사업자)형태로 일하는 라이더(배달 노동자)들을 모두 직원으로 고용할 것을 의무화하는 조항이다. 사실상 스페인 노동시장에 일대 혁명에 가까운 조치였다.

스페인이 만든 작은 혁명

스페인 사회에선 코로나 사태 이후 글로보와 우버이츠, 저스트잇 등 대기업 배달 플랫폼들이 활발히 영업 활동을 하고 있었고, 당시 배달 노동자들의 처우를 놓고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더법 제정으로 라이더 고용에 대한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다. 더불어 스페인은 배달 플랫폼 노동자들의 고용을 의무화한 유럽 최초의 국가가 됐다.

라이더법은 스페인 사회에서 적잖은 변화를 가져왔다. 배달 노동자들은 '자영업자'라면서 직원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던 대형 배달앱들이 노동자들을 정규직 직원으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에사데 기술 휴머니즘 포럼'이 저스트잇과 공동으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으로 근로자 수는 1만 980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97.78%가 정규직이다.

8월 초 시장 조사 기업 'NPD 그룹'이 내놓은 조사 결과, 스페인에선 매년 4억개 이상의 배달 주문이 생겨난다. 이에 따른 시장 매출도 약 26억 유로(3조 6400억원)에 이르고 있다.

유럽 최대 배달업체인 저스트잇은 법 제정 이후 2021년 12월 스페인 전국 단위 노동조합인 UGT와 CCOO와 단체교섭을 체결했다. 배달 노동자들의 임금(시간당 8.5유로)과 추가 수당(휴일 및 야간근로), 유급휴일, 상해보험가입 등 기존 계약에 없던 조항들이 명시됐다. 딜리버리히어로 자회사인 글로보 역시 식료품 배달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자영업자였던 라이더,
노예 혹은 투명인간

오마르 라이더 휴식시간

무엇보다 변화를 실감하는 사람은 배달앱 소속 노동자들이다. 라이더법이 제정되기 전, 이들은 자영업자 신분으로 일하면서 임금과 휴일, 사회보장보험 등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하루하루가 불안한 나날들이었다. 2018년부터 마드리드 일대에서 배달을 해왔던 베단코트 드북 오마르(33, 아래 오마르)에게 그 시절은 악몽과도 같았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말을 반납한 채 매일 10~12시간 배달 노동 일을 해야 했다. 그렇게 일을 했지만, 배달 오토바이 유지비, 자영업자에 부과되는 세금 등을 내기에도 빠듯했다.

"주말에 일이 몰리니까, 쉴 수가 없죠. 배달 주문이 들어오지 않을 때면, 그만큼 더 일을 해야 생활비를 겨우 벌 수 있었어요. 스페인에서 자영업자에게 부과되는 세금도 내야했고, 오토바이 유지 관리비도 대부분 제가 부담했어요. 노동자가 아니었으니, 휴가도 연금도 없고 당연히 주말도 없었어요."

지난 2018년부터 자영업자로 배달 노동을 해왔던 페르난도 가르시아(43)는 "배달앱 회사들이 비인간적이었다"면서 하나의 일화를 소개했다. 하루는 그가 배달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져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머리를 꼬맬 정도의 큰 부상이었다. 그런데 배달 회사에서 "왜 움직이지 않느냐"고 연락이 왔다. 가르시아는 다친 사실을 알렸지만, 회사 답변은 "그러면 배달은 어떻게 되는 건가"라는 것이었다. 결국 회사 측은 다른 라이더를 보내 가르시아의 배달 물품을 수거해 갔다. '당신은 자영업자이니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게 회사 측의 공식 대응이었다.

가르시아와 오마르 라이더 오토바이에 앉은 사진
가르시아

"나는 회사와 아무 상관 없는 자영업자니까 내가 다치거나 말거나 회사가 상관할 일이 아니었고, 단지 내가 배달하던 물품이 파손됐는지만 관심이 있었던 겁니다. 그들에게는 사람이 아니라 수익이 중요하고, 다친 라이더보단 배달 물품이 손상되지 않는지가 더 중요했던 거죠."

가르시아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하면서 돈 벌 수 있다'는 배달앱들의 선전에 매료돼 일을 시작했다. 그가 겪은 실상은 '지옥'과도 같았다. 배달앱들은 배달 알고리즘을 이용해 그의 배달 위치와 시간을 실시간 확인했고, 배달이 늦어진다 싶으면 지체 없이 독촉 메시지를 보냈다. 배달 시간이 늦거나, 고객 평점이 좋지 않으면 배달 알고리즘은 그에게 일감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배달 알고리즘은 그의 업무를 감독하는 상사이자 월급을 주는 사장 노릇을 하면서 그를 압박했다.

오마르와 가르시아 대화하는 사진

"우리 대장은 앱 알고리즘이었어요. 주문을 받고 주문지, 배송지 가고 얼마나 걸리는지 전부 체크를 다 했어요. 주문이 빨리 끝나면 또 다른 일감을 받을 수 있어서, 과속 등 불법 주행도 많이 해야 했어요. 그렇게 해도 잠깐 담배 피고 화장실 갔다오거나 하면 더 이상 주문 일감이 안 들어왔습니다. 기계처럼 쉬지도 않고 일해야 했죠. 노예나 다를 바 없었어요."

