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이라는 이름에 더하여 상생음악회 포스터불교, 천주교, 기독교 세 종교가 상생 음악회가 열렸다. 평화가 절실한 시대에 꼭 필요한 상생음악회이다. ⓒ 김옥성
음악은 묻지 않는다. 당신이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 어떤 이름으로 절대자를 부르는지, 어느 길을 따라 진리를 찾아가는지를. 음악은 다만 조용히 마음의 문을 두드리며, 우리가 본래 하나의 생명이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존재임을 일깨운다.
12일, 한신대학교 서울캠퍼스 예배실에서 열린 '3종교 상생의 선율 문화향유음악회 - 사랑이라는 이름에 더하여'는 그 진실을 아름다운 화음으로 보여준 자리였다. 불교와 가톨릭, 개신교가 각자의 신앙과 전통을 간직한 채 한자리에 모였다. 서로 다른 믿음이 경계를 내려놓고 음악으로 만나자, 한신대학교 예배실은 특정 종교만의 공간을 넘어 이해와 환대, 평화를 배우는 모두의 교실이 되었다.
공연의 문은 오르간의 장엄한 선율로 열렸다. 김연주 오르가니스트가 연주한 영화 <스타워즈>의 메인 테마 곡은 익숙하면서도 웅대한 울림으로 새로운 만남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이어 소프라노 신승아와 테너 김상진이 부른 베르디의 '축배의 노래'는 종교와 세대를 넘어 함께 모인 기쁨을 밝고 힘찬 목소리로 전했다. 'Over the Rainbow'와 '바람이 머무는 날'은 무지개 너머의 희망과 우리 곁에 잠시 머무는 소중한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불교의 노래, 기독교 예배실에 울려 퍼지다
특히 불교 합창단인 메타소리합창단이 개신교 신학교인 한신대학교 예배실에서 노래한 장면은 이날 음악회의 취지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자비와 생명 존중의 마음을 노래해 온 이들의 목소리가 기독교 예배 공간의 높은 천장과 벽을 따라 깊고 넓게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예배실은 어느 한 종교의 울타리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의 믿음을 존중하며 마음을 나누는 상생의 공간으로 새롭게 열렸다.
메타소리합창단이 부른 '내겐 아직도 음악이 있네'와 '영겁을 하루같이'는 단순한 합창곡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서로 다른 신앙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음악 안에서는 경계가 보이지 않았다. 불교 합창단의 청아하고 단단한 화음은 종교가 서로를 가르는 벽이 아니라, 인간의 아픔을 위로하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여러 갈래의 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내겐 아직도 음악이 있네'에서는 삶이 힘들어도 다시 노래할 수 있다는 희망이 전해졌다. '영겁을 하루같이'에서는 긴 시간과 소중한 인연을 품어온 불교적 성찰이 느껴졌다. 한신대학교 예배실에 울려 퍼진 그들의 노래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당신과 나의 믿음은 다르지만,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함께 부르는 이 노래가 평화의 시작입니다."
평화를 청하는 세 종교의 화음
수유동성당 대건성가대가 들려준 '아름다운 나라'와 '평화를 주옵소서'는 그 울림을 이어받아 이날 음악회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했다. 평화는 어느 한 종교만의 기도가 아니다. 불교에서는 자비를 말하고, 가톨릭과 개신교에서는 사랑을 말한다. 표현하는 언어와 의식은 달라도 고통받는 생명을 품고 이웃의 평안을 바라는 마음은 하나다.
특히 '평화를 주옵소서'라는 간절한 노래 앞에서 평화란 누군가가 가져다주기를 기다리는 선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먼저 미움을 내려놓고, 나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평화는 비로소 우리 곁에서 시작된다.
마스터 매지션 황갑주의 공연은 음악회에 색다른 즐거움과 놀라움을 더했다. 이어 바리톤 홍성진의 '거문도 뱃노래'와 오페라 <카르멘>의 '투우사의 노래', 오르간으로 연주된 'Carmen Fantasy'는 우리 민요와 서양 고전음악을 자유롭게 오가며 공연의 폭을 넓혔다. 테너 김상진이 부른 '뱃노래'와 '공주는 잠 못 이루고'에서는 삶의 힘찬 기운과 간절한 소망이 함께 피어올랐다.
아리엘남성합창단의 러시아 민요 '볼가강의 뱃노래'와 '구원받았네' 역시 서로 다른 문화와 신앙의 노래가 한 무대에서 아름답게 어우러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출연진 모두가 함께 부른 홍난파의 '고향의 봄'은 객석의 마음을 어린 시절의 따뜻한 풍경으로 데려갔다. 종교와 세대, 살아온 길은 달라도 누구에게나 그리운 고향이 있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자리가 있다는 사실이 모두를 하나로 이어주었다.

▲세종교 상생음악회불교 기독교 천주교 출연한 합창단과 독장 연주자들이 모두 소리를 모아 고향의 봄을 관객들과 함께 불렀다. 종교사 상생하듯 국가와 국가도 상생하고 힘있는자와 약한자가 상생하고 살아가는 사회가 간절하다. ⓒ 김옥성
상생의 무대가 가르쳐 준 것
교육활동가인 나에게 이날 음악회는 한 편의 살아 있는 평화교육으로 다가왔다.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일에만 머물지 않는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는 법, 그의 이야기를 판단하기 전에 듣는 법, 차이를 없애지 않고도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다.
