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 혁신의 노예]
스페인 대법원 움직인 '알고리즘 사장론'

라이더 이삭의 '나홀로 투쟁',
스페인과 유럽을 흔들다

3.

스페인

글.신상호

사진.이희훈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배달원 종사자는 45만 명. 배달앱 라이더와 택배, 우편 종사자까지 포함된 수치입니다. 이는 3년 전에 비해 10만 명이 넘게 늘어난 것입니다. 현재 배달앱 라이더만 집계한 정부의 공식 통계는 아직 없습니다. 다만 온라인을 통한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2017년 2조 7326억 원에서 2021년 25조 6847억 원으로 연 평균 75.1% 폭발적인 상승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배달앱 라이더의 법적 지위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21년 5월 라이더 권익보호법안을 만든 스페인을 찾아, 두 나라 라이더들의 일상이 어떻게 다른지 그 나라의 변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말]

"
(배달앱들은) 스페인이 오랫동안 노동자
권익을 위해 싸워왔던 역사에 무지했습니다.
인간으로서 존재감을 세워야 했기에,
끝까지 법적 소송을 했습니다.
"

스페인 대법원은 지난 2020년 9월 플랫폼 노동의 역사를 바꾸는 중요한 판결을 내린다. 대형 배달앱 회사인 글로보와 배송원(라이더)과의 고용 관계를 인정한 판결이었다. 이 판결은 스페인이 라이더들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직고용하도록 명시한 '라이더법'의 초석이 됐다.

글로보 라이더 자전거 배달 장면 우버이츠 라이더 자전거 배달 장면
저스트잇 라이더 배달 장면 글로보 라이더 자전거 배달 장면

배달원 이삭의 '나홀로 투쟁'

대형 배달플랫폼인 글로보의 배달원으로 일했던 이삭 꾸엔데(57)는 지난 2017년 배달회사와의 고용 관계를 인정해달라고 최초로 소송을 냈다. 그는 지난 2015년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글로보의 말을 믿고 배달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배달원이 된 그에게 마음대로 일할 권리는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회사는 "악마처럼 일을 시켰다."

"본업을 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글로보에서는 주말이나 휴일 등 (내가 근무하길)원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알고리즘이 근무일에 따라 점수를 매겼는데, 점수가 낮으면 원하는 날짜에 일할 여지가 없어집니다. 일감을 받으려면 원하는 시간에만 일할 수 없었고 개인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글로보는 이삭을 철저하게 '자영업자'로 대하면서 선을 그었다. 하루는 그가 배달 도중 넘어져 크게 다친 적이 있었지만, 회사는 이삭에겐 어떤 구호 조치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행태가 "미친 짓"이라고 분노하면서 '싸움'을 결심했다.

"플랫폼 회사들은 스페인 사회에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을 채택한 것 같았습니다. (플랫폼 회사들은) 스페인이 오랜 세월 노동자 권익을 위해 싸워왔던 역사에 대해 너무 무지했습니다. 하루에 10~12시간 일해도 다 문제없다고 하고, 모든 것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만 끌고 가려 했습니다. 스페인은 그런(그런 행위가 허용되는) 나라가 아닙니다."

이삭 꾸엔데(좌측)
이삭 꾸엔데(57, Isaac Cuende, 좌측)

"인간으로서 존재감
회복해야 했다"

배달 플랫폼 회사의 고용 관계를 인정해달라는 그의 소송은 쉽지 않았다. 스페인 1심 법원은 '고용 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플랫폼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스페인 고등법원에서도 판사 3명 중 2명이 '고용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고, 나머지 1명만 '고용 관계가 인정된다'고 했다. 연이은 패소, 그럼에도 이삭은 "끝까지 가겠다"며 대법원에 상고했고, 고용 관계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인간으로서 나 자신의 존재감을 세워야 했었습니다. (소송을 끝까지 이어간 것은) 인간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법원 소송전을 이어가는 이삭에게는 든든한 친구가 있었다. 소송에서 이삭의 법률대리인을 맡았던 루이스 수아레즈 변호사다. 노동법 전문인 수아레즈 변호사는 이삭이 제기한 문제 의식에 적극 공감했고, 수임료를 한 푼도 받지 않고 재판에 임했다.

그는 소송에서 '플랫폼 기업들의 배달원에 대한 관리감독 여부'를 밝히는 게 주요 쟁점이었다고 했다. 스페인 노동법에 따르면, 회사가 노동자에게 직접적인 관리감독을 하게 되면 고용 상태로 보기 때문이다. 플랫폼 회사는 "배달원들이 자발적으로 원할 때 일하고, 배달원들의 근로를 통제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수아레즈 변호사는 플랫폼이 운영하는 '알고리즘'이 실질적인 사장 역할을 한다는 논리를 폈다.

