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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E와 선배 P와는 50년 지기다. 여고 시절에, 교회에서 만났던 사이였는데 대학 졸업 이후에는 소통하지 못했다. 각자 삶의 현장에서 여념 없었다가 문득 서로를 그리워하게 됐다. 어찌어찌 연락이 닿았으나 하필 코로나가 극성이던 때였다. 그렇지만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어서 부랴부랴 만났다. 거리두기를 하던 때였지만 마스크를 쓴 채로 해후했다.

선배는 송도에, 후배는 동탄에 산다. 그래서 인천 계양구에 있는 우리 집이 중간이었다. 긴 세월을 다 흘려보낸 보낸 후에 만났던 감격은 짜릿할 정도였다. 외식도 맘대로 못 하던 때였고 카페 출입에도 제한이 있었다. 어디 갈 곳이 마당치 않아 우리 집에서 만났다. 선배는 팥 찰밥에 곰국을 곁들인 식사를 챙겨왔고 후배는 커피 드리퍼까지 들고 왔다. 몇십 년 만이었지만 마치 어제 만났던 것처럼 우리는 임의롭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서로의 눈빛만 봐도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종종 보자며 아쉽게 헤어졌고 매년 한 번씩 깜짝 만남을 하고 있다. 음악 교사로 명예 퇴임한 후배 E는 음악회나 전시회 관람에 진심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광화문이나 예술의 전당에서 만나곤 했다.

그림을 감상하는 뒷 모습 자비 솔라 그림전을 감상했다.
▲그림을 감상하는 뒷 모습자비 솔라 그림전을 감상했다. ⓒ 차상순

이번에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어느 한 해_완벽한 날들: One Year Scenes in Time>이라는 주제로 자비 솔라(Xevi Solà)의 그림 전시회가 개최중이었다(10월 17일까지). 예약 없이 현장에서 입장권을 구할 수 있었다.

여행은 바다나 산으로만 가는 게 아니었다. 음악회나 전람회에 가는 것도 멋진 나들이가 될 수 있다. 관람하다 보니 한 예술가의 정신세계로 조금씩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묘한 희열을 느꼈다. 작품을 위해 화가가 궁리했을 고뇌가 고스란히 그림 속에 투영되어 있었다.

자비 솔라 작품 예술의 전당에서 그림 전시회를 관람했다.
▲자비 솔라 작품예술의 전당에서 그림 전시회를 관람했다. ⓒ 차상순

색다른 그림을 감상하며 지난 여름의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테마별 제목이 초가을에 나들이를 나선 우리 마음을 설레게 했다. 테마 제목이 사뭇 시적이고 몽환적이었다. 예를 들면, 친밀한 타인들(Intimate Strangers)/ 말하지 않는 얼굴들(Silent Face)/ 기묘한 아름다움(Strange Beauty)/ 완벽하지 않은 날들(Imperfect Days)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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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으로 한 해를 기억해야 하는가? 솔라의 회화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솔라는 그림에서 인물들의 사연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 표정 앞에서 우리는, 저 사람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을까?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 대답 없는 침묵 속에서, 우리는 오래 머물렀다.

그의 강렬한 색채와 흔들림 없는 응시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 너머에서, 우리는 미묘한 불협을 마주한다. 그것이 바로 기묘한 아름다움이었다. 또한 친밀한 타인이란 말은 모순적이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끝내 다 알 수 없다는 것과 그 작은 거리야말로 누군가를 오래 바라보게 만든다.

솔라의 그림은 전시장에서 후다닥 보고 말 일이 아니었다. 생각하게 했으며 멈춰 서게 했고 아련한 그리움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그림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틈날 때마다 들여다보며 감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비 솔라 그림 전시회 몽환적이고 시적인 테마로 전시회가 진행 중이었다.
▲자비 솔라 그림 전시회몽환적이고 시적인 테마로 전시회가 진행 중이었다. ⓒ 차상순

그런 생각에 빠져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내 뒷모습을 후배가 찍어 줬다. '그림 감상하는 여성의 뒷모습'도 솔라 그림 전시 앞에서는 하나의 예술이 되었다. 그 기묘하고 어색한 그림들 속에서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나의 뒷모습이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인생의 황혼 녘에 예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뒷모습은 솔라의 예술혼과 닮아 있었다.

후배는 문학과 미술, 음악은 한 덩어리라며 한사코 덕수궁 국립 현대 미술관에 가보라며 등을 떠밀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안내 팸플릿을 카톡으로 전송해 주었다. 그래서 가을이 가기 전, 덕수궁에 다녀오고 싶다.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것도 없다. 어느 쓸쓸한 날, 나는 덕수궁 돌담길을 걷거나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있을 것 같다. 여름에는 더위를 피할 생각으로 여념 없었다면 가을에는 예술을 찾게 되는 게 우리네 삶인가 보다. 가을은 '예술의 전당'으로 발길을 향하게 되는 계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예술의전당#자비솔라#보테르#그림전시회#기묘한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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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차상순 (chalim) 내방

중등 영어 교사로 정년 퇴임 함. 사고로 중증 환자가 된 90년생 아들을 돌보는 간병 일지와 소소한 일상, 디카시, 트롯 Vlog, 엔젤넘버시,등의 글을 '브런치'에 올리고 있고 튜브에 AI 노래 창작 영상도 탑재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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