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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덜도 말고 오늘 같은 날만 되었으면. 바라보는 가을 하늘이 참 곱다. 코발트 빛 하늘에 솜 뭉치를 풀어놓은 듯한 구름이 몽실몽실 떠 있다. 마음 같아서는 날개를 단 새처럼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고 싶다. 그런 유혹에 마음이 흔들려 나도 모르게 밖으로 나선다.
추석 무렵이면 가장 화려하게 꽃망울을 터트리는 상사화, 일명 꽃무릇. 못다 한 사랑을 피 토하듯 피어내는 꽃이다. 이 꽃은 게으름을 피우면 만나지 못하는 꽃이기도 하다. 피어 있을 때 만나지 않으면 어느새 시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때를 놓치면 못 만나는 꽃, 피어있는 기간도 짧다.
살고 보니 그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목숨 줄이라도 되는 듯. 사랑, 사랑 타령하며 살아간다. 아침을 먹고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월명 공원 꽃 무릇 보러 갑시다." 평생을 살아도 이벤트 한번 제대로 못하는 남편이다. 못하는데 어쩔 것인가. 그래도 내가 가자고 하면 거절하지 않고 같이 가주는 것만으로도 감지 덕지다.
기분 따라 수시로 변하는 남편의 마음, 남편 마음 변하기 전에 얼른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현관문을 나선다. 가을, 참 좋은 날씨다. 추울까, 더울까 걱정할 필요도 없는 날. 이런 날만 계속되면 좋으련 만, 가만 생각해 보면 변화가 없으면 또 무슨 재미가 있을까. 사람의 마음도 수시로 변덕을 부리는데 계절이야 오죽하랴.
요즘은 예전처럼 빨리 걷지 않는다. 나이에 맞게, 몸이 받아주는 만큼 걷는다. 걷다 쉬다 다시 걷는다. 그러니 걸을 만하다. 아직은 하루 만 보도 소화해 내는데 오륙 천 보 쯤이야 식은 죽 먹기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산책 나온 사람들도 많다. 가다 쉬다. 꽃길을 따라 걷는다.

▲군산 월명 공원산책길, 꽃 무릇이 핀 길 ⓒ 이숙자

▲꽃 무릇이꽃 무릇이 피어 있는 공원 ⓒ 이숙자
추석이 지난 후라 그런지 꽃은 시들어가는 것도 있고 아직 볼 만한 것도 잇다. 오늘 만나지 않았다면 거의 시든 꽃만 보았을지도 모른다.

▲꽃 무릇공원에 피어 있는 꽃 무릇 ⓒ 이숙자

▲활짝 핀 꽃 무릇아직은 지지 않은 꽃이 보기 좋았다 ⓒ 이숙자
산다는 건 타이밍이다. 순간 순간을 놓치면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남편은 무심히 앞서 걷고 나는 혼자 꽃과 눈도 맞추고 사진 찍느라 신바람이 난다. 누구를 위해 살 것인가.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에 충실하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한 번씩 움직여 보는 것. 그것이면 되지 않을까.
산다는 것이 별것이랴. 그저 내 곁에 있는 것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함께 있는 시간을 즐기며 자족 하면 되는 것을. 헛된 욕심에 마음을 빼앗기면 내 마음만 괴롭다. 때로는 같이 사는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편해 할 것도 없다. 사람이 어찌 똑같을 수 있단 말인가. 누구나 저마다 다른 인격체인 것을. 다름을 인정해야 내가 편하다.
어쩌면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것 자체가 수행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은 마음을 내어 꽃구경을 나왔고, 사진도 찍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을 함께 걸을 수 있으니 이게 어디인가. 마음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오늘 사는 일이 천국이다. 내일 모래 곧 구십이 되는 남편의 나이, 남편과는 알람 시간을 맞추어 놓은 듯한 느낌에 정신이 번쩍 들 때가 있다. 살아 있는 날,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