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 침입해 속옷에 사정...
가해자는 풀려났다

[주거침입 잔혹사③] 판결문 35%에 성적목적 드러났지만
주거침입만 적용... 해법은?

가장 안온해야 할 곳, '집'. 그러나 여자의 집은 자주 예외가 된다. 여성이 사는 집 담을, 문을, 창문을 넘어 침입했다는 뉴스는 끊임없이 새로고침 된다. 오마이뉴스는 그 실체를 들여다보기 위해 2021~2022년 '주거침입' 사건 판결문 200건을 분석했다. 거기엔 '성적목적'을 위해 타인의 주거에 침입한 가해자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8편의 주거침입 잔혹사를 공개한다.[편집자말]

서울 중랑구의 한 반지하. 가해자는 피해자 집의 담을 넘었다. 피해자 집 화장실 창문 앞까지 들어간 가해자는 "피해자가 샤워하는 모습 등을 훔쳐보며 자위행위를 했다"고 판결문에 적혔다. 가해자에게 적용된 혐의는 네 글자. '주거침입'이었다.

서울 강동구 다세대주택. 가해자는 다세대 주택 안으로 들어가 2층 복도 난간을 밟고 섰다. 출입문 위에 위치한 "유리 틈 사이로 내부를 들여다" 보기 위해서였다. 하루에 다섯 번 유리 틈을 들여다본 날도 있었다. 판결문에는 "피고인은 관음증을 앓고 있는 자"라고 적혔다. 가해자에게 적용된 혐의는 주거침입이었다.

경북 포항시 주택. 피해자 뒷집에 거주하는 가해자는 담을 넘어 피해자의 집에 들어왔다. 안방까지 침입한 가해자는 장롱 서랍을 열고 피해자 속옷을 꺼내 자위를 한 후 정액을 묻혔다. 판결문에는 "브래지어에 사정하여 그 효용을 해하였다"고 적혔다. 가해자에게 적용된 혐의는 재물손괴와 주거침입이었다.

경상북도 김천시 일대. 2021년 3월 1일부터 3월 18일까지, 가해자는 6명의 각기 다른 피해자 주거지에 침입했다. 3곳에서는 속옷 등을 훔쳤다. 그 중 한 곳에서는 빨래건조대에 걸린 빨래에 불을 붙였다. 속옷을 훔치지 않은 경우에는 "여성 속옷의 냄새를 맡을 목적으로" 주거에 침입했다고 판결문에 명시됐다. 가해자에게 적용된 혐의는 현주건조물방화, 재물손괴, 야간주거침입절도 그리고 주거침입이었다.


판결문에 명시된 명백한 흔적, 그러나...
▲ 상당수의 주거침입 범죄는 가해자의 성적목적은 지워진 채 '주거침입'으로만 처벌받는다. ⓒ DALL·E

<오마이뉴스>가 분석한 여성 대상 주거침입 판결문(2021~2022년 판결문 200건)의 일부다. 공통점이 있다. 판결문에 묘사된 범행 당시 상황을 보면 '성적목적'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적용된 혐의에는 성적목적이 반영되지 않는다. 200건 중 70건(35%)이 여기에 해당한다. 훔쳐보기 위해, 자위하기 위해, 속옷 냄새를 맡기 위해라고 판결문에 적시돼 있지만 가해자의 범행은 '주거침입' 네 글자로만 설명된다.

나머지 64건은 주거침입과 더불어 성폭력 범죄(성폭력범죄의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 강제추행, 강간 등)가 함께 벌어진 사건이다. 종합해보자. '성적목적'이 드러났지만 주거침입으로만 다뤄진 70건, 이 성적목적이 형법에 명시된 성범죄로 발현돼 성폭력 범죄로 다뤄진 사건이 64건이다. 총 134건이 '성적목적성 주거침입' 사건이다. <오마이뉴스>가 분석한 200건 중 67%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 밖의 18건은 친밀한 관계 내 범죄(교제했거나 결혼했던 사이)로 대부분 폭행을 동반한 것이 특징이다. 주거침입이 발생했지만 층간 소음 불만이 범행 이유거나 금붙이를 절도한 사건 또는 판결문에 적힌 범행 묘사에서 성적목적이 드러나지 않은 사건 48건도 200건 내에 포함됐다.

