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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강릉의 한 어항에 불이 하나둘 켜진다. 어민들은 어구를 챙겨 배에 오른다. 오늘 바다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삶의 터전인 동해가 예전과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온이 변하면서 잡히는 어종이 달라졌고 어획량도 갈수록 줄고 있다. 한때 흔했던 다시마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미역도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 어민들의 이야기다.

출어를 앞둔 강릉 사천 박성호 어민 "바다가 예전하고 많이 달라졌습니다. 잡히는 것도 줄었고, 그 많던 해조류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바다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라고 말했다.

겉으로는 여전히 아름다운 동해지만, 그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어민들에게 변화는 이미 현실이 됐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를 누가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하며, 연구 결과를 국가 해양정책으로 연결할 것인가이다. 그 역할을 맡아야 할 국가 해양수산 공공기관의 본원이나 핵심 거점은 강원 동해안에는 없다.

 새벽 바다를 가르며 강릉 사천항 어선들이 출어하고 있다. 어민들이 마주하는 동해는 수온과 어종, 해양환경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새벽 바다를 가르며 강릉 사천항 어선들이 출어하고 있다. 어민들이 마주하는 동해는 수온과 어종, 해양환경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 진재중

해양수산부가 지난 3월 기준으로 공표한 산하 공공기관 현황을 보면, 해양수산 분야의 국가 기관은 서울과 부산을 비롯해 세종·인천·울산·전남·충남 등 여러 지역에 배치돼 있다. 서울에는 해양환경공단과 한국어촌어항공단,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등이 있고, 부산에는 한국해양진흥공사와 한국해양수산연수원,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산항만공사 등이 자리하고 있다. 세종과 인천에도 해양교통·항로표지·항만 관련 기관이 있고, 울산과 전남, 충남 서천 등에도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해양수산 관련 기관과 기능이 배치돼 있다.

물론 공공기관의 숫자만으로 지역의 해양정책 수준을 판단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국가가 어느 지역 바다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데이터를 축적하며, 정책 기능을 배치하고 있느냐다. 그런 측면에서 강원 동해안의 빈자리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해수부 산하기관
▲해수부 산하기관 ⓒ 해수부 자료

해안침식에서 어획자원 감소까지, 하나로 연결된 동해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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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은 고성에서 삼척까지 6개 시·군에 걸쳐 길게 이어진다. 이 광활한 해안 곳곳에서 해안침식이 진행되고 있고 해조류 감소와 바다숲 훼손, 어획자원 감소가 나타나고 있다. 어민들의 주요 소득원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문제는 이 현상들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수온이 상승하면 해조류의 생육환경이 변할 수 있다. 해조류가 감소하면 해양생물의 서식환경도 달라진다. 이는 수산자원의 변화와 어민들의 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해안침식은 어촌과 관광의 기반인 해변 자체를 위협한다. 그런데 이 변화를 동해안 전체를 대상으로 장기간 관찰하고 데이터를 축적할 국가적 체계는 충분하지 않다. 지역 대학과 연구자, 어민들이 현장에서 변화를 기록하고 있지만 개인이나 대학, 지방자치단체의 노력만으로 광범위한 동해안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충일 강원대 강릉캠퍼스 해양융합과학과 교수는 "동해안은 기후변화에 따른 해양환경 변화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라며 "수온 상승과 해양생태계 변화가 어업환경과 지역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변화가 발생하는 현장에 국가의 연구와 정책 기관을 배치할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필요한 것은 동해의 변화를 장기간 기록하고 분석하며, 그 결과를 국가정책으로 연결할 수 있는 '해양수산 거점'이다.

 해안침식은 고성에서 삼척까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해안침식은 고성에서 삼척까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 진재중
 바다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어족자원이 고갈되고 있다.
▲바다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어족자원이 고갈되고 있다. ⓒ 진재중

해양치유에서도 비어 있는 동해안

국가 기능의 공백은 해양치유 분야서도 눈에 띈다. 해양수산부는 해양자원을 활용해 국민 건강을 증진하고 연안지역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 해양치유산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국가사업으로 추진되는 해양치유 거점은 전남 완도, 충남 태안, 경남 고성, 경북 울진, 제주 등으로 이어진다. 완도 해양치유센터는 국내 최초로 문을 열었고 태안도 해양치유센터를 개관했다. 경남 고성, 경북 울진, 제주 등에서도 해양치유 거점 조성이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강원 동해안에는 아직 국가 차원의 해양치유 거점이 없다.

