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이소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주 52시간제 예외에 대한 입장을 묻자, 이 후보자는 "형사처벌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주 52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노동을 하는 이유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의 범위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 국회방송
"대한민국 국민이 주 52시간보다 훨씬 더 길게 근무하면서 가혹한 노동을 하는 현실과 법의 괴리, 실제로 현장에서 주 52시간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했을 때 이 엄격한 근로시간제도를 다양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난 15일 이소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한 말이다. 이날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주 52시간제 예외에 대한 입장을 묻자, 이 후보자는 "형사처벌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주 52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노동을 하는 이유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의 범위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답했다.
주 52시간제의 사각지대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으니, 아예 제도를 유연화하고 규제를 풀자는 주장이다. 그런데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참담한 현실을 직시했다면,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를 확대해 사각지대를 메우는 것이 상식적인 접근이다.
'공짜 야근' 주범 포괄임금제 금지 법안에는 "일부 우려 있다" 선 그어
주 52시간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을 만큼 엄격하다는 주장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우리 노동 현장에는 이미 '특별연장근로' 제도가 안착해 있다. 노동자의 동의와 고용노동부 인가를 거치면 기존 연장근로에 12시간을 합법적으로 추가할 수 있다. 노동부의 인가율은 90%를 웃돈다. 사실상 특별연장근로가 필요한 웬만한 업종에서는 이미 주 52시간 제도를 넘어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진짜 문제는 노동시간 상한선을 무력화하는 꼼수들이 현장에 만연하다는 점이다. 일한 만큼 수당을 주지 않고 미리 정해진 연장근로수당만 쥐여주는 '포괄임금제'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후보자는 정작 포괄임금제를 금지하는 법안에 대해 "일부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며 선을 그었다. 사각지대 노동자의 가혹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장시간 '공짜 야근'을 강요하는 핵심 기제는 묵인하겠다는 모순된 태도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특수고용직 늘어난 원인이 52시간제 때문?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의 원인을 진단하는 대목 또한 문제였다. 이 후보자는 주 52시간제의 문턱이 너무 높아 기업들이 노동자를 특수고용직이나 위탁 계약, 프리랜서로 밀어낸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기업들이 이른바 '가짜 3.3%' 노동자를 양산하는 진짜 이유는 단지 연장근로를 몇 시간 더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4대 보험, 퇴직금, 연차수당 지급과 부당해고 제한 등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로서 져야 할 모든 금전적·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이 크기도 하다.
규제를 완화해 준다고 기업들이 플랫폼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껴안을 리 만무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무분별한 규제 완화는 사각지대 구제가 아니라, 그나마 법의 보호를 받던 노동자들마저 장시간 노동의 늪으로 밀어 넣는 하향 평준화를 부를까 우려스럽다.
이 후보자는 또 "10명, 20명의 벤처기업 스타팅 멤버가 밤을 새우면서 제품을 개발하는데 그게 다 대표들을 잠재적인 범법자로 만든다"면서 "주 52시간을 넘기면 징역 2년 이하의 형사처벌이 가해지기 때문"이라고도 항변했다. 이 역시 다소 생뚱맞은 비유라고 생각한다.
상장 시 막대한 경제적 보상을 나누는 벤처·스타트업 공동 창업자들의 자발적 철야와, 묵묵히 정해진 임금을 받는 일반 노동자의 강제 야근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제도는 성공을 좇는 예외적인 소수 창업자가 아니라, 당장 과로로 건강과 일상을 위협받는 평범한 절대다수 노동자를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마땅하다.
아울러 후보자는 최대 징역 2년의 형사처벌을 운운했지만, 현행 제도가 정말 사용자에게 그토록 가혹하게 작동하는지는 의문이다. 주 52시간제 위반만으로 사용자가 실형을 산 사례는 흔치 않다.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보호라는 제도의 본래 목적을 생각해야 한다.
이 후보자가 자신이 이끌어야 할 핵심 정책 대상인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처한 구조적 열위를 잘 이해하고 있는지 우려스럽다. 중소벤처기업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의 80% 이상이 중소기업에 종사하고 있다. 주 52시간제가 무력화될 경우, 노조의 보호막이 얇고 교섭력이 취약한 이들이야말로 원청 대기업의 무리한 납기 단축과 단가 후려치기의 하중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존재 이유는 명확하다. 불공정 거래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과로의 공포 없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가꾸는 것이다. 현실이 가혹하다는 핑계로 제도의 기준선을 허물고 노동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논리로는 중소기업도,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지킬 수 없다. 이 후보자의 위험한 규제 완화 주장은 중소기업을 살리는 혁신이 아니라, 노동 현장을 '과로 사회'로 내모는 참담한 퇴행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