성적목적이 혐의에 반영되지 않은 70건의 판결문 중 속옷 도둑 범죄 사건은 총 33건이다. 이 경우 주거침입에 '절도' 두 글자가 추가된다. 속옷에 정액을 묻히면 해당 물건의 쓸모(판결문 표현에 따르면 '효용')를 잃었기에 혐의에 재물손괴가 추가된다. 속옷을 훔치고 나머지 옷들을 태웠다면 '방화'와 '재물손괴'가 추가될 뿐이다. 일부 재판부는 침입한 가해자의 성적목적을 언급하며 "범행으로 인해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피해가 크다"고 봤다. 그러나 법적으로 '타인의 집에 들어감'만이 범죄가 되는 것은 매한가지다.

나이든 남성이 창문 너머에 있다면, 훔쳐봤을까

주거침입 범죄를 법정에서 다룸에 있어 '성적목적'이 삭제되는 것에 대해 백소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주거침입 범죄의 속성을 면밀하게 살펴야한다"고 강조했다.

주거침입 피해자의 법률 지원을 맡았던 백 변호사는 "가해자는 아무 집이나 들여다보지 않는다, 어떤 '목적' 때문에 들여다보는 것"이라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대상이 그 안에 있기 때문에 보는 것이다, 나이든 남성이 그 안에 있다면 훔쳐봤겠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현재 법정에서 다뤄지는 주거침입은 '멋대로 내 밭에 들어왔다' 정도의, 피해자를 남성으로 상정한 재산 침해의 개념으로 읽힌다"라며 "그러나 범죄의 속성을 들여다봐야 한다. 상당수의 범죄가 재산 침해가 아니라 성적목적에 기인한 범죄고 이는 비접촉 성범죄라는 명확한 인식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짚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 역시 "가해자의 범행 목적을 들여다보면 성범죄 의도를 갖고 있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다"라며 "그런데 이걸 빼고 '주거침입'만으로 수사하고 사법부가 판단하는 건 전적으로 가해자 입장에 서서 최소한의 제재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성적목적이 짙어도 가해자의 주거침입이 성범죄로 다뤄지지 않기 때문일까. 주거침입 가해자들의 상당수는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받고 풀려난다. 가해자들의 범죄에서 '성적목적'이 판결문에 드러나는 70건의 중 35건이 집행유예 선고를, 2건이 벌금형 선고를 받았다. 성적목적을 지닌 채 피해자의 집을 침범했던 가해자들은 '주거침입'으로 처벌받았고, 이 중 52.8%가 재판이 종료된 후 그대로 풀려나는 것이다.

앞서 나열한 사례 중, 피해자의 안방에 들어가 속옷에 정액을 묻힌 가해자에게도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피고인은 군사법원에서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 관한 특례법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에 주거침입 범행을 또 저지른 것이었다. 그럼에도 피해자 뒷집에 살던 피고인이 "수도권으로 이사한 점"이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됐다.

인천 남동구의 한 복도형 아파트. 가해자는 피해자 집 앞에 섰다. 그는 복도 쪽에 난 창문을 통해 집 안을 들여다봤다. 이 같은 범행은 20일 동안 6번 이어졌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또 다른 피해자도 있었다. 가해자 역시 같은 아파트 거주민이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엄벌을 탄원했고 가해자가 같은 아파트에 계속 거주하는 것에 대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했다. 가해자에게는 2019년 동종 범행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전력도 있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중대 범죄 발전 가능성' 눈여겨 본 일부 재판부
▲ 가해자에게는 2019년 동종 범행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전력도 있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집행유예형을 선고했다. ⓒ 이주연

실형이 선고된 33건의 경우 평균 형량은 약18개월이었다. 그중 일부 재판부는 징역형을 선고하며 가해자의 '성범죄 의도'를 파악했고, 그 위험성을 짚어내기도 했다.

