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열린 원자력안전위원회(아래 원안위) 회의에는 세 가지 안건이 올라왔다. 탈핵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세 번째 안건인 고리 3·4호기와 한빛 1·2호기의 사고관리계획서 승인 및 운영변경허가안에 쏠려 있었다. 사고관리계획서 승인이 곧 계속운전 허가를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후 핵발전소의 중대사고 대응능력과 계속운전 안전성을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칠 중요한 안건이었기 때문이다.
원안위 회의는 미리 방청을 신청하면 참관할 수 있는데(현장 방청 또는 온라인 방청 가능), 필자는 현장 방청을 신청해 회의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회의가 시작되자 첫 번째 안건부터 발길이 멈췄다.
㈜오르비텍 서울사업소가 보관하던 액체 상태의 플루토늄 동위원소, 곧 질산플루토늄을 울산 분석센터로 옮겨 소지하도록 허가하는 안건이었다. 한 민간기업의 핵연료물질 이관을 위한 행정절차처럼 보였지만, 심의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는 결코 작지 않았다.
큰 참사는 작은 관리 공백에서 시작
원안위 박종운 위원은 심의에 필요한 기초자료부터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오르비텍이 어떤 회사인지, 회사의 이력과 규모, 전체 직원 수는 얼마인지, 방사성물질 취급 면허를 가진 직원은 몇 명이며 어떤 경험을 갖췄는지 등 기본적인 설명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관 대상인 플루토늄에 관한 정보도 부족했다. 어떤 종류의 용기에 보관돼 있는지, 용기의 고유번호는 무엇인지, 방사성물질의 생성과 이동, 보관 이력을 추적하는 핵심 정보인 태그에 관한 설명도 없었다. 서울에서 울산으로 옮기겠다는 플루토늄이 언제 생성됐고 그동안 어떻게 관리됐는지도 확인하기 어려웠다. 박 위원은 이런 자료로는 사업자의 관리 능력과 이관의 안전성을 판단하기 어려워 내용을 보완해서 다시 심의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플루토늄을 옮기고 관리할 오르비텍의 책임자는 이날 회의장에 나오지 않아(이유에 대해 따로 답변은 없었다, 그러나 병원 방사선 피폭 같은 경우 관계자가 회의에 참여해 처분을 듣는 경우가 많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과 원안위 측이 대신 답했다.
이들은 이관 대상 플루토늄의 질량이 매우 작아 법에서 정한 시설검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에는 원안위원장과 사무처 직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원장 박종운, 진재용 같은 비상임 위원 등이 참여한다. 같은 원안위 위원이라도 다른 의견이 있고, 이에 대해 표결로 안전을 심의한다).
물질의 양과 시설 등급에 따라 서면 검사와 주기적인 시설검사 등 차등규제를 적용하므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제출된 안건 자료에서도 배기 중 방사성물질 농도는 배출관리기준을 충족하고, 저장함에서 0.5m 떨어진 지점의 종사자 예상피폭선량은 연간 1.875밀리시버트로 선량한도보다 낮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법적 기준을 넘지 않는다는 말과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다는 말은 같지 않다. 박 위원이 물은 것은 검사 주기가 법에 맞느냐는 것만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울산까지 이동하는 플루토늄을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할 수 있는지, 문제가 발생하면 어느 용기의 어떤 물질인지 즉시 확인할 수 있는지,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를 물었다. 규제기관은 이력과 책임에 관한 질문에 물질의 양과 법적 검사 대상 여부로 답했다.
서면 보고에 크게 의존할수록 서류는 더 구체적이고 완전해야 한다. 플루토늄의 양이 적다는 사실은 이력정보가 없어도 된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추풍령 면사무소 앞에서순례단은 걷는 도중 도청, 시청, 군청 등 지자체를 반드시 들린다. 중앙 정부에 맞서 지역민을 지키는 행정을 하라는 요구를 하기 위해서다.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우리는 방사성물질의 작은 관리 실패가 반복되는 모습을 이미 보아왔다. 지난 2월 의료기관에서 치료용 선형가속기를 해체하다 방사성폐기물이 분실됐고,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는 방사성폐기물의 반출과 처분 이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사실이 드러났다(관련기사 :
병원 방치된 장비 건드렸다가 사망... 한국도 위험하다). 지난 2025년 6월, 원안위가 공개한 '한수원의 모든 원전을 대상으로 자체처분 실태' 조사에 따르면, 원전 방사선 관리구역에서 사용한 물품이 정해진 승인 절차 없이 처분된 사례도 확인됐다(
관련기사 보기).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방사성물질의 사용이 끝난 뒤 해체·이관·폐기하는 단계에서 관리가 느슨해졌다는 것이다. 책임이 여러 기관과 외주업체로 나뉘고, 물질의 양이나 선량이 낮다는 이유로 관리의 긴장도 함께 낮아진다.
