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연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 위원장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활동 설명회'에서 발표하고 있는 모습. ⓒ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은 규제기관이 아니다. 투자자다."
이연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책위) 위원장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활동 설명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국민연금이 2018년 스튜어드십코드(주주권 행사 원칙)를 도입한 지 8년 만에 투자 대상 기업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105개 기업의 임원 및 실무자 200여 명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성과 없는 보수 한도 상향 안 돼"… '소극적 주주활동' 오해 해명도
이 위원장이 이끄는 수책위는 국민연금이 주식을 보유 중인 기업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주주총회 때마다 어떤 기업에 어떤 내용의 의결권을 행사할지를 결정하는 핵심 기구다. 이 위원장의 발언에 기업들의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 국민연금은 2025년 말 기준으로 국내 269개 기업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자본시장의 '큰 손'이다.
이 위원장은 "(국민연금은) 어지간한 우량 기업에 다 투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국민연금을 '투자자'라며 설명회에 참석한 기업 관계자들에게 "여러분의 회사가 수익을 내고, 주주에게 배당을 많이 주셔야 저희 국민연금이 더 탄탄해진다"라고도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이날 국민연금이 기업과의 대화에서 실제로 들여다보는 6가지 중점 관리 사항도 소개했다. ▲합리적인 배당 정책을 수립하고 있는지 ▲임원 보수 한도가 경영 성과와 연계돼 있는지 ▲횡령·배임·부당지원·사익편취 등 법령 위반 우려가 있는지 ▲특정 안건에 지속적으로 반대표를 던지고 있는데도 개선되지 않는 경우는 없는지 ▲기후변화·산업안전 위험 관리 체계가 갖춰져 있는지 등이다.
이 위원장은 그중 임원 보수 한도와 관련해 "임원들의 성과 보수가 많은 것 자체가 포인트가 아니다, 경영 성과와 제대로 연계되어 있는지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회사가 적자를 내거나 임원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않았는데도 보수 한도를 올리는 식의 안건은 용납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사 선임 관련, 국민연금이 특정 인물에 계속 반대표를 던지는 배경과 관련해서도 "사람이 포인트가 아니라, 그 이사가 과거 이사회 의사결정 과정에서 어떤 표를 던졌는지, 기업 가치를 훼손한 의결에 참여한 이력이 있는지가 판단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국민연금이 왜 더 적극적으로 주주활동을 하지 않는지'와 관련한 사회적 시선도 해명했다. 그는 "저희가 다루는 건 기업들의 민감한 정보들,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들이라 특정 기업의 개별 사안을 공개하는 것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라며 비공개 원칙을 강조했다. 활동 과정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다 보니 소극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 위원장은 중점관리 대상 기업과의 대화가 원칙상 2년(긴급한 사안은 1년) 안에 마무리 돼야 하는데도 실제로는 이 기한을 넘기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는 "정책을 마련하고, 공개하고, 준수하고 이 세 가지를 본다. 그중 정책은 마련했는데 공개는 하지 않는 등 3가지 중 2가지만 (개선이) 이뤄졌다면, 이걸 고쳐졌다고 할 수도 없고 위로 올리기(한 단계 더 적극적인 관여로 나아가기)도 어렵다"라고 속사정을 밝혔다.
"자사주 보유·집중투표 표 배분은?"… 상법 개정 관련 질문 나오기도
설명회가 끝난 뒤 질의응답에서는 세 차례에 걸친 상법 개정 후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기준을 묻는 실무적 질문들이 쏟아졌다. 특히 자사주 소각이 원칙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기업이 예외적으로 자사주를 보유·처분하려 할 때, 국민연금이 어떤 의결권을 행사할지와 관련해 관심이 집중됐다.
국민연금 쪽은 그간의 반대 사례를 들어 크게 두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자사주 보유·처분 관련 정관 변경이 (소수 주주 동의 없이)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만으로 통과될 수 있는 구조일 경우 반대표를 던져왔다"라고 강조했다. 대주주 독단으로 자사주를 활용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다.
자사주를 취득할 당시와의 일관성도 핵심으로 꼽았다. 과거 자사주를 '주가 안정'을 이유로 사들였는데 이후 임직원 성과급 지급 등 다른 용도로 처분한다면 주주와의 약속을 어겼다고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에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되는 가운데, 이사 자리를 두고 경합이 벌어질 때 국민연금이 어떻게 표를 나눌 것인지 관련 질문도 나왔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결격 사유가 있는 후보를 우선 배제하고 이사회 활동 현황과 주주 제안의 타당성 등을 종합 고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