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세계 여성 뉴스를 전합니다.
"여성 각본가가 참여한 영화(여성 감독은 참여하지 않음)는 남성만 감독·각본을 맡은 영화보다 더 높은 이익과 투자수익률을 냈다. 그러나 정작 제작 예산은 남성 영화인에게 집중된다."
지난 22일 공개된 논문의 결론을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커뮤니케이션·미디어 연구를 다루는 국제학술지 프론티어 인 커뮤니케이션(Frontiers in Communication)에 새로 발표된 연구 결과인데요.
저자인 독일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마인츠 대학교 안야 후빌러(Anja Huwiler) 연구원은 "여성 각본가가 참여(여성 감독은 참여하지 않음)한 영화의 중앙값 이익은 3590만 달러(한화로 약 489억 원)로, 남성 감독과 각본가만 참여한 영화의 중앙값 이익(2680만 달러, 한화로 약 365억 원)보다 34% 높았다"고 진단했습니다(여기서 중앙값 이익은 전 세계 극장 매출에서 제작비를 뺀 금액의 중간값을 뜻함. 영화마다 편차가 너무 커 평균 대신 가운데 값을 분석에 활용 - 기자말).

▲여성 각본가 영화가 더 벌었다…제작비 상위 1%엔 여성 감독 ‘0’ ⓒ 챗GPT로 이주연 생성
1994년부터 2023년까지 영화 19만 9656편 가운데 4245편(주로 미국 개봉작)의 재무 성과를 비교해 이 같은 결론에 다다르게 됐다고 하는데요. 지난 몇 년간 세계적 흥행을 거둔 영화에서도 여성의 공동 집필 참여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아바타: 물의 길>(글로벌 흥행 수익 3조 원 돌파, 여성 각본가 아만다 실버 참여), <바비>(글로벌 흥행 수익 1조 9721억 원, 감독이자 공동 각본으로 그레타 거윅 참여)' 등이 그 예입니다.
이 연구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하나 더 있는데요.
"제작 예산 상위 1%에 속하는 영화 44편 중 39편은 남성들로만 구성된 제작진이 만든 영화였다. 여성 감독이 참여한 영화, 또는 여성 감독·각본가가 함께 참여한 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다."
즉, 여성 각본가만 참여한 영화는 남성만 참여한 영화와 비슷한 제작비로 더 높은 중앙값을 냈습니다. 반면, 제작비 상위 1%에서는 여성 감독 참여 영화가 한 편도 없었습니다.
후빌러는 "여성 감독이나 여성 각본가가 최소 한 명이라도 참여한 영화의 비율은 1994년 21.5%에서 2023년 29.4%로 증가했다"라며 "거의 3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역할 중 하나라도 여성이 맡은 영화는 여전히 전체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라고 전했습니다.
재정적 성과를 분석한 결과 '의아한 패턴'이 또 발견됐다고 하는데요. 여성 각본가가 각본을 쓴 영화들의 투자수익률(ROI) 역시 남성으로만 구성된 영화보다 25% 높았다고 합니다. 여성 감독·각본가가 함께 참여한 영화는 남성만 참여한 영화와 비슷한 투자수익률을 냈지만 제작비 중앙값은 약 절반이었습니다.
후빌러는 "영화 자금 조달 과정에서 위험이나 손실을 회피하려는 의사결정자들에게는 익숙한 인물이나 기존의 업무 방식이 더 안전하게 느껴질 수 있다"라며 "이는 재정적 데이터가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경우에도 오히려 현상을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진단합니다.
"사람들이 애초에 기회를 얻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할지도 모릅니다. 익숙한 인맥의 범위를 벗어나 인재를 찾는 일은 특정 개인의 결단에 의존하는 예외적인 행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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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 국민의 생명을 위해임순례 감독(왼쪽에서 두 번째)과 현빈, 강기영, 황정민 배우가 2023년 1월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상영관에서 열린 영화 <교섭> 시사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교섭>은 최악의 피랍사건으로 탈레반의 인질이 된 한국인들을 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한 외교관과 현지 국정원 요원의 작전을 그린 작품이다. ⓒ 이정민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2023년,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 한국 상업영화 35편이 개봉했습니다. 이 가운데 여성 감독 작품은 단 한 편(2.9%), 임순례 감독의 <교섭>뿐이었습니다.
2024년, 같은 기준 개봉작 37편 가운데 여성 감독 영화는 5편(13.5%)이었습니다. 김한결 <파일럿>, 박영주 <시민덕희>, 김세휘 <그녀가 죽었다>, 이언희 <대도시의 사랑법>, 김다희 <유미의 세포들 더 무비>가 그 예입니다.
2025년, 같은 기준 31편 가운데 여성 감독 영화는 총 5편. 서유민 <말할 수 없는 비밀>, 조영명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김혜영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김혜영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김도영 <만약에 우리>입니다. 전체 개봉작이 적어 비율이 조금(16.1%) 올라갔습니다.
3년간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상업영화 103편이 개봉했고 이 중 여성 감독 작품은 11편, 10.7%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연도별 수익성 분석을 토대로 계산하면,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 상업영화의 2023~2025년 평균 순제작비는 약 94억 3000만 원입니다. 같은 기간 여성 감독 작품 가운데 보도로 순제작비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 중 이 평균을 넘는 사례는 임순례 감독의 <교섭>(약 140억 원)과 김한결 감독의 <파일럿>(약 98억 원)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