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여독이 채 풀리기도 전에 대구에서 딸아이의 집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 뒤로 몸은 피곤함으로 가득 찼지만, 이상하게도 기차가 주는 특유의 넉넉하고 덜컹거리는 여정은 마음을 다정하게 보듬어주었다. 이럴 때 내 곁을 지켜주는 고마운 친구가 있다. 휴대폰 속 '밀리의 서재' 앱이다. 평소 같으면 이런저런 에세이를 적적하게 넘겼겠지만, 그날따라 소설의 긴 서사에 몰입하고 싶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투명한 나선>을 선택했다.
책을 펼치기 전 화면 아래 달린 댓글들을 읽다가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작가를 향한 애도의 말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최근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 이 책이 그분 인생의 마지막 유작이 되는 건가 싶어 황급히 검색해 보았다. 밀리의 서재에 이 책이 올라온 날짜는 7월 22일이었고, 그의 부고가 온라인상에 올라온 것은 바로 다음 날인 7월 23일이었다. 세상에. 오랫동안 풍성한 미스터리의 세계를 선사했던 한 거장의 마지막 문장들을 읽게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말 거는 소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투명한 나선》 표지 ⓒ 예스24
서울역에 내렸다. 늘 다음 교통편을 타기 위해 허겁지겁 계단을 오르내리던 전철역의 풍경이 아니었다. 한낮에 도착한 서울역은 생경할 정도로 여유로웠다. 나 역시 급할 것 없는 걸음으로 역 근처 테라스가 있는 적당한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이국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혼자 먹는 점심이었지만 조금도 외롭지 않았다. 내 손안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소설 <투명한 나선>이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점심을 마치고는 근처 아웃렛으로 향했다. 쇼핑이라니, 도대체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각인지 모르겠다. 평생을 매여 살던 직장에서 퇴직하고 난 뒤로는 옷이나 신발을 사러 쇼핑몰을 찾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딱히 갈 일도 없었고, 무언가를 사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희미해진 탓이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길에서 내 신발 밑창이 낡을 대로 낡아버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편의 신발도 확인해 보니 그의 밑창 역시 비슷하게 달아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사서 함께 먼 길을 걸어왔으니, 둘 다 신발을 바꾸어야 할 때가 동시에 찾아온 것이었다.
매장을 둘러보며 남편과 함께 신을 비슷한 종류의 워킹화를 구매했다. 그리고도 나는 한참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오디오북 속 <투명한 나선>의 이야기가 나를 강력하게 끌어당기며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은 내가 딸아이의 아파트 입구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마지막 문장을 끝맺었다.
피해자인 우에쓰지 료타의 동거녀 시마우치 소노카가 범인이 아니었고, 그녀를 도운 마쓰나가 나에 역시 범인이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사람의 손에 의해 비극이 완결되었다니. 서사의 마지막 반전을 마주하며 묘한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날 밤, 기차 여정의 피로와 어김없이 찾아온 감기 기운 탓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쓰러지듯 잠에 빠져들었다. 책의 잔상을 품은 채로.
이번에 읽은 <투명한 나선>은 작가의 대표작인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열 번째 이야기다. 이전까지 이성과 논리, 냉철한 과학적 트릭으로 사건을 해결하던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 마나부 교수의 베일에 싸인 유년 시절과 출생의 비밀이 처음으로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뒤 내 마음에 남은 것은 강렬한 트릭이나 소름 돋는 반전이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잔잔하게 흐르는 서사 속에서 이상하게도 우리의 1960~70년대 잔상이 자꾸만 겹쳐 보였다.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했지만 현실의 높은 벽에 막혀 결실을 보지 못하고, 헤어진 뒤 뒤늦게 아이를 가졌음을 알게 되며, 혼외 자식을 낳았으나 스스로 키울 능력이 없어 결국 보육원에 맡겨야 했던 비극적인 시절의 이야기. 그리고 먼 훗날 운명처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 눈물겨운 스토리.
과거의 비극과 현재의 사건이 얽혀 들어가는 모습은 굳이 천재 물리학자가 개입하지 않아도 될법한 인과관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직선으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삶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으리라.
소설의 제목이 왜 하필 '투명한 나선'일까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투명하다'는 것은 모든 것이 숨김없이 보이고 드러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숨김없는 진실일까. 어쩌면 누군가의 거짓말을 투명하게 꿰뚫어 보면서도, 그 거짓말 뒤에 숨은 애틋한 마음이 진실이기를 바라는 인간적인 묵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선'은 같은 자리를 돌고 도는 듯하지만 조금씩 깊어지는 형태를 뜻한다. 사람들의 삶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어지고, 까마득히 사라진 줄 알았던 어느 옛 시간이 현재의 삶 위로 다시 투시되어 겹친다. 혈연으로 묶여 있어도 서로에게 상처만 주며 가족이 되지 못하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단 한 방울의 피도 섞이지 않았음에도 서로를 지키고 보듬어 안으며 진짜 가족이 되어주는 이들이 있다. DNA라는 생물학적 나선 구조를 넘어,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의 나선은 그렇게 투명하고도 깊게 소통한다.
사실 나는 처음에 이 작가의 이름을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유명한 일본 미스터리 작가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주 오래전, 밤을 새워가며 참 따뜻하고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쓴 바로 그 작가였다. 치밀한 미스터리 구조 속에서도 사람을 향한 다정한 온기를 잃지 않았던 그의 문장들이 어디서 왔는지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작가가 세상을 떠나고 두 달이 지난 시점, 나는 기차 안과 낯선 길 위에서 그의 마지막 이야기를 읽었다. 그리고 그 서사 위로 내가 살아온 세월과, 우리 시대가 지나온 애잔한 풍경들을 함께 겹쳐 보았다. 신발 밑창이 낡아진 줄도 모르고 쉼 없이 걸어왔던 나 자신의 시간과 남편의 걸음까지도.
나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소설은 끝이 났다. 하지만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다정한 나선을 그려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낡은 워킹화를 새로 고쳐 매고 다시 걸어 나갈 나의 일상에서 여전히 투명하게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