피해자 2명의 집에 침입해 속옷을 훔친 가해자에게 박준범 대전지방법원 판사는 2021년 4월,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그는 "여성 혼자 사는 집에 침입한 범행은 그 위험성이 매우 크다"라며 "침입한 주거에 피해자가 있을 경우 다른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고 실제로 피고인은 주거에 침입하여 강제추행을 한 사실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라고 짚었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합의금을 지급해 처벌불원을 받아낸 상태였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합의에 이른 점 등은 유리한 정상이지만 이 사건 범행으로 피해자들은 심각한 유형, 무형의 피해를 입은 점 등 불리한 사정이 훨씬 많다"며 이같이 판시했다. 속옷 절도 사건 36건 중 19건이 집행유예에 그친 것에 비췄을 때 징역 1년 6월은 이례적 판결이다.

한 달 사이 다섯 번, 피해자의 집 현관문 손잡이를 잡아당겨 들어가려 한 '주거침입 미수' 혐의를 받는 가해자에게도 징역 6월이 선고됐다. 김준혁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2021년 6월 "야간에 여성이 혼자 거주하는 주거지에 침입을 시도한 피고인의 행위는 중대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어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라며 "이로 인해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이 상당하였을 것임이 충분히 짐작된다"라고 밝혔다.

새벽 3시 작은방 창문 방충망을 열고 피해자의 방에 침입한 가해자에게 징역 1년 6월에 선고됐다. 김초하 창원지법 판사는 2021년 11월 "이전 처벌 전력도 주거에 침입함을 수단으로 하는 성범죄로, 이번 사건을 포함해 피고인의 모든 범죄가 여성을 대상으로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라며 양형이유를 밝혔다. 이번 범행 역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적목적을 지닌 범죄'임을 살펴본 것이다.

모두, 주거침입 범죄가 성범죄 등 중대한 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음을 염두에 둔 판결들이다. 그러나 이 같은 판단을 오롯이 판사의 재량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성적목적 주거침입 신설, 왜 안 되나

백 변호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개정해 해당 법 안에서 주거침입을 다뤄야 한다고 제안했다. '성적목적 다중이용 장소 침입'의 경우 사적인 장소에 침입한 것은 주거침입과 동일하지만 범죄명에 '성적목적'을 추가해 성폭력 처벌법 위반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실제 <오마이뉴스>가 분석한 판결문 가운데, 주거침입과 성적목적 다중이용 장소 침입(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을 함께 저지른 가해자가 있었다. 두 사건을 병합해 판단한 재판부는 "여자화장실 안쪽 용변칸에 자위행위를 하기 위해 들어갔다"는 것을 '성적목적 다중이용 장소 침입'의 근거로 제시했다. 화장실에 침입하기 이틀 전 가해자는 여성 기숙사에도 침입했고 재판부는 "여성 속옷을 보면서 자위할 목적"이라고 범행 목적을 명시했다. 이에 대한 혐의는 단순 주거침입이었다.

가해자의 범행목적은 '자위 행위를 하기 위해서'로 동일하다. 그럼에도 화장실 침입은 성적목적이 범죄 혐의에 반영되고 기숙사 침입은 성적목적이 혐의에 반영되지 않는 것이다.

백 변호사는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가해자의 고의는 동일하게 인정돼야 할 죄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성적목적 주거침입을 성폭력 처벌법으로 처리한다면, 이 사안을 성범죄로 보겠다는 명확한 신호를 일선 수사당국도 인지하게 된다"라며 "별도의 죄가 생긴다면 수사 단계부터 가해자의 고의와 범행 목적을 밝혀내는데 수사력이 집중될 수 있다"라고 진단했다.

일선 현장에서 사건을 직접적으로 수사하는 경찰 역시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김영은 남대문경찰서 형사과 경위는 2021년 7월 발표한 <형법은 누구의 법감정을 반영하는가> 연구 보고서를 통해 "최근 발생하는 주거침입의 상당수는 성적목적이 의심되는 경우"라며 "성적목적을 위한 다중이용장소침입죄를 성폭력처벌법으로 처벌하고 있는데 법기술적으로 성적목적 주거침입죄의 신설이 불가능할 일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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