교실에서도 아이들은 서로 다른 가정환경과 생각, 종교와 문화를 지닌 채 만난다. 그 차이를 경쟁과 배제의 이유로 삼게 할 것인가, 아니면 서로의 세계를 넓혀주는 배움의 기회로 받아들이게 할 것인가는 교육에 달려 있다. "누가 옳은가"만을 가르치는 교육은 쉽게 편을 가르고 상대를 적으로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교육은 대화와 협력의 길을 연다.
나는 공연을 지켜보며 오늘날 학교공동체의 모습을 떠올렸다.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때로는 교사와 교사까지 서로의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나뉘고 부딪치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마주한다. 한 사람의 말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가닿기도 전에 편을 가르고, 대화보다 비난이 앞서며,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서로를 공격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정치 현장과 사회 곳곳의 갈등도 다르지 않다. 서로의 말을 들으려 하기보다 더 큰 목소리로 상대를 누르려 하고,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적과 동지를 나눈다. 갈등을 조정해야 할 언어가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공동체를 이어야 할 책임이 편 가르기의 도구가 되는 현실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많다.
그렇기에 나는 이날의 상생하는 무대를 학교공동체와 정치 현장, 사회 곳곳의 갈등 가운데 옮겨놓아 본다. 각자의 목소리를 잃지 않으면서도 다른 목소리를 존중하고, 상대를 침묵시키지 않으면서 더 큰 화음을 만들어내는 모습 말이다. 불교와 가톨릭, 개신교가 서로의 차이를 지우지 않고 한 무대에 설 수 있었다면, 우리 사회의 서로 다른 세대와 계층, 정당과 집단도 공동체를 위한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이날 무대는 그 질문에 하나의 답을 보여주었다. 불교 합창단은 기독교의 예배실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고 노래했다. 가톨릭 성가대는 평화를 갈구했고, 개신교 합창단과 성악가들은 각자의 노래로 화답했다. 어느 한쪽도 다른 쪽을 설득하거나 자기와 같아지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서로의 소리를 충분히 듣고, 자신의 차례에는 최선을 다해 노래하며, 마침내 하나의 공연을 완성했다.
이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민주적인 삶의 모습이 아닐까. 함께 산다는 것은 모두가 같은 음을 내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음이 상대의 소리를 지우지 않으면서 더 큰 화음을 이루는 것이다. 평화교육은 갈등이 전혀 없는 상태를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갈등을 폭력으로 해결하지 않고 대화와 협력으로 풀어가는 힘을 길러주는 일이다.
학교공동체 역시 하나의 합창단과 같다. 구성원마다 맡은 자리와 목소리는 다르지만 누구도 불필요한 사람은 없다. 좋은 공동체는 가장 큰 목소리 하나만 남는 곳이 아니라, 작은 목소리까지 귀 기울여 듣고 각자의 음색이 전체의 조화 속에서 살아나게 하는 곳이다. 교육은 아이들에게 목소리를 내는 용기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끝까지 듣는 태도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에 더하여'라는 공연 제목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사랑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에 이해를 더하고 존중을 더하며 실천을 더할 때 비로소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우리가 믿는 교리와 부르는 신의 이름은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아픈 이의 손을 잡아주고 외로운 이의 곁을 지키며 평화를 위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우리는 이미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가르쳐야 할 때
지금 우리 사회는 호르무즈해협 파병 문제를 둘러싸고 다시 시끄럽다. 국가의 안전과 경제적 이해, 국제적 책임을 함께 따져야 하는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판단을 내리든 그 중심에는 전쟁의 확대가 아니라 생명의 보호와 평화의 실현이 있어야 한다.
파병은 숫자나 전략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곳에 가야 할 청년들의 생명과 가족의 기다림, 그리고 전쟁터에서 삶의 터전을 잃을 수많은 사람의 고통이 걸린 문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평화를 가르치면서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너무 쉽게 무력과 전쟁을 선택한다면 교육의 말은 힘을 잃는다.
평화를 가르친다는 것은 단지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하는 일이 아니다. 전쟁을 당연한 해결책으로 여기지 않는 시민, 힘보다 대화를 먼저 선택하는 시민, 국적과 종교가 달라도 모든 생명의 무게는 같다고 믿는 시민을 길러내는 일이다.
그날 한신대학교 예배실에서 불교와 가톨릭, 개신교의 노래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하나의 화음을 이루었다. 세 종교가 음악으로 해낸 일을 학교와 사회, 국가와 정치도 해낼 수 있어야 한다. 상대의 목소리를 없애는 전쟁이 아니라,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함께 살 길을 찾는 평화가 필요하다.
공연은 끝났지만 그날의 선율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전쟁을 준비하는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 평화를 만들어가는 힘을 가르칠 것인가.
사랑이라는 이름에 우리가 마지막으로 더해야 할 것은 더 강한 무기가 아니다. 서로의 생명을 지키려는 용기이며,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 인내이며, 전쟁이 아닌 평화를 선택하는 지혜다. 총성이 아니라 노래가 울려 퍼지는 세상, 적을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이웃을 발견하는 교육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다.
평화는 막연한 이상이 아니다. 학교에서부터 정치와 사회, 국제관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반드시 가르치고 배우며 끝내 실천해야 할, 가장 현실적이고 절박한 삶의 과제다.
김옥성(교육희망네트워크 상임대표, 행복마음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