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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엔 햇살이 밝게 부서져 쏟아지고, 비가 오면 낮게 내려앉은 구름이 산허리를 감싸 흐르는 숲속 안식처. 백전면 대방마을 백운산 자락, 해발 500m 산 중턱에 소박한 아쉬람(인도의 수행처)이 자리하고 있다.

마당에는 계절마다 제각기 다른 모양의 꽃이 피어나고 벌과 나비가 날아든다. 집 뒤편으로 걸음을 옮기면 80그루의 자작나무가 늘어선 작은 오솔길이 있다. 그 너머에는 감자와 푸성귀를 심은 텃밭까지 곳곳에 생그러운 푸릇함이 넘쳐난다. 밤이면 풀벌레 소리가 가득하고 궁둥이를 반짝이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도 날아다닌다.

흰 벽에 난 작은 문으로 들어서면 넓은 마루 너머로 백운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한, 자연과 하나 된 공간에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산을 바라보며 요가와 명상을 한다.

토토로 같은 숲의 정령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 이곳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작은 수행처 리틀아쉬람(Little Ashram), 장태선(60) 씨가 오랫동안 그려온 공간이다.

몸과 마음이 무너질 때 만난 명상

 백전면 대방마을 ‘리틀아쉬람’ 운영자 장태선 씨
▲백전면 대방마을 ‘리틀아쉬람’ 운영자 장태선 씨 ⓒ 주간함양

진주에서 나고 자란 장태선씨에게는 20대 때부터 막연한 꿈이 있었다. 산골에 들어가 차밭을 일구고 도자기를 구우며 사는 것. 어머니는 그런 딸에게 "굶어 죽기 딱 좋은 꿈"이라며 시골에서 살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건만, 기어코 장씨는 그때 엄마의 나이가 되었을 무렵 로망을 실현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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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남 1녀 중 외동딸로 태어난 그는 걸레질조차 제대로 해보지 않았을 정도로 귀하게 자랐다. 그러다 결혼하면서 삶이 크게 달라졌다. 고된 시집살이로 몸과 마음이 무너져갈 즈음, 지인으로부터 1박2일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명상을 시작한 게 운명을 바꿔놓았다. 명상에 깊이 빠져들면서 자연스럽게 요가에도 관심을 두게 됐다. 고단한 일상을 버텨내고 자신을 회복시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요가의 본고장 인도에

 자연을 바라보며 요가와 명상을 할 수 있는 공간
▲자연을 바라보며 요가와 명상을 할 수 있는 공간 ⓒ 주간함양

마흔이 되던 해, 큰 결심을 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요가의 본고장 인도로 떠났다. 남인도 방갈로르에 있는 요가학교에서 요가지도자 과정과 요가테라피 과정, 그리고 학위를 받는 디플로마 과정까지 밟았다.

그곳에서 요가뿐만 아니라 인도의 전통 의학인 아유르베다도 접했다. 아유르베다는 서양식 질병 치료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요가와 자연식이요법, 오일마사지, 약물요법 등을 통해 우주의 질서와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함께 다루는 인도의 전통 의학이다.

공부하는 동안 인도 곳곳의 크고 작은 아쉬람도 찾아다녔다. '아쉬람'은 사람들이 머물며 요가와 명상 등을 수행하는 공간이다. 여러 아쉬람을 경험하면서 오래전부터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꿈이 조금씩 구체적인 모습을 갖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산골에 작은 아쉬람을 하나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와서 함께 요가하고 명상하고, 건강한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저도 그렇게 늙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산티아고 대신 함양 백운산으로

 자작나무 숲길을 걷고 있는 장태선씨
▲자작나무 숲길을 걷고 있는 장태선씨 ⓒ 주간함양

4년 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김해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에 직장을 그만뒀다. 한 달 넘는 순례 여정을 위해 길게 휴가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 회사에서는 후임자를 뽑았고 인수인계까지 모두 마쳤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졌다. 하늘길이 막혔고 산티아고 순례길과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도 문을 닫았다. 장태선씨는 "처음에는 몇 달 지나면 곧 떠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좀처럼 상황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순례 계획도 무산된 마당에 당장 생계를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때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깊은 산골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강원도부터 제주도까지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시 살 곳을 찾았다. 그렇게 전국을 돌다 무주까지 오게 됐다. 지도를 보니 바로 아래가 함양이었다.

