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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모의고사를 앞둔 고3 딸아이의 책상에 청심원을 올려놨습니다. ⓒ 장한이
최근 고3 딸아이의 수시 원서 접수를 마쳤다. 요즘 아이를 보면 대입을 준비하는 건지, 불안과 긴장을 견디는 연습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시험이 기다리고, 수시 원서를 쓰고 나니 수능과 면접이 기다린다. 그렇게 하나씩 버텨내던 딸아이가 얼마 전 처음으로 시험이 무섭다고 말했다.
시험에 대범했던 딸아이의 고백
"시험 볼 때 긴장하거나 떨린 적이 없었는데, 3학년 기말고사 때부터 벌벌 떨렸어요."
9월 모의평가를 며칠 앞둔 날이었다. 평소 시험을 앞두고 긴장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시험을 망쳐도 늘 당당했다. 다음에 잘 보면 된다며 오히려 대범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고3이 되고 입시가 코앞으로 다가오니 달라졌다.
진학상담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약국에 가서 청심원을 세 병 샀다. 약사에게 제일 좋은 것을 추천받아 딸아이 책상 위에 올려놨다.
"월요일이랑 화요일 아침에 먹어보고 괜찮으면 수요일 아침에도 마시고 모의고사 봐."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입시 상담을 받을 때도 교육 관계자들은 6모(6월 모의고사), 9모(9월 모의고사)가 중요하다는 말을 쉼 없이 반복한다. 딸아이는 6월 모의고사를 못 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진로상담 받을 때 매번 6모만 가지고 얘기하니까 9모가 너무 부담돼요."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딸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30여 년 전 수능시험 날이 떠올랐다.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부담감에 너무 긴장한 나머지 언어영역 시험 도중 책상에 픽 쓰러졌다. 양호실로 이동해 2교시까지 혼자 시험을 봤다.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점수를 받고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 이후 부모님은 내가 중요한 시험을 볼 때마다 책상 위에 청심원을 올려두셨다. 30년이 훌쩍 지난 뒤 이번에는 내가 딸아이 책상 위에 청심원을 올려놓았다. 아빠와 달리 대범하다고 생각했던 딸인데, 큰 시험을 앞둔 불안한 수험생이 되는 것은 피해 갈 수 없는 모양이다.
딸아이는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 동안 시험 삼아 청심원을 마셨다. 하지만 정작 당일에는 먹지 않았다.
"졸리거나 배가 아플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냥 안 마셨어요."
딸은 혹시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 긴장감을 택했다. 시험 따위에 좀처럼 겁먹지 않던 아이가 고3이 된 뒤 기말고사부터 시험 기간에 복통을 호소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동안 잘 견뎌왔다고 생각했는데 입시라는 현실에 한 발짝 가까워질수록 불안해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몇 달을 준비해도 정답 없는 원서 접수
원서 접수 기간에는 더 긴장했다. 9월 모의고사가 끝나자마자 수시 원서 접수가 시작됐다. 입시를 멀리서 바라볼 때는 수시 원서 여섯 장이 꽤 많아 보였는데, 막상 원서를 쓰려니 부족했다.
입시 공부도 많이 하고, 여기저기서 상담도 받고, 딸아이와 수없이 이야기도 나눴다. 그렇게 몇 달을 준비했는데 원서를 접수하는 순간까지 명쾌한 답은 없었다. 딸은 여섯 곳에서 모두 떨어지는 상황을 걱정했고, 나 역시 티 내지는 않았지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원서 접수 기간이 흘러갈수록 딸의 불안은 점점 커졌다.
덤덤하기만 했던 딸아이는 원서 접수 기간에 온몸에 벌건 두드러기가 났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 날, 원서 두 개를 붙잡고 씨름할 때 발진이 더 벌겋게 올라왔다. 원인은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원서 접수를 마쳤다.
"아빠는 이제 심심하겠어요."
정말 그랬다. 그동안 방송에 입시상담도 신청하고, 입시설명회를 다니고, 학교 선생님과 외부 전문가에게 상담도 받았다. 이렇게 놓고 보면 극성 부모 같지만, 입시에 대해 잘 모르니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원서 접수가 끝나니 뭔가 허무했다. 몇 달 동안 그렇게 붙들고 고민했던 대학과 학과 선택이 단 몇 번의 클릭으로 끝났다. 답도 없고, 당장 결과도 알 수 없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건 이제 응원과 토닥임밖에 없다.
원서 접수 후에도 끝나지 않는 레이스
"허무하네요. 1학년 때부터 이런 거 다 알았으면 이렇게 안 살았죠."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을걸? 지금 상황에서 최선을 찾아야지."
딸아이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 듯했다. 현재 시점에서 바꿀 수 있는 건 없다. 이제 묵묵히 수능을 준비하고, 서류전형에 합격한다면 면접도 준비해야 한다. 지금부터 11월 말까지 또 다른 레이스가 시작된다.

▲202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9월 모의평가가 치러진 9월 2일 대구 남산고에서 고3 수험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방금 틱톡이랑 인스타 지웠어요. 학교 시험공부하듯이 벼락치기로 수능 공부 해야죠."
원서 접수를 하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동안 SNS를 지웠다 깔았다, 폰을 바꿨다 말았다 변덕을 부리던 딸이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큰 무리 없이 여태껏 달려준 게 고마웠다.
딸은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왜 다녀야 하고 대학은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2학년 때는 갑자기 온 얼굴을 뒤덮은 심각한 여드름 때문에 굉장히 우울하고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한여름에도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학교와 학원에 갔다. 집중이나 제대로 됐을까.
그래도 시험공부를 하고, 수행평가를 준비하고, 발표를 하면서 학교생활을 견뎠다. 원서를 쓰던 당시 딸아이와 의견 차이를 보일 때 아내가 말했다.
"하고 싶다는 대로 응원해 주자. 여태껏 잘 견뎌준 것도 고맙지."
입시 전쟁을 치르는 세상의 모든 수험생을 응원합니다
수시 원서 접수는 끝났지만 수험생들은 수능과 면접, 논술을 준비해야 한다. 딸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해야 하고, 서류전형에 통과하면 면접도 준비해야 한다. 고3 학생들에게는 어쩌면 지금부터가 가장 괴로운 자신과의 싸움을 펼칠 시간이다. 부모는 곁에서 묵묵히 응원해 줄 때다.
N수생들이 역대급으로 몰린 입시 판, 세기말 입시라는 관문을 통과하려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로 대입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부담을 줄여줄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딸아이에게, 지금 대입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들에게 '대학이 다가 아니다'라는 입바른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입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아이들에게,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그리고 격하게 응원하고 싶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힘내자. 세상의 모든 수험생, 파이팅!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카카오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