1987년 브라질 고이아니아 사고도 거대한 원자로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폐쇄된 병원에 방치된 세슘-137 치료 장비를 고철 수집상이 분해하면서 방사성물질이 퍼졌고, 수백 명이 오염되거나 피폭됐으며 4명이 숨졌다. 관리 책임의 공백과 장비 방치, 방사성물질에 대한 정보 부족이 참사를 만들었다.
큰 참사의 시작이 언제나 큰 폭발음인 것은 아니다. 빠진 기록 하나, 확인하지 않은 용기 하나, 책임자의 빈자리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양이 적다", "선량이 낮다", "지금까지 사고가 없었다"는 말이 관리 실패를 가리는 순간 작은 구멍은 더 큰 위험의 통로가 된다.
이러한 태도는 핵발전소 주변 주민의 건강 문제에서도 되풀이된다. 고리·월성·한빛·한울 주변에 살다 갑상선암이 발병한 주민 618명과 가족 등 2800여 명은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손해배상 공동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과 2심 법원은 핵발전소의 방사성물질 배출이 주민들의 암을 유발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2023년 8월 2심 판결). 버젓이 정부가 국가 예산을 들여서 나온 역학조사 결과(원전지역 주민 여성의 경우 상대위험도 2.5배)가 있음에도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현재 이 소송은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국가는 위험에 놓인 시민을 안심시켜야
울진에서 영덕과 포항을 거쳐 세종으로 향한 탈핵 순례단은 길에서 이런 체념을 만났다. 주민을 한두 명씩 만났을 때는 핵발전소의 위험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찬성하는 사람의 큰 목소리에 눌려 침묵했다. 지역에서 이웃과 척지고 살 수 없고, 반대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이 입을 막았다고 한다.
"후세는 다 떠나고 없다"는 말은 주민이 위험을 모르기 때문에 나온 말이 아니다. 국가가 주민들의 반대와 경고를 반복해서 무시한 끝에 남긴 체념에 가깝다. 2015년 영덕 주민투표에서 확인된 반대 의사마저 외면한 채 신규핵발전소 계획을 다시 추진한다면, 주민들은 투표하고 말하고 싸워도 국가가 듣지 않는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이것 역시 사회적 안전망의 붕괴다.

▲순례단에게 도시락을 싸 온 시민영광 순례팀에게 도시락을 대접한 시민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오르비텍의 플루토늄 이력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에 "양이 적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답하는 태도와, 핵발전소 주변 주민의 질병을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태도는 어쩐지 닮아 있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산업과 기업이 더 빨리 사업을 추진하도록 규제의 문턱을 낮추는 데 있지 않다. 위험을 먼저 떠안은 노동자와 지역주민, 정보와 권한이 부족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하는 것이 국가의 본분이다.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손을 놓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하기 때문에 더 조사하고 더 투명하게 공개하며 더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
원안위는 핵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 아니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나 기업의 이해관계와 거리를 두고 시민의 안전을 독립적으로 판단하라고 만든 규제기관이다. "기준치 이내", "영향은 미미하다",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말로 심의를 끝낼 것이 아니라, 왜 자료가 빠졌는지, 물질의 이력을 끝까지 추적할 수 있는지, 누가 책임지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안전은 큰 사고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결과가 아니다. 작은 이상을 놓치지 않는 태도이고, 기록 하나와 절차 하나를 끝까지 확인하는 책임이다. 작은 위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나라에서 참사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업을 안심시키는 국가가 아니라 위험에 놓인 시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국가다.

▲걷는 동안 가을이 왔다묵묵히 13일째 걷고 있는 순례단 ⓒ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
고리, 영광, 울진, 세종에서 출발한 순례단은 세계 최대 핵발전소 밀집국가에 더 이상 신규핵발전소를 짓지 말라며 걷고 있다. 하루 20km 남짓을 걸으며 한 걸음마다 그 요구를 담는다. 구간마다 가까운 곳의 시민들이 그 걸음에 합류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이 화두였을 때는 여야를 막론하고 핵발전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핵발전소의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고 기후위기로 재난은 더 커졌는데,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이제 이틀 뒤면 네 갈래의 길이 청와대 앞에서 만난다. 정부는 수많은 발걸음에 담긴 뜻을 헤아려야 한다. 신규 핵발전소에 대한 책임을 토론회나 공론화라는 이름으로 시민에게 떠넘길 것이 아니라, 위험을 먼저 감당해온 주민의 목소리를 듣고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 산업과 기업의 요구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본분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탈핵신문에도 실립니다.
- 글쓴이 최경숙 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