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1일 오전 경기도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93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추경예산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 경기도청
경기도가 감액 추경 과정에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아래 DMZ영화제)예산을 삭감하고, 추미애 도지사까지 나서 "방만 운영"이라고 비판하자 영화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시작은 지난 8월 추 지사가 경기도 재정위기를 선언하고 감액 추경이 발표되면서부터다. 개막 한 달을 앞두고 20% 정도의 예산이 삭감당할 상황에 놓이면서, 올해 DMZ영화제는 어수선하게 치러졌다. 행사 전에 예산 70% 이상이 지출된 상황에서 예산이 삭감될 경우 가용할 수 있는 예산이 거의 없다시피 하는 상황이 되면서 급하게 조정이 이뤄졌다. 국내외 초청 등을 취소하고, 산업 프로그램을 줄이는 등의 조처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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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감액되는 예산도 영화제가 끝나는 16일 이후에나 확정될 상황이라 최대한 운영 경비를 줄여야 했다. 개막식의 경우도 영화 상영을 하기에는 적절치 못한 공간에서 치러지면서 음향이 안정되지 못해 개막작 감독이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결국 DMZ영화제 폐막일인 지난 16일 영화단체와 영화인들이 예산 삭감에 대한 비판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성명에서 경기도가 ▲ 주권자인 도민의 대의민주주의를 파괴한 기만적 행동으로 영화제의 신뢰를 무너뜨렸고 ▲ 무책임한 삭감 통보로 스태프의 노동권을 침해했으며 ▲ 효율성의 이름으로 문화예술의 본질을 오독하고 훼손했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성명에는 한국독립영화협회와 경기필름스쿨페스티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등 단체와 <1980 사북> 박봉남 감독과 한경수 피디, <두 개의 문>·<공동정범> 등을 연출한 김일란 감독, 뉴스타파 제작 영화 <판문점> 송원근 감독, 민주인권영화제 김혜준 집행위원장 등 영화단체와 국내외 영화인 700여 명이 참여했다.
"'효율성' 내세운 경기도... 영화계 전체 역린 건드리고 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 19일 오후 광주독립영화관에서 진행된 청년영화인 만남에서 남아름 감독은 오세훈 서울시장으로 인한 서울영화센터 파행과 함께 DMZ영화제 예산 삭감 등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자리에 참석한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DMZ영화제 예산 삭감은)일종의 계약 파기 행위"로 "공공기관이 도의적·신의적 약속을 일방적으로 훼손한 것이며, 공공의 자세로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호응했다.
이를 의식한듯 추 지사는 이튿날 자신이 페이스북에 "경기도정을 인계받아 점검해보니 허술하고 방만한 살림살이가 여러 곳이 눈에 띄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화예술 지원은 당연히 필요하다"면서도 "문화예술이라는 이름이 방만한 운영의 면죄부가 돼서는 안 된다"라고 반박했다. 경기도도 예산과 관람객 수, 자체수입 등을 공개하며 '도비 의존한 고비용 운영구조'라고 밝혔다.
오동진 DMZ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악의적인 정량 평가를 기초로 보도자료를 냈다"며 "영화제 위원장으로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반박 성명을 내겠다"고 예고했다. 또한 올해 관객 통계 등을 제시하며 "그동안 무참한 심정으로 인내해 왔다. 18번째 영화제도 며칠 전 간신히 끝냈다. 지금 경기도는 다큐멘터리 영화인들 뿐만 아니라 영화계 전체의 역린을 건드리고 있다"고 불편한 심정을 내비쳤다.
DMZ영화제 개막작인 <하제>의 황윤 감독은 "경기도의 근시안적이고 천박한 행정에 분개한다"고 했고, <바람이 전하는 말>을 연출한 허욱 감독 역시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엉터리 정량 평가가 영화제 예산 삭감의 이유라니, 경기도의 문화감수성 수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이어 "무엇보다 묻지도 상의하지도 않고, 18년의 역사와 노동과 참여한 국내외 창작자의 '정성적' 성취를 '관객 숫자와 비용'으로 폄하하는 경기도의 태도가 정말 한심하다"고 덧붙였다.

▲경기도가 밝힌 지자체별 영화제 지원 규모. ⓒ 경기도청
영화계는 추미애 지사와 경기도가 제시한 영화제 예산삭감 이유가 보수정권 때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보수정권은 블랙리스트 당시 영화제 예산을 삭감하면서 예산 대비 효율성이 적다고 강조했었다.
또한 경기도가 서울시와 인천시의 지원을 비교했으나,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속적인 영화제 예산 삭감으로 영화계의 반감이 큰 상태다. 정작 부산영화제 지원만 60억 넘는 부산시나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40억 가까운 예산을 지원하는 충북도와 제천시 등은 비교 대상에 넣지 않았다.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경기도가 현실과 맞지 않는 자료들만 냈다"고 지적했다.
2009년 출범한 DMZ다큐영화제는 경기도가 주도해 만든 영화제로 처음에는 독립영화인들이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기조로 척박한 독립다큐의 성장을 이끌어 내면서 국내 대표 다큐영화제가 됐다.
그간 강정마을 문제를 다룬 <잼 다큐 강정>이나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공동정범>, 다큐멘터리 최대 흥행작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1980년 사북항쟁을 재조명한 <1980 사북> 등 정치 사회적 문제를 비판하고 사회적 약자를 다룬 작품들이 주목받았고 국내 다큐멘터리 역량을 끌어올리는 게 기여했다.

▲국회의원 시절인 2024년 9월 국회에서 열린 영화제 정책 토론회에 참석해 영화인들과 기념촬영을 한 추미애 경기도지사 ⓒ 강유정 의원실 제공
추 지사가 국회의원 시절인 2024년 9월 윤석열 정권의 영화제 삭감으로 인해 열린 국회 토론회에 공동주최자로 참석해 영화인들의 어려움을 끝까지 경청한 적이 있어 영화계의 실망감이 더욱 깊은 상태다.
당시 토론회의 공동주최자 중 한 명이었던 강유정 의원(현 청와대 대변인)은 행사 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윤석열 정부 들어 영화제 예산은 반토막이 되었고, 예산 삭감은 영화 생태계를 파괴하고 국민들의 문화 향유권을 빼앗는다"며 지금이라도 정책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윤석열 정권의 예산 삭감 행태를 비판하면서 자리를 지켜준 추미애 의원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