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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하는 봉평보건지소에서 바라본 평창의 그림 같은 하늘입니다. ⓒ 임재우
몇 년 전엔 서울 은평구에서 방문 진료 얘기로 편지를 보내드렸는데(관련기사 :
누구에게나 필요한 돌봄... 돌봄노동의 가치를 되짚다 https://omn.kr/235gh), 지금은 강원도 평창군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 평창 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을 개최했고, 스키장들, 목장들 그리고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봉평장, 대화장이 있는 그 평창군 맞습니다. 평창군은 아주 넓어서, 우리나라 기초자치단체 중 네 번째로 크고요, 서울과 비교하면 서울의 2.4배 면적을 가지고 있어요. 평창군의 남부에는 평창읍, 미탄면, 방림면, 대화면이 있고, 북부에는 봉평면, 용평면, 진부면, 대관령면이 있습니다. 여름에는 여기도 햇살이 엄청 뜨겁고 상당히 더웠지만, 해발고도가 전체적으로 높아서 이제 저녁에는 선선해졌어요. 4월까지도 손이 시려서 아침에 출근할 때 장갑을 끼고 운전했답니다.
평창군 전체에 의사 32명, 그래도 주민들이 일궈온 '삶의 건강함'
제 일 얘기를 해보자면, 저는 주로 북부 4개 면에서 보건지소를 기반으로 일차 의료 의사로 일하고 있어요. 평창군의 인구는 3만 9800명 수준이에요. 제가 이전에 근무했던 서울 은평구의 인구가 45만 명이었으니, 인구가 많지 않죠. 거기에 면적이 넓으니, 평창군의 인구밀도는 서울의 1/560 정도 되어요. 560분의 1. 그래서 병의원이 많지 않아요. 병원은 한 곳도 없고, 주로 내과, 외과, 가정의학과 선생님들이 개원하신 의원들과 평창군 보건의료원-보건지소-보건진료소로 이어지는 공공의료 체계가 평창군의 의료를 지키고 있어요.
2023년에 평창군 전체에 (치과, 한의과 선생님들 빼고, 보건의료원과 공중보건의사 포함해서) 의사가 32명이었네요. 군 전체에 32명. 지금 소아청소년과, 정신과 선생님은 평창군 보건의료원에만 한 분씩 계시고, 안과, 피부과, 산부인과 등의 전문 과목은 평창군 내에 한 분도 안 계셔요. 서울에서는 큰 사거리에 서서 둘러보면 병의원이 20~30개는 보이고, 그러면 그 사거리에만 50~60명의 의사 선생님이 있다는 뜻인데, 이렇게 비교하면 뭔가 씁쓸한 마음이 없지는 않네요.
그런데, 이 씁쓸함이 막 안타깝고 딱하고 그런 마음인가 하면, 또 그렇지만은 않아요. 숫자상으로 부족하고, 의료 자원도 충분치 않고, 아플 때 어디로 가야 하나 싶기는 하지만, 다들 어떻게든 알아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제가 받은 느낌이에요. 지금이 1950년이라고 말씀하시고 허리 통증과 무릎 통증이 심해서 보행도 어려운 90세 할머님이, 그래도 집 앞에서 밭을 매고 계시는 것을 보면, 그분들이 꾸역꾸역 일궈온 '삶의 건강함'이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아무래도 고령의 노인분들은, 혈압이나 혈당 조절이 잘 안되거나, 허리나 무릎이 너무 아프거나, 손가락 관절염이 심하거나, 인지기능이 떨어지거나 해서, 아무튼 그냥 '건강한 삶'이라고 하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이 지역에 살면서, 이렇게 일하고, 저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아플 때는 참기도 했다가 의원에도 갔다가 보건진료소/보건지소/보건의료원도 갔다가 원주나 강릉 큰 병원에도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며 '살아가는' 모습이 있었어요.
농촌 또는 고령화 지역의 일차 의료는 이 '삶의 건강함'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80~90대 노인의 삶의 궤적이라고 하든, 60~70대 '젊은' 세대의 의료 이용 행태라고 하든, 그들의 생애주기와 삶의 모양을 이해하고 공감해야 지역사회에 필요한 변화를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당장 눈에 보이는 어려움들
물론 당장에 보이는 어려움은 있죠. 밤에 아이가 열이 나면 평창에서 갈 곳이 없어요. 인근 지자체인 원주나 강릉 또는 영월로 가야 해요. 뇌경색이나 뇌출혈이 의심되어도 외부로 가야 하고, 수술받고 집에 돌아오면 이후 며칠간 소독과 드레싱 할 곳이 마땅치 않아요.
이런 직접적인 의료 인프라 외에도 생각해야 할 일들이 많아요.
△ 공간과 시간 : 도시에서는 '차로 10분 거리'라고 하면 2~3km 정도의 가까운 곳이지만 여기서는 10분 거리면 10km 이상 떨어져 있는 곳이라서, 방문 진료 갈 때 "10분 정도 걸려요"라고 하면 이미 시골 한중간이에요.
△ 이동 수단 : 평창읍에 있는 보건의료원에서는 상당히 양질의 진료가 가능한데, 가는 차편은 있어도 진료 후에 돌아올 차편이 끊기기 때문에 의료원을 이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요.
△ 편의시설 : 가까운 민간 의원이 2층에 있다 보니, 2층 오르내리기 무서워서 단층 건물인 보건지소에 오신다는 분들도 여럿이에요.
△ 돌봄 자원 : 도시에서라면 집에서 못 나오셨을 것 같은 분들이 어쨌든 밭도 매고 실버카(보행보조차)를 끌고 보건지소까지 1시간씩 걸어오시는 '삶의 건강함'이 있어요. 하지만 돌봄 자원이 부족하다 보니 집중적인 돌봄이 필요해지는 순간에는 오히려, 도시에서라면 여러 자원을 활용해 집에 계실 수 있을 것 같은 분들도 바로 요양원으로 가시는 아이러니함도 있어요.
지역 주민의 삶을 이해하는 일차 의료의 역할
그렇다고 해서 '비었으니 메워야지' 하는 마음으로, 기계적으로 의사를 배치하거나, 고가의 의료 장비를 도입하는 것으로는 지역 주민들에게 외면 받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미 어떤 형태로든 각자의 의료 이용 행태가 존재하는데, 단지 의료기관/보건기관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주민들이 선택할 것 같지는 않거든요. 그저 수치상 '건강한 삶'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면, 차 타고 30분 부~웅 나가서 외부의 2, 3차 병원을 이용하는 것이 이 지역에서는 합리적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민간이든 공공이든, 일차 의료에는 일차 의료의 몫이 있는 것 같아요. '의료'가 지역 주민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그들의 삶에 공감하는 것이 필요해요. 지역 주민-일차 의료 사이에 심리적 거리가 줄어들고 서로 간의 신뢰가 생겨야 일차 의료가 지역 주민의 삶에 개입할 여지가 생길 거예요. 그 이후에야 의료 이용 행태에도 변화가 생기고, 건강생활 실천, 노쇠 예방, 다제 약물 관리, 노인 주의 약물 관리 등이 가능해지겠지요. 일차 의료가 그렇게 '삶의 건강함'을 응원하고, '건강한 삶'을 함께 가꾸어 나간다면, 그것이 살던 곳에서 살아가기(Aging In Place)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환자분들이 주신 옥수수와 호박, 양배추를 들고 퇴근합니다. 평창군의 슬로건처럼 모두 행복하시길! HAPPY 700 평창!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9월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