"알고리즘이 회사(플랫폼 회사)를 대체한 것입니다. 배달앱 알고리즘은 배달원들의 노동을 지배합니다. 주말에 일을 안하면 배달원들의 점수를 깎고, 배달이 필요한 주말이나 저녁에 일을 많이하면 상을 줍니다. 플랫폼이 말하는 배달원의 자유는 조건이 붙은 자유, 가짜 자유였습니다. 사장과 똑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스페인 대법원
스페인 대법원

수아레즈의 '알고리즘 사장론'

대법원은 글로보와 이삭이 고용 관계에 있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고객 주문이 가장 몰리는 시간대 배송원 업무 실적이 낮거나, 배송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를 거절하는 등 점수체계를 수립하고, (배달원의) 자유를 제약했다"고 했다. 수아레즈 변호사가 주장했던 '알고리즘 사장론'이 효과를 본 것이다.

그는 대법원이 판결을 위해 대법관 전원(11명)이 모이는 전원합의부를 통해 결정한 것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라고 했다. 수아레즈 변호사는 "배달원 고용 인정 소송이 스페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논쟁 거리이기 때문에, 대법관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전세계에 분명히 전달하고 싶었던 의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을 위해 모였던 11명의 대법관들은 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하면서 '고용관계를 인정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루이스 수아레즈 변호사

루이스 수아레즈 변호사

루이스 수아레즈 변호사
법안 설명 모달 버튼

수아레즈 변호사는 대법원의 판결은 "디지털경제로 노동자들의 권리가 변화하는 시점에서 결정이 난 판결"이라면서 "대법원의 판결은 스페인 노동자들의 권리를 다시 한번 인정하는 중요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대법원에는 진보 측도 있고, 보수 측도 있는데 양쪽이 모두 합의했다는 것은 이런 현상에 대해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공통된 의견이 있었던 것"이라며 "디지털경제라는 새로운 현상에 대해서 노동법 외에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전을 해야 한다는 공통된 생각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라이더의 법률적 지위를 명시하도록 하는 입법 요구가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스페인노동자위원회(CCOO, Comisiones Obreras)와 스페인노동자총연맹(UGT, Union General de Trabajadores), 라이더의권리(RXD, Riders X Rights) 등 라이더의 직고용을 법률로 명시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스페인 정부도 입법을 적극 추진했다. 입법 논의 과정에선 스페인 노조와 사용자 단체들도 참여해 폭넓게 의견을 수렴했다.

스페인 정부는 2021년 5월 플랫폼 기업의 배달원들을 자영업자가 아닌 근로자로 고용하도록 하는 긴급명령(왕실법령)을 승인했다. 개정된 법조항은 '고용주에 의해 지휘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서비스, 업무실행 조건의 알고리즘 관리'를 통해 배달 업무를 하는 배달원들은 자영업자가 아닌 근로자로 추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배달원들에 대한 실질적인 관리, 감독 업무를 하는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노조에 공개하라는 내용도 담겼다.

호아킨 페레즈 레이(Joaquín Pérez Rey) 스페인 고용 및 사회적 경제부 국무장관은 "라이더법은 광범위한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스페인 내 노동조합과 고용주 단체들로부터 찬성표를 받았고, 이들도 새로운 기술 발전 사회에서 탄생한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들을 보호할 제도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국회 역시 라이더법을 지지했다, 사회적 지지와 정치적 지지가 동시에 이뤄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스페인 정부의 입법,
EU의 변화

스페인의 이런 발빠른 입법은 유럽 전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2021년 9월 유럽연합(EU)의회는 "라이더, 운전기사 등 플랫폼 노동을 위한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적 권리 보장(Fair and equal social protection for riders, drivers and other platform workers)" 결의안을 채택했다. 배달원이 노무를 제공하면 노동자로 보는 것이 정당하고, 사용자가 이의가 있다면 직접 노동자가 아닌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EU 정부는 이 결의안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플랫폼 노동 권리 보장에 대한 법령(디렉티바)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수아레즈 변호사는 "EU의 법령(디렉티바)은 회원국들이 법령을 반영해 입법을 해야 하고, 일정기간이 지나도 입법을 하지 않는 EU 회원국에는 직접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조항"이라면서 "스페인 대법원의 판결과 라이더법은 노동자 권익을 인정한 큰 발전이었고, 유럽 디렉티바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라이더 고용 인정 소송을 처음 제기한 이삭, 그를 무료 변론한 변호사 수아레즈. 이들의 승리는 스페인을 넘어 유럽 차원의 노동권 강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끈질긴 법정 투쟁 끝에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해낸 이들은 라이더법 제정의 '보이지 않는 영웅'이다. 이들은 한국 플랫폼 노동자들이 '라이더법 제정 이전' 스페인과 유사하다고 하자, 이런 말을 남겼다.

코멘트 하고있는 이삭 꾸엔데

이삭 꾸엔데

"한국 배달 노동자들은 권익을 지켜야 합니다. 용기를 갖고 싸워야 합니다. 당신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기업들이 당신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코멘트 하고있는 수아레즈 변호사

루이스 수아레즈 변호사

"스페인에서도 자영업자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럽은 (자영업자가 될 권리) 그런 자유를 주지 않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는 '권리의 이름으로' 우리가 합의하는 것과 상관 없이 보장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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