강원대학교에서 산림치유를 강의하고 있는 김희석 박사는 이를 단순히 '시설 하나가 없다'는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문제는 지역 간 해양정책의 불균형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강원도가 얼마나 정책적으로 소외돼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특히 그동안 강원도의 정치권과 행정이 해양수산 분야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면서 "다른 지역에서는 해양치유센터를 유치하고 이를 국가사업으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라며 "강원도 정치권은 해양수산 분야에서 무엇을 요구했는지, 어떤 국가사업을 가져왔는지, 지역에 무엇을 만들어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아쉬워 했다.

그는 과거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데 머물러선 안 되고, 지금부터라도 정치권과 행정이 국가사업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 지역의 대학과 연구기관, 어촌과 기업을 연결하는 새로운 해양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완도 해양치유센터
▲완도 해양치유센터 ⓒ 진재중

강원 동해안에는 바다와 모래사장, 해안숲과 해조류가 있고, 바다와 연결된 석호도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고성 화진포에서 속초 영랑호·청초호, 강릉 경포호, 양양 매호에 이르기까지 바다와 호수가 만나는 독특한 생태환경이 이어진다. 이는 강원 동해안만이 가진 중요한 생태자산이다.

여기에 해조류와 바다숲을 결합하면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강원도형 해양치유가 가능하다. 단순히 해변에 시설을 조성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바닷가를 걷고, 모래를 밟고, 해안숲을 거닐며 석호의 생태를 관찰하고 해조류와 바다숲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해양환경 교육과 해조류 연구, 바다숲 복원, 블루카본, 해양생태관광을 연계한다면 해양치유센터는 단순한 휴양시설을 넘어설 수 있다. 사람의 건강과 바다의 건강을 함께 회복시키는 연구·교육·생태관광의 해양거점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화진포호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에 위치한 석호
▲화진포호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에 위치한 석호 ⓒ 진재중

공공기관 이전 넘어 국가 해양거점으로

그렇다면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현실적인 출발점은 강릉을 동해안 해양수산 국가거점으로 만드는 것이다. 강릉은 대학과 연구기관 등 기본적인 연구 기반을 갖추고 있으며, 경포호를 비롯한 석호와 해변, 해안숲 등 다양한 해양·생태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고성에서 삼척까지 강원 동해안을 연결하는 가운데에 위치해 있어 6개 시·군을 하나의 해양권역으로 묶을 수 있는 지리적 이점도 있다.

따라서 강릉에 해양수산 분야의 국가 공공기관이나 연구·정책 기능을 유치하고, 이를 거점으로 고성·속초·양양·강릉·동해·삼척을 연결하는 광역 해양수산 협력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해조류포럼 김형근 대표는 이를 단순한 공공기관 이전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강원 동해안은 공공기관 하나를 이전해 달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구소멸과 어업환경 악화, 기후변화라는 문제가 동시에 나타나는 곳입니다. 오히려 이런 변화가 빠르게 나타나는 동해안을 국가 해양정책의 전진기지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관의 숫자가 아니라 기능의 연결이다. 국가기관은 해양환경과 수산자원을 장기적으로 조사하고 데이터를 축적하며 정책을 뒷받침한다. 대학과 연구기관은 기후변화와 해양생태계 변화에 대한 연구와 전문인력 양성을 맡고, 기업은 연구성과를 산업과 일자리로 연결한다. 이러한 협력체계가 구축된다면 강릉은 단순한 공공기관 이전지가 아니라 동해안의 해양수산 연구와 정책, 산업을 연결하는 국가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나아가 강원 동해안 전체를 하나의 해양수산 생활·경제권으로 발전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는 삼척 장호항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는 삼척 장호항 ⓒ 진재중

현재 해안침식과 바다사막화, 해조류 감소, 수산자원 변화는 이미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기후변화가 심화될수록 그 속도는 더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이제 국가 해양정책은 바다의 특성과 변화가 다른 만큼 해역별 현장 대응체계를 갖춰야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바다를 이용하는 시설 하나가 아니라 변화하는 바다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연구하며 복원하고, 그 결과를 국가정책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이다.

바다는 변하고 있다. 국가의 해양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이제 국가균형발전의 시선을 육지에만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바다까지 넓혀야 한다. 강원 동해안에 국가 해양거점을 세우는 것은 지역을 위한 요구가 아니라 변화하는 동해의 미래에 국가가 책임 있게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다.

 동트는 동해
▲동트는 동해 ⓒ 진재중



#공공기관#동해안#강릉#해안침식#해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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