사실 산청과 함양은 애초에 선택지에서 제외한 상태였다. 일부러 진주 인근은 피하고 싶었다.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고 했던가. 진주는 늘 그리운 고향이었지만 지난 시절의 고단한 기억도 함께 남아 있는 애증의 도시였다. 가능하면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함양이라니.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가보기나 하자 싶은 마음에 백운산 자락으로 향했다. 장씨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 겨울, 빽빽하게 늘어선 벚나무길이 또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처럼 느껴졌다"며 "폐교된 백운초등학교 운동장을 보고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하얀 눈이 내려앉은 운동장이 너무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자연 바라보며 요가와 명상을

 백운산 자락 자연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리틀아쉬람
▲백운산 자락 자연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리틀아쉬람 ⓒ 주간함양

"땅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던 거예요."

그날 이후 김해에서 백전까지 왕복 너덧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일주일에 두세 번씩 오갔다. 주변 사람들은 사계절을 겪어보지 않은 채 무작정 산골에 들어가서 사는 건 쉽지 않을 테니 1년 정도 살아본 뒤 결정하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이곳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마침 백운산협동조합이 사무국 직원을 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코로나19로 집합 프로그램이 중단된 함양학생야영수련원(구 백운초) 숙소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일을 시작했다.

마을에서 지내며 지금의 리틀아쉬람이 들어선 땅을 발견했다. 밭농사를 짓던 빈 땅이었다. 우연히 땅 주인을 만나자마자 마음을 정했다. 기존에 지어진 주택을 사는 대신 빈 땅에 처음부터 집을 짓기로 했다. 인도에서 수많은 아쉬람을 직접 보고 경험했던 만큼 자신이 원하는 공간의 모습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집을 새로 짓는 과정에서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종이에 빼곡히 적어 놓았던 바람을 85% 이상 구현해 냈다. 그렇게 '리틀아쉬람'이 탄생했다.

한 스님은 장태선씨에게 "당신이 이 땅을 찾아낸 것 같지만, 사실은 이 땅이 바른 쓰임을 찾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 말씀은 그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자연 바라보며 머무르는 공간

 게스트룸 내부의 모습
▲게스트룸 내부의 모습 ⓒ 주간함양

리틀아쉬람은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다. 자연 속에서, 자연을 바라보며 요가하고 명상하는 공간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요가하는 이들이다. 혼자 조용히 수련하는 사람도 있고, 요가를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방문객에게는 장태선씨가 일정 금액을 받고 원데이클래스를 진행하기도 한다.

한 번 리틀아쉬람을 와본 사람들은 이곳을 다시 찾는다. 가족과 지인에게 이곳을 소개하는 일도 잦다. 조용히 쉬고 명상하고 요가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밤새 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우거나 이웃에 피해를 주는 일도 거의 없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리틀아쉬람이 막 문 열었을 무렵 찾아온 60대 중반의 한 방문객이다. 한 번 올 때마다 며칠씩 머물다 가는데 벌써 7~8차례나 이곳을 찾았다. 이제는 손님이라기보다 가족에 가깝다. 게스트임에도 마당에 나가 풀을 뽑고 자신의 집처럼 공간을 함께 가꾼다. 장씨가 꿈꿨던 아쉬람도 어쩌면 이런 모습에 가까웠는지 모른다. 주인과 손님의 경계를 넘어 사람들이 함께 머물고, 쉬고, 서로의 삶을 나누는 곳 말이다.

돌이켜보면 장태선씨의 삶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했지만, 사실은 오랜 꿈을 향해 걸어온 여정이었다. 고단했던 자신의 삶을 회복하기 위해 시작한 명상과 요가가 이제는 또 다른 누군가의 고단한 삶에 위로를 건네는 일이 됐다.

"나에게는 그냥 평범한 일상인데,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삶의 울림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지친 사람들이 하루이틀 이곳에 머물면서 자연의 품 안에서 천천히 숨을 쉬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조금은 가벼워져 돌아갔으면 합니다."

■주소 : 함양군 백전면 백운산길 3-39
■문의 : 0507-1312-2899

 리틀아쉬람 전경
▲리틀아쉬람 전경 ⓒ 주간함양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함양에도 실렸습니다.


#[지리산人]#백전면#대방마을#‘리틀아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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