자전거로 배달하고 있는 라이더

“배달앱,
다친 사람 놔두고
물품만 챙겼다”

바로셀로나에서 배달 업무를 했던 데니도 배달앱들이 말하는 노동시간의 자율성은 사기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딜리버루에서 주로 일했던 그는 배달 1건당 수당을 받았는데, 배달 업무를 받기 위한 대기 시간을 포함하면, 일반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의 2배를 일해야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일 때, 회사 측에서는 아무런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아 감염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채 일해야 했다.

"배달 건당 수당을 받으면 배달 대기 시간은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거잖아요. 자율성이 있다고 배달앱들이 말하는데, 배달 일감을 받고, 생활비를 충당하려면 주말도 일하고, 다른 노동자보다 두 배로 일해야 해요. 배달을 하다가 사고가 나거나 코로나가 걸려도 회사에선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아요. 쉰다고 하더라도 돈이 나오지 않는데, 그건 휴가가 아니죠."

데니는 알고리즘을 통한 회사의 '비공식적인' 감시 감독도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그는 "GPS로 위치를 모니터링하면서 이동을 하지 않으면 왜 일을 하지 않고 있냐고 메시지가 온다, 친절한 말이지만 빨리 배달하란 압박이었다"며 "알고리즘의 어떤 변수가 나를 평가하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불합리하다고 얘기하기도 어려웠다, 보이지 않는 착취였다"고 했다.

오토바이로 배달하고 있는 라이더

가르시아는 라이더 법이 제정되기 전 당시 자신의 신분이 '가짜 자영업자'라고 했다. 그는 "자영업자라면 모든 조건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하지만, 라이더들은 라이더가 관리할 수 없는 앱(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를 받는다"면서 "배달앱들이 라이더들을 노동자처럼 쓰고 있다, 배달앱들이 이야기하는 자영업자는 가짜였다, 사기였다"라고 말했다.

지난 2021년 라이더의 정규직 고용을 의무화한 라이더법 제정은 이들을 해방시켰다.

라이더 법안을 설명하는 사진
법안 설명 모달 버튼

대니는 지난 2020년을 끝으로 라이더가 아닌 다른 직업을 찾았지만, 가르시아와 오마르는 정규직 전환을 위한 수습 기간을 거쳐 지난 1월 글로보 자회사의 정식 직원으로 채용됐다. 배달 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정규직 직원으로 채용되면서, 들쑥날쑥한 배달 수당이 아닌 정기적인 월급이 보장됐고, 주 40시간의 근로시간도 보장됐다. 가짜 자영업자 시절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휴가도 쓸 수 있게 됐고, 적절한 휴게시간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배달에 쓰는 오토바이 등 물품 비용, 자영업자에게 부과되는 세금도 내지 않게 됐다.

사무실 앞에 서 있는 라이더

정규직이 되자,
일상을 되찾았다

10월 3일 오전, 글로보의 마드리드 식료품 창고는 분주했다. 물류차량들이 오가면서 쉴새없이 식료품들을 날랐고, 직원들이 물품들을 체크하면서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해가 뜰 무렵, 글로보 소속 배달 노동자인 가르시아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도 물류창고로 들어가 오토바이 배터리 등 업무 장비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가짜 자영업자 시절 물류 창고 안은 금단의 구역이었어요. 정규직이 되기 전에는 창고 안을 들어갈 수 없었어요. 글로보 직원이 아니라 자영업자, 외부인이었기 때문에 회사 내부를 출입할 수 없다는 거였죠."

정규직 노동자, 글로보 직원이 되면서 창고 문도 함께 열렸다. 창고 내부에는 라이더 노동자들을 위한 커피머신과 음료대 등이 있었고, 휴식을 위한 테이블도 마련돼 있었다. 배달 주문을 대기해야 할 때, 가르시아는 이곳 창고 안에서 커피를 마시고,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며 쉰다.

이날 출근한 오마르의 표정에도 여유가 넘쳤다. 월요일 그의 근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정규직이 되고 난 뒤, 일감과 수당에 대한 압박이 사라지면서, 그는 더 이상 시간에 쫓기는 위험한 운행을 하지 않게 됐다고 했다. 오마르는 정규직 전환을 퍽 만족스러워했다.

"정규직 전에는 배달 업무를 하면서 과속을 할 때도 있었어요. 지금은 속도를 내거나 무리하게 운행을 하지는 않아요. 또 은행 융자도 받을 수 있고 일자리에서 잘려도 실업수당도 받을 수 있어 상대적으로 마음이 편해졌죠. 쉬는 시간도 생겼고, 퇴근하면 친구들을 만나거나 내 시간을 즐길 수도 있게 됐죠."

그가 정규직이 되고 난 뒤의 일이었다. 정규직이 되고 가장 좋은 점이 뭐냐고 묻자 오마르는 주저 없이 "여자친구가 생긴 것"이라면서 수줍게 미소지었다. 가짜 자영업자 시절에는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었다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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