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결혼식에 와."
결혼식 전날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은 없었다고 했다. 읽지 않음 표시 숫자 '1'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럴 줄 알고 보낸 메시지였다. 고 황예진씨 외사촌 언니 강아무개(27세)씨는 황씨에게 종종 이렇게 답 없을 메시지를 보낸다고 했다.
"저는 지금도 예진이가 살아있는 것 같아요. 너무 멀리 살아서 제 결혼식에 못 온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여섯 살 때부터 10년 넘게, 황씨와 강씨는 같은 아파트 같은 층 바로 옆집에 살았다. "내 집·이모 집 구분없이 냉장고를 벌컥 열어 아이스크림 꺼내 먹고, 짜 먹는 요구르트를 얼려 먹고, 외할머니가 챙겨준 밥을 함께 먹으며 컸다"고 했다. 일하느라 바쁜 두 엄마를 대신해 '엄마들의 엄마' 외할머니가 두 집 자매들을 키웠다고 한다. 같은 초등학교, 같은 중학교,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강씨는 황씨를 "친자매같은 사촌, 가족이면서 친구인"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가족이면서 친구인 사람이 떠났다
그런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2021년 7월 25일 남자친구의 폭행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후 23일만에 사망했다. 황씨는 일명 '마포구 교제살인 사건' 피해자다. 강씨는 "내가 덜 힘들려고 하는 생각이겠지만, '언젠가 예진이를 만나겠지'하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씨에게 황씨는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옆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 황씨는 곁에 없다. 황씨가 스물 여섯살에 머물동안, 동갑인 강씨만 혼자 스물 일곱살이 됐다.
"저는 결혼 하고 이제 아기도 생겼는데, 제가 아는 예진이는 스물 여섯, 그 모습밖에 없잖아요. 저는 나이 먹고 할머니가 될텐데, 그게 많이 슬프더라고요. 예진이가 있었으면 내가 결혼할 때 얼마나 좋아했을까, 얼마나 축하해 줬을까, 그 생각하면 너무 슬퍼요."
강씨에게는 사건 이후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없던 종교가 생겼다. 강씨는 "예진이 병원에 있을 동안 기도를 정말 많이 했다, 원래 무교였는데 예진이 때문에 종교가 생겼다"고 말했다.
외동딸이었던 황씨를 대신해, 이모·이모부 옆에 서는 것도 강씨 몫이 됐다. 그는 "이모·이모부 옆에 있고 싶어서, 예진이 장례식장에 상주로 섰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됐다"고 했다.
""상주로 손님을 맞이하는데, 예진이 주변 사람들이 정말 정말 많이 왔어요. 셀 수 없이 많이 왔어요. 낮, 밤, 새벽 할 거 없이요. 제가 만약 이런 일을 당했다면 예진이만큼 많은 사람들이 와서 이렇게 자리를 지켜줄까 생각이 들 정도로요. 저도 직장 생활을 4년 가까이 했고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잖아요. 주변에 좋은 사람이 모이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더라고요. '예진이가 어떻게 사회생활을 했으면 이렇게 예진이를 아끼고 예뻐하는 사람이 많을까, 예진이가 나보다 인생을 잘 살았구나'하면서 저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황예진씨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달라진 일상들
강씨는 올 4월 결혼식을 올렸다. "친자매같은 사촌이자 가족이면서 친구인" 황씨를 결혼식장에서 볼 수 없었다. 역시 그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도 계속 쉽지가 않았어요. 뭔가 항상, 뭘 해도 마음에 걸렸죠. 외할머니도 저희 엄마도 결혼식장에서 예진이 생각나서 정말 많이 우셨어요. 이모는 제 결혼식에 못 오셨고요. 저는 정말 괜찮다고 전혀 서운하지 않다고 그랬어요. 예진이가 살아 있었다면...예진이 결혼식을 볼 수 없는 이모 입장을 제가 다 헤아릴 수 없겠죠...결혼 전에 남편 데리고 가서 이모께 인사 드리고 싶었지만 그러기가 참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이모가 많이 축하해 주셨어요."
황씨의 어머니는 코로나19가 가라앉으면 딸과 둘이 여행을 가려고 모아뒀던 카드 포인트를 강씨가 결혼할 때 넘겨주었다. 그 포인트를 신혼여행 가는 데 보탰다.
"예진이랑 가려고 안 썼다는 거, 저도 알고 있었어요. 어떤 마음으로 저한테 주신 건지도 잘 알고요. 그런데 이모한테 슬픈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 '이모 알겠어, 잘 다녀올게' 하고 갔다 왔는데...얘기하니 또 속상하네요. 신혼여행에서 비행기 탈 때도 하늘 보면서 예진이가 여기 있겠네, 한 번 더 생각나고 그랬어요."
어린시절을 함께 보내며 황씨는 "외동인데 맏이같은 아이"로, 세자매 중 첫째인 강씨는 "맏이인데 외동같은 아이"로 얘기되곤 했다고 한다. 강씨는 "동갑인데 만날 비교당하니 어린 나이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고 했다. 이 또한 달라졌다.
"어렸을 때는 외할머니가 예진이를 너무 예뻐해서 속상한 적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외할머니한테 제일 잘 하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하는 동안 몇 차례 눈물을 보였던 그가 잠깐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잘 해야죠, 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