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향아파트 입주민들로 이뤄진 단체 ‘옥향마실가자’는 지난 6월부터 ‘옥향 기후위기 대응, 마을 톺아보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 월간 옥이네
"지구가 끓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서 직접 확인해 보자고요."
8월 22일,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죽향리 주은옥향아파트 관리소 앞. 오전 9시 30분이 되자 입주민 14명이 모였다. 숲해설가인 황재현(72)씨의 안내를 따라 다 함께 단지를 한 바퀴 돈다. 한 주민은 적외선 온도계를 들고 주차장 아스팔트와 화단, 놀이터, 건물 외벽 등의 온도를 재어 기록했다. 참여자들은 황재현씨의 설명에 귀 기울이며 온도를 비교했다.
'아파트'라 하면 흔히 삭막한 이웃 간의 관계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곳의 풍경은 고정관념을 뒤엎는다. 옥향아파트 입주민들로 이뤄진 단체 '옥향마실가자'는 지난 6월부터 '옥향 기후위기 대응, 마을 톺아보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옥천군 마을공동체 활동지원사업 중 하나로 마련된 프로젝트다. 입주민들은 아파트 공간 속 기후위기 상황을 확인하고, 이에 대응할 방법을 모색한다. 옥향마실가자의 시작과 그 의미를 들여다봤다.
공동체가 해결하는 '우리 아파트 안 기후위기'
옥향마실가자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출발했다. 이안재(64) 회장과 동 대표 세 명은 매달 회의를 여는데, 대화를 거듭하며 아파트에서 체감하는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여름이면 고층 집 안에 열기가 쌓여 좀처럼 빠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복도식 구조로 지어진 일부 동은 햇빛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었다.
"기온이 오르면서 고층에 사는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어요. 복도식으로 지어진 동도 마찬가지이고요. 겨울이 되면 복도 위 얼음이 오랫동안 녹지 않아 특히 위험합니다. 아파트에서 기후위기로 빚어지는 문제를 공동체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안재 회장)
입주민들이 단지 안 생태환경을 살펴보면서 온도를 측정한 이유다. 이날 입주민들은 아스팔트보다 흙이 있는 곳이, 맨땅보다 잡초가 무성한 곳이 한층 시원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토대로 다음 모임 때에는 땅을 덮듯이 자라고 경관에도 좋은 금잔디와 맹문동을 심는다.
한바탕 마실을 다녀온 뒤, 황재현 숲해설가의 생태 강연이 이어졌다. 주제는 옥천에서 발견되는 생태교란 식물이었다. 그는 읍내 곳곳에 퍼져있는 돼지풀, 도깨비가지, 가시박 등을 소개했다. 옥향아파트에서 26년간 거주한 조행님(62)씨는 "옥천에 이렇게 많은 생태교란 식물이 있는지 몰랐다"라며 "활동을 통해 지구온난화에 처한 현실과 다양한 생물을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옥향마실가자'가 등장하기까지

▲입주민들이 아파트 곳곳을 돌며 온도를 측정해 비교하고 있다. ⓒ 월간 옥이네
옥향아파트는 예전부터 주민들의 결속력이 남달랐다. 그 중심에는 주은옥향부녀회가 있었다. 입주 초기 부녀회원들은 함께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하며 주민 화합에 앞장섰다. 구읍 벚꽃축제와 젓갈 축제 등 지역 행사에 손을 보탰고, 마성산 해맞이 산행과 지용제 생가 기념행사에서는 음식 봉사자로 몸소 나섰다.
입주민들은 힘을 합쳐 단지 내 청소년 공부방도 마련했다. 부녀회원들이 2인 1조로 돌아가며 공부방 운영을 맡았다. 이웃의 자녀들을 다 함께 돌본 것이다. 그러나 공부방은 2018년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시간이 흐른 만큼 부녀회의 활동도 점차 뜸해졌다. 이런 현실이 안타까웠던 입주민들은 교류가 활발했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고자 했다. 올해 초 옥천마실가자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다.
"사람들이 이런 활동에 모이려면 공동체 의식이 필요해요. 옥향아파트 주민들은 예전부터 공동체 활동에 익숙했기 때문에 지금도 곧장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사회가 변한 만큼 과거와 똑같을 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공동체 활동을 이어가다 보면 주민 사이가 조금 더 끈끈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안재 회장)
이번 활동을 계기로 주민들은 옥향아파트에 남아 있는 공동체 의식을 확인했다. 이곳에서 21년째 살고 있는 박해영(64)씨는 "아파트를 아끼면서 어떻게 하면 더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라며 "살기 좋은 아파트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주민들이 애써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공동체 활동의 터전이 되다

▲입주민들이 아파트 곳곳을 돌며 온도를 측정해 비교하고 있다. ⓒ 월간 옥이네
옥향마실가자가 벌인 모든 활동은 옥천군이 2022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마을공동체지원사업 덕분에 가능했다. 마을공동체지원사업은 주민들의 손으로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체 의식을 다지길 바라며 시작됐다.
옥천군 주민 5명 이상이 속한 비영리 단체가 지원 대상이다. 조건에 부합하는 단체가 신청하면 15명 이내로 이뤄진 위원회에서 심사를 거친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면 단위 자치 기구가 아닌 공동 주택을 기반으로 결성된 단체가 선정됐다. 2025년에 뽑힌 12곳 가운데 성암3리 마을회(마암현대아파트) 한 곳이 아파트 공동체였다. 전체의 8.3%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올해는 최종 선발된 8곳 가운데 절반인 4곳으로 대폭 늘었다. ▲가화3리 마을회(가화현대아파트) ▲마암2리 마을회(금호어울림아파트) ▲문정5리마을(문정주공아파트 2단지) ▲옥향마실가자(주은옥향아파트)가 마을 공동체 활동을 지원받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이 마을공동체 활동의 새로운 주체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공동주택에서 두드러지는 여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옥천읍 내 아파트가 공동체의 장으로 변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다만 옥천군이 아파트 공동체를 지원하는 것을 의도한 건 아니다. 옥천군 마을공동체지원센터는 "아파트를 꼭 집어 지원사업에 포함한 것은 아니다"라며 "기존 방식대로 옥천군 마을공동체 활성화 위원회에서 심사를 통해 선정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올해 선정 결과는 앞으로 아파트가 마을공동체 활동의 터전이 될 수 있을지를 기대하게 만든다. 옥향마실가자를 이끄는 이안재 회장은 "힘이 닿는 데까지 옥향아파트에서 공동체 활동을 이어가겠다"라고 말했다.

▲옥향마실가자에서 강연자로 나선 숲해설가 황재현 씨가 생태교란종 단풍돼지풀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 월간 옥이네
월간 옥이네 통권 111호(2026년 9월호)
글·사진 백솔빈